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로맨스 영화
최근에 넷플릭스에 우영우 외에는 딱히 볼 게 없어서 지루하던 차에 우연히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광식이 동생 광태”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틀어보았다. 이미 열 번은 넘게 본 영화이긴 하지만 막상 트니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역시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다시 봐도 참 잘 만든 영화다. 매번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다른 부분이 와닿는다.
나는 원래 풋풋하고 약간은 찌질한 짝사랑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20번도 넘게 보았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역시 내가 매우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내가 수지를 좋아해서 영화도 좋아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고, “그 시절”은 아무래도 대만 영화이다 보니 언어나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 영화만큼 공감이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순수하게 영화 자체로서는 광식이 동생 광태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광식이 동생 광태를 좋아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고 김주혁 배우의 호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소심한 짝사랑 남을 너무나 리얼하게, 하지만 끝까지 이요원과 잘 되길 응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게 잘 소화해냈고,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 “세월이 가면”을 부르는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한 명장면이다. 노래 선곡 역시 기가 막히고 김주혁이 기교 없이 담담하게, 하지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부르는 게 원곡보다도 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식장에서 부르는 장면보다 노래방에서 혼자 부르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데, 특히 노래하고 있는 김주혁 뒤의 노래방 모니터에 이요원의 모습을 띄운 게 정말 멋진 연출이라 생각된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김주혁과 이요원이 잘되기를 그토록 응원하고 바랬겠지만 결국 두 사람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영화의 여운을 배가시켜 주는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이 결국에 이뤄졌더라면, 처음 영화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땐 만족했겠지만, 결코 지금처럼 수차례 다시 보는 영화가 되진 못했을 것 같다. 뭔가 비유를 하자면, 마치 슬램덩크에서 북산이 산왕을 꺾고 쭉쭉 이겨서 전국 제패까지 하는 느낌? 나는 슬램덩크가 지금까지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이유 역시 너무 작위적인 해피엔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는데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이 영화의 최대 빌런은 봉태규가 분한 광태이다. 광태 녀석은 형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와 잘 될 수 있던걸 망쳐놓은 녀석이다. 광식이가 윤경이와 잘 되길 응원하는 입장에선 아주 미운 민폐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태 녀석은 왠지 밉지가 않다.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김주혁과 봉태규의 매력이 최대로 발현된 영화라는 취지의 평을 했던 것이 얼핏 기억나는데, 그 이야기에 매우 공감한다.
사실 이 영화가 명작인 이유는 캐스팅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토리의 가장 큰 줄기인 광식이의 오랜 짝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부모님을 잃고 서로 의지하고 챙기며 살아가는 광식이-광태 형제의 스토리라인, 봉태규와 친구들 (잠실본동 나라를 걱정하고 풍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나오는 장면도 너무 조합이 좋고 재미있다. 그리고 이요원 역시 모든 동아리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게 이해가 갈 정도로 단아하고 예쁘게 나오며, 광식이가 자길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먼저 다가가진 못하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술이 취해 뻗어있는 정경호를 옆에 두고 봉태규와 대화하는 장면과, 결혼식 장에 나타난 광식이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요원 특유의 약간 슬퍼 보이는 눈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영화 속 패션이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무렵, 나는 패션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네이버 “디젤매니아”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특히 봉태규의 디스퀘어드, 디올, 디젤 아이템들을 보면 그 시절의 내가 그립고, 생각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든다. 고 김주혁 배우와 봉태규 배우 모두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패셔니스타들인데 그 두 사람이 유일하게 같은 영화에 나온 작품이 바로 “광식이 동생 광태”이다. 왠지 아래 장면에서 김주혁 배우가 착용하고 있는 야상 느낌의 파카를 보니, 1박2일에서 더블탭스로 멋스럽게 아메카지 룩을 완성한 채 환하게 웃던 고 김주혁 배우가 떠올라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