지난 주말 키즈풀빌라에 다녀왔다. 1층은 개인풀장, 2층은 놀이공간, 3층은 침실로 구성된 꽤 좋은 곳이었는데, 아주 큰 단점이 방음이 안 되는 것이었다. 사장님 말로는 친환경 목재주택이라 그렇다는데, 꼭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옆집돌쟁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주 또렷이 들렸는데, 그렇다고 나도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크게 거슬리거나 하진 않았다.
남편과 아들둘이 1층 풀장에서 놀고, 나는 2층에서 혼자 티비를 보는 아주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앉아 리모콘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큰아이의 울음소리와 그 아빠의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빠의 큰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티비를 끄고 자세히 들어보았다.
"아 그치라고!!" "니가 잘못해놓고 왜 니가 우냐고!!"
"당장 안 그쳐?!" "그치라고!!" "이 새끼가 안 그치냐고!!"
아이의 아빠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고, 아이는 겁에 질린 울음을 멈추지를 못했다. 낮에 지나가다가 얼핏 봤을 때 우리 둘째보다 어려보였다. 그러니까 그 혼나는 아이는 다섯살 이하일 것 같은데, 그 어린 아이가 그 무서운 상황에서 울음을 그치란다고 그칠 수가 있겠는가.
아빠가 왜 혼내는지는 모르겠다. 십분 가까운 시간동안 아빠가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내용은 "울음을 그치라"는 것뿐이었다. 다른 내용은 없었다. 계속 울음을 그치라고 종용했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겁에 질려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그 흐느끼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데, 내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나도 모르게 벽을 두들겼다. "그만해요. 아이가 울음을 못 그치잖아요"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내 소리는 그쪽에 전혀 안 들리는지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내 목소리와 상관없이 아빠의 윽박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아빠가 "이 새끼가 그치라고!!" 하는 소리에 이르자, 펜션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남편에게 가서 이야기했더니, 괜히 오지랖 부려서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냐고 말했다. 내가 한 행동이 진짜 오바인가싶고, 혹시나 나 때문에 아이가 더 큰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맘카페에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냐고 질문글을 올렸는데, 댓글에서 간섭하지 말라는 댓글이 반이었다. "그 집 일은 그 집이 알아서 하게 두어야 한다" "끝까지 책임도 못 질거면서 왜 끼어드냐".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그 아이가 간섭하는 사람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댓글까지 있었다.
다행히 펜션사장님께 전화드린 이후 아빠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한두시간 후에는 그 가족의 웃음소리까지 들려서 한시름을 놓았다.
정인이 생각이 났다. 정인이 사건을 접하고 나는 오랜 날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인이네 아래층에서 종종 소리가 들렸다고 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도, 정인이 담당의사선생님도 수없이 의문을 제기했다고 했는데....
정말로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키울 수 있는 걸까... 내가 정인이 지인이었다면 달랐을까..
아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네들 방식이라고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 부모에게만 그 모든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절대로 부모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줘야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인지 자주 많이 헷갈린다.
거기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나의 밑바닥의 면모를, 그 소중한 아이를 키우면서 확인하게 된다. 이런 내가 엄마의 자격이 있는걸까. 이렇게 인간도 안 된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되는걸까. 수없이 자책해 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 아빠도 그럴 것 같다. 그런 키즈풀빌라에 아이를 데려올 정도면 아마 나쁜 아빠이진 않을 것이다. 포대기에 싸인 둘째와 다섯살 이하의 첫째를 돌보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었을거고, 아이 훈육방법을 제대로 몰랐을 것이고, 아이의 지나친 울음에 대한 감정조절에 실패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건 그 아빠가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울음을 "안" 그치는 게 아니라 "못" 그친다는 걸, 모르면 배워서 알아야 한다.
부모교육이 절실하다. 나부터 부모교육을 받아야 하고,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부모교육을 받아야 한다.
독서모임 이번 책이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이다. 그동안 이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엄마에게 모성을 강요하는 내용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온힘을 다해 육아하고 있는 중인데, 거기에 더한 모성을 요구할 것임이 분명한 책이라 그동안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힘든 시기를 벗어나서인지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내가 예상했던대로, 아기시절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리는 책이었다. 지금의 내가 이 책을 읽으니, 책에서 하는 말이 다 맞는 말 같고, 지금 나는 꽤 잘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흥이났다. 하지만 불과 1년전만해도 나는 이 책을 읽을 자신이 없을 정도로 많이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 다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 이 책은, 너무나 옳은 말들을 많이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컸다.
중등교사였던 근무시절, 나는 지인들에게 "이때 내가 학교를 다녀야했다면 못다녔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왕따, 은따 등 학교폭력이 심했었다. 십년이 지난 지금은 더할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저자는 훗날의 모든 정서적 결함을 어린 시절 애착육아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지 말고, 어릴 적에 애착육아를 잘하자는 말이다. 백번 공감하는데, 막상 그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엄마들에겐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 중 온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내용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온 사회가 아이를 잘 키우는 데 힘을 합해야한다. 그것이 가장 적은 돈으로 훗날의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저자의 의견에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이는 정말로 온 사회가 함께 키워줘야 한다.
정기적으로 부모교육을 이수하도록 사회제도를 확립하고, 돌쟁이 아기가 있는 집 아빠는 육아시간도 줘야한다. 엄마든 아빠든 육아휴직도 보장해줘야한다. 나는 그동안 우울증이란 단어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줄 알고 살았다. 근데 호르몬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하겠더라. 그런 엄마의 정신도 돌봐줘야한다. 작은 생명 아기를 위해서이다.
나는 이제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앞으로 그 시기를 거쳐갈 많은 후배부모들에게는 사회에서 좀더 현명하고 수월한 그 어떤 방법들이 제공되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 인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