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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ana Jun 04. 2019

발리 2014 -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

진짜 살아보는 여행-

[행복의 비밀은 발리의 '차낭 사리' 안에 있어]


발리의 덴 파사르 공항에서 내 이름표를 들고 서 있던 택시기사 Wayan과의 약 1시간 30분에 걸친 드라이브 중에 내 인생에 획을 그을 만한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KLM 퇴사 후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러다 나만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쓰러 여행을 떠나게 된 곳이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이었다. 스위스 유학 시절 기숙사 방을 공유했던 룸메이트가 발리 출신이기도 했고 주변에 여행 꽤나 다녀봤다는 이들이 '조금은 특별한 곳'으로 묘사했던 그곳에 가면(뭔지는 모르지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십 대 후반, 유럽에 있을 때는 잊고 살았던 나이가 한국에서는 '이제 시집가야 할 나이' 혹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야 할 나이'로 정의되어 동네 미용실 아줌마까지 간섭을 하니 당시 다시 '구직 중'으로 지내던 나도 없던 조바심이 생기던 차였다.


나는 만 스물둘의 나이에 KLM 네덜란드 항공의 한국인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의 외항사 승무원 계약직을 마치고 미뤄뒀던 대학 졸업장도 따왔겠다 나는 앞으로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분명히 필요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나만의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엄마 아빠, 저 발리에 가서 딱 1년 정도만 살다 오겠습니다. 대학 공부도 마쳤겠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가서 해결할 테니 처음 몇 달 생활비만 부탁드려도...


나의 이런 허무맹랑한 제안을 부모님이 받아들이실리 없었다. 대신 그동안 "열심히"(기특하게도 유학 실패로 끝나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약 2주의 포상 휴가가 주어졌다. 나는 그날 바로 덴 파사르행 비행기를 끊었다.




발리의 더운 날씨에 최적화된 Batik(바틱) 천으로 만든 전통의 의상을 입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대조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던 모습이 내 택시 기사 Wayan의 첫인상이었다.


Wayan은 이십 대 후반의 여자가 혼자 여행을 온 것에 대해 꽤나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길고 지루한 드라이브를 조금 더 엔터테이닝 하게 보내자는 듯 그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이 질문을 빼놓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듯 더는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서, 넌 왜 여기 혼자 여행 왔니?


나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답을 찾기 위해 왔어. 어느 매체에서 읽었는데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낙관적인 국가 중에 하나래. 그 비밀이 뭔지 알고 싶어. 사실 나는 1년 정도 발리에 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단 지금은 맛보기 여행이랄까. 근데 정말 네가 생각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 같아?


하하 그런 통계가 있었어? 내 생각엔 인도네시아에서도 발리섬 사람들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 발리는 1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고 맛있는 과일과 코코넛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 낯선이 와 눈이 마주쳐도 그저 사람 좋게 웃어 주는 사람들. 풍족한 자원과 온화한 기후 이외에 그들의 행복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행복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지 알고 싶었다. 행복의 조건 중에서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궁금했던 터라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의견을 물었다.


"미쓰, 노 머니 노 해피~"

아까 나한테 돈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냐 물었지? 너무나 당연하게도 돈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내 머리 위에 지붕이 없고 내 아들을 학교에 보낼 돈이 없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겠지. 그런 이유에서 돈은 (내가) 행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야. 그런데 그렇다고 돈이 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니라 믿어.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을 봐도 그래. 빈부격차도 정말 심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한 이유는 부자 나라는 아니지만 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아서가 아닐까?


발리 인구의 80%는 힌두교를 믿는다. 발리섬의 토착 신앙과 힌두교의 결합으로 발전된 이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례이다.

발리에는 길가의 상점이나 가정집의 문 앞에는 조용히 축복을 내리고 있는 작은 바구니, 차낭 사리(Canang Sari)가 자주 눈에 띈다. 바나나 잎을 대략 가로 12, 세로 12, 그리고 높이 4 정도의 정사각형 혹은 원형으로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에 쌀, 라임, 너트와 향초 등을 담은 알록달록한 귀여운 바구니이다. 발리 사람들은 보통 오전에는 하늘의 신에게 오후에는 땅에 있는 모든 만물에게 저녁에는 지하의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예배를 드리며 이를 제물로 바친다.



2014 년 여행 당시 직접 찍은 차낭 사리 (Canang Sari) 사진

                                           


나는 지난 10년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택시기사 일을 해왔어. 매일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태우고 다니지. 만약 어느 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잃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감사할 거야. 죽지 않고 살아난 것과 다른 한쪽 다리가 남아있는 것에 감사를 하겠지. 불행하다고 느껴질 만한 일은 언제든 생기지 그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감사할 일도 매일 얼마든지 있어.


순간 Wayan의 미니 벤의 운전대 위에 놓인 차낭 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 또는 아내, 혹은 본인 스스로가 그날의 안전과 성과를 기원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올렸을 감사였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또 주어진 것들에 매일 감사하는 삶. 그것이 그가 정의하는 행복한 삶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발리에 왔건만 덴 파사르 공항에 발을 내린 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에게서 그 답을 듣다니.

네가 그토록 찾던 파랑새는 언제나 네 안에 있었어 라고 Wayan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환경 탓을 했었다. 오늘날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성공을 향한 무한 경쟁 속에 빠른 템포로 돌아가는 한국에서의 삶과 남의 일에 콩이네 팥이네 하는 우리네 사회 때문이라 여겼었다. 행복할 이유들은 많았지만 남들의 시선과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 또한 외부로부터 왔기 때문에 나의 오늘은 항상 무언가 불만족스러웠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과 비교하며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난 사람’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Wayan과의 대화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고 그곳이 어떻든 나의 행복은 결국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삶의 진리였다.


해쉬태그도 모르던 시절 발리 여행 직후에 올린 피드.



Key to happiness- Finding balance and satisfaction with what God grants us. Being grateful for what we have instead of being resentful of what we don't have.

행복의 열쇠 -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들에서 밸런스와 만족을 찾는 .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원망하는 대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


이 것이 내가 여행 후에 내린 나의 행복의 정의였다. 감사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감사하기를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여행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까운 미래에 분명히 있을 "내일의 더 큰 행복"을 생각하느라 오늘을 사는 법을 자꾸 잊는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어렵더라도 의식적으로 pause(멈춤)를 갖고 오늘 나에게 있었던 감사할만한 일들을 세어 보고 있다. 발리 사람들처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를 올리는 의례를 지내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에 나만의 휴식처를 마련해두고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샤워를 하다가 매일 아침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음에 문득. 조금 지각은 했지만 너그럽게 눈 감아주는 상사가 문득. 밥 한 끼 제대로 못하는 고된 육아에 지치지만 앞에서 재롱떠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문득. 지지고 볶고 싸울 때도 있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 약속했던 당신과 매일 밤 함께 잠들 수 있음에 문득...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어. 또한 내가 찾는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어.

All I seek is within me-


그리하여 결국 1년을 바라보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은(예상치 못하게 빨리 답을 얻게 된 탓에) 2주 남짓의 포상 휴가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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