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잌 Mar 26. 2023

<하얀 거탑> 장준혁이 성공한 사람인 이유

“인복”과 “호칭"에 관한 이야기

얼마 전 평소처럼 잠들기 전 OTT 플랫폼들을 쭉 훑어보다 딱히 보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하얀 거탑>이나 한 편 보고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눌렀던 기억이 있는데, 약 6일 후인 오늘 난 웨이브에 올라와 있는 <하얀 거탑 리마스터드>의 마지막 회인 40회를 보고 있다. 미친 흡입력이다. 심지어 이번 주는 매일 퇴근 후 저녁 및 술 약속이 있었는데.


그만큼 <하얀 거탑>은 나의 최애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정주행 하곤 하는데, 늘 이런 식이다. 의도하고 다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한 편 틀었다가 푹 몰입 돼서 마지막 편까지 봐버리고 만다. <하얀 거탑>은 스토리를 크게 과장 선거 위주의 전반부와 의료 소송 위주의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어렸을 땐 장준혁이 미친 듯이 성공을 위해 질주하며 상대적으로 훨씬 더 다이내믹한 전반부만 재밌고 후반부는 노잼이라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장준혁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많이 드러나는 후반부도 전반부만큼 재미있다.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은 걸까?


어쨌든 난 <하얀 거탑>을 볼 때마다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캐스팅에 늘 감탄하곤 한다.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의학 드라마의 특성상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배역들 중 연기가 어색하거나 떨어지는 배우를 한 명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보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 빌런들 -예를 들어 송선미-도 그만큼 본인의 역할에 충실히 연기했기 때문에 그토록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워낙 많은 연기자들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던 작품이었던 만큼, 이미 작중 배역들이나 배우들에 대해 사람들이 쓴 글들이 매우 많은데 -특히 일생일대의 열연을 보여준 장준혁 역의 김명민 배우나 이 드라마 이전까지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반전 연기를 펼친 우용길 부원장 역의 김창완 배우님, 아니면 이주완 과장 역의 이정길 배우님에 대한 글들-, 나는 오늘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지 않는 배역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제는 "인복"이다.




장준혁은 성공한 사람인가?


오늘의 주제인 "인복"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성공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 장준혁은 비록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매우 성공한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국내 최고의 병원인 명인대학교 병원 외과 과장 자리에 오른, 주위 사람들이 수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할 때 단순히 “저, 장준혁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대화를 종결시킬 수 있는, 말 그대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의다. 따라서 커리어 적인 측면에서 그의 삶은 명백히 성공한 삶이었다.

비록 거만하고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이지만 처절하게 본인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장준혁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다만, 앞서 내가 던진 질문은 커리어나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성공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난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판단하는 데에 있어, 그 사람이 숨을 거둘 때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슬퍼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슬퍼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가 매우 의미 있는 지표라 생각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명도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 없이 쓸쓸히 죽는다면 나는 그 사람은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아무리 평생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많은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임종을 맞는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장준혁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 생각한다. 비록 최고의 외과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만을 위해 쉼 틈 없이 달려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배신, 이용하고 상처를 주며 수많은 적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외과 후배들, 아내, 장인, 친구, 내연녀, 그리고 극 중 내내 서로 대립해 왔던 스승 이주완 교수까지 모두 진심으로 슬퍼했기 때문이다.




장준혁은 인복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극 중 우용길 부원장은 장준혁에게 “인복”이 있다는 소리를 자주 하는데, 이는 사실 자기가 그를 도와준 것을 잊지 말라는 생색의 말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다만, 장준혁이 과장 선거와 의료 소송 대응 관련해서 우용길 부원장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은 것 역시 사실이며, 부원장 역시 장준혁에게 얻을 것이 있어서 도와준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인복”의 범주에 포함되긴 한다. 다만, 장준혁은 그 외에도 순수하게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그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중에서도 장인인 민충식과 내연녀인 강희재가 장준혁의 가장 큰 “인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장준혁의 장인인 민충식은 장준혁을 명인대병원 외과 과장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는 이주완 과장이 순순히 외과 과장 자리를 장준혁에게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낌새를 채자마자 본인의 모든 돈과 인맥을 동원해 장준혁 선거 캠프를 차려서 물심양면으로 선거전을 지원했으며, 앞서 언급한 우용길 부원장 역시 민충식이 아니었으면 포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장 선거 때는 본인이 직접 투표인들 차 트렁크에 현금이 가득 담긴 사과 박스를 실었고, 의료 소송 때 역시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려주었다.


뭐 이건 사위 사랑이 조금 유별난 장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민충식과 장준혁의 관계는 확실히 뭔가 그 이상의 끈끈함이 있다. 극 중 장준혁은 시골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흙수저 개천용이며, 민충식은 외동딸 하나뿐인 (것으로 보이는) 돈은 매우 많지만 명예에 목말라하는 졸부 느낌의 의사이다. 둘은 각자 서로에게 없는 아버지와 아들 역할을 해주며 사실상 부자 지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특히 본인이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는 (뭔가 힘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제일 먼저 연락하는 장인이 아닌)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준혁과는 달리, 민충식의 장준혁에 대한 애정은 본인의 친딸인 민수정에 대한 애정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민충식 본인은 자기가 못 이룬 꿈들을 장준혁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뿐이다, 장준혁에게 투자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넘기곤 하지만, 극 전체를 통틀어 따져봐도 민충식만큼 장준혁을 아끼고 챙기는 사람은 없다.


아니 막말로 세상에 어떤 장인이 사위에게 자기 딸 말고 다른 여자 있어도 괜찮은데 단지 지금은 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기니 조심하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겠나? 이는 명백히 장준혁을 그의 친아들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장준혁이 수술을 미루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극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준혁에게 버럭 화를 내는 모습, 수술을 앞두고 준혁의 후배들에게 제발 우리 사위 잘 부탁한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그리고 수술 시작 후 암이 너무 전이되어 수술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모습에서는 애타는 부성애가 느껴졌다.

본인의 딸보다 사위의 성공과 행복을 더 염원하는 장인을 만났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인복”이다.

내가 생각하는 장준혁의 또 다른 “인복”은 바로 그의 내연녀 “희재”이다. 가끔씩 <하얀 거탑>을 보다 보면 작가가 불륜옹호론자임이 분명하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희재라는 배역과 희재와 준혁의 관계는 매력적이고 또 애절하게 묘사된다. 특히 귀엽고 준혁을 사랑하지만 철없이 준혁에게 기대기만 하는 민수정과 극명히 대조되게, 성숙하고 지친 준혁을 보듬어주고 준혁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모습이 특히나 매력적인데, 김보경 배우는 그 역할을 정말 너무나도 잘 소화해 냈다.


사실 희재는 (와이프든 내연녀든)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애인의 모습에 매우 근접한 사람이다. 병원 근처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며 병원 내 소식과 비밀을 파악해 전달해 주는 정보원 역할도 해주고, 늘 준혁이 가장 지치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면서도, 절대로 준혁에게 와이프의 험담이나 자기에게 오란 말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준혁의 와이프가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서 준혁에게 미리 귀띔해 주고 연기를 통해 수정의 의심을 해소시켜주는 센스까지 갖추고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준혁을 사랑하기에 누구보다 그의 성공을 바라며, 준혁이 우여곡절 끝에 과장 자리에 올랐을 때 민충식 못지않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질척거리지 않으며, 극 중 내내 한 번도 준혁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그냥 그를 묵묵히 사랑하고 곁에서 외조(?) 해준다. 그래서 준혁과 희재의 관계는 약간 드라이해 보이는데, 그 드라이함 속에 응축되어 있던 애틋함과 절절함이 둘의 마지막 작별 장면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내연녀인 희재는 직접 병실에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둘의 마지막 작별 역시 전화를 통해 이뤄지는데, 여기서도 희재는 그녀의 드라이함을 유지한 채 준혁에게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해 줄게”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혁에게 “가지 마”라는 부탁을 하긴 했지만, 전화를 끊은 후 혼자 오열하는 희재와 그가 그토록 앉고 싶어 했던 외과 과장 교수실에서 조용히 혼자 슬픔을 삭히는 준혁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작별 장면은 정말 최고로 준혁-희재스러운 명연출이었다.

죽기 전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호칭에 관하여


희재가 준혁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인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그녀가 준혁과 준혁의 유일한 친구인 최도영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선균 배우가 연기한 최도영 역은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캐릭터의 성격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여전히 보수적인 편인 한국에서도 유난히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고 의사들끼리 한 다리 건너서 모두 서로 알고 지내는 의료계에서 동료 의사 및 소속 병원과 척을 지고, 그리고 친한 친구의 반대편을 돕는 모습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사실 현실성은 그냥 핑계일 수도 있는 게, 나는 소송에서 장준혁과 반대편에 선 이선균, 송선미, 손병호, 기태영 등등을 모두 싫어하긴 한다. 하지만 <하얀 거탑>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이선균 본인 포함- 최도영을 매력적이거나 인상적인 캐릭터로 꼽는 분들을 거의 보지 못한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극 중 도영은 준혁이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준혁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의료 소송에서 권순일 유가족의 편에 선다. 과장 선거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고, 준혁이 가끔씩 힘들다고 위로를 받으러 오거나, 대단한 수술을 성공시킨 후 친구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찾아왔을 때도 시큰둥하다. 최도영에게는 우정이나 의리보단 자신의 의사로서의 신념이 더 중요하고, 이로 인해 (어쩌면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사이가 멀어진다. 하지만 결국 준혁의 임종 장면에 준혁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도영이며, 이는 아마도 희재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 흔한 일 같지만 잘 안 그런다? 자기도 잘 생각해 봐, 누가 "준혁아" 해주는지... 아마 그 사람이 바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일 거야."  

-강희재


희재가 저 이야기를 했을 때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바로 그의 어머니와 도영뿐이다. 심지어 이 이야기를 해준 희재마저 그를 "자기"라고 부르고, 준혁을 끔찍이 아끼는 장인 민충식도 그를 "장 교수"나 "장 과장"으로 부른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를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굉장히 애정이 담긴 행동이며, 의외로 필요한 전제 조건들이 많다.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과, 혹은 내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과 나이도 서로 비슷해야 하고,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특히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아주 가깝고 편한 사이여야만 가능하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주위에서 나를 변호사님이나 직급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나는 원래 사람들이 편하게 날 마잌이라 불러주는 것을 선호하며, 특히 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먼저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에게 편하게 마잌, 마잌 불러줄 수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멀리 미국에 있고, 어차피 다들 각자의 커리어와 육아 등으로 바빠 자주 보지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빈지노의 <Relation>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에 "내 옆에 있는 건 일로 엮인 이들뿐, 일이 다 끝나면 이름 모를 이름들, 디딤돌을 밟듯 지나고 나면 서로가 굳이 기억하진 않아"라는 가사가 있다. 그리고 나는 요새 일로 엮인 이들로부터 이름이 아닌 존칭이나 직급으로 불릴 때마다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끼는데, 어머니를 제외하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름으로만 불러주는 친구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두 친구는 마지막까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작별한다.

하지만 준혁의 임종 직전 간성혼수로 인해 본인이 아직 수술실에 있다고 착각하며 횡설수설을 하던 와중에도 오직 (애타게 계속 "준혁아"라 그를 부르는) 도영만 알아보고 그의 손을 잡고 마지막까지 이렇게 끝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다 숨을 거두는 것을 보면, 역시 도영은 준혁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소중함의 증표는 바로 서로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이며, 호칭에는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 오늘은 꼭 내가 편하게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야겠다.  




故 김보경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와 영화: <헤어질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