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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Aug 21. 2020

24시간의 휴가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나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다. 


결혼 전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무료하리라 느껴질 만큼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나니 혼자 있는 시간은 영영 내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 갑자기 아내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기야, 인터넷 게시판 보다 보니, 남편한테 휴가를 준대. 이번에 4일 쉬는 동안에 자기한테 24시간 휴가를 줄게. 내가 아기 데리고 친정에 갔다 올 테니까, 빈집에서 혼자서 시간 보내"


아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작스러운 발언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평소에 일과 육아 그리고 자기 계발을 병행하다 보니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쓴다.

대략 하루 일과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6시 30분경 기상

6시 30분 ~ 7시 틈새 독서

7시 아기 기상하면 놀아주기


8시 출근 준비

8시 30분 출근

18시 30분경 퇴근, 집 도착


18시 40분 저녁식사, 아기 저녁 먹이기

19시 30분 아기 목욕시키기

20시 아기 양치질


20시 30분 아기 재우기

21시 30분 평소에 처리 못했던 일처리(이유식 만들기, 육아 용품 구입 등)

22시 인터넷 정보 검색, 글쓰기, 책 읽기 등 

24시 취침


나는 여유가 생기면 생각보다 시간 활용을 못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적으로 인터넷으로 요리 유튜브를 보거나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와 관심 있는 일본 방송을 찾아본다.

술과 담배는 즐기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취미로서 상당히 괜찮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면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작년 11월부터 올해 7월 초까지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영향도 있었지만, 시간 활용을 제대로 못했던 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24시간의 휴가를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간 하지 못했던 것을 실천했다.


1) 그간 망설이고 있던 브런치 작가 신청에 도전했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란 말이 있다. 완벽함보다는 완수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데, facebook 본사에 걸려있다는 설도 있다.


나는 대학 졸업 후에 자신감은 많이 상실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탓이라 생각한다.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노력하여 내가 원하는 바를 척척 손에 넣었던 터라 더 그렇다.


그런데 최근 나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다. 아기가 점점 자라고 있어서인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이 열정이 타오르고 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실패를 걱정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중인데,  그렇게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하고, 신청한 결과, 심사 통과 메일을 받았다.


2) 종이 신문을 읽었다.


나는 활자를 접할 때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책은 구매하지 않으며 종이책을 구매하고,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읽을 때도 모니터상으로 읽기보다는, 특히 중요한 보고서일 경우는 더더욱 인쇄해서 읽는다. 그 이유는 인쇄물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오고 가독성이 좋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 온라인 뉴스가 일반화되어 종이 신문을 읽는 횟수가 줄었고, 그 결과 종이신문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번 휴가 동안 관계 회복을 위해 다시 종이 신문을 손에 쥐니 좋은 점이 있었다.


온라인 뉴스는 대부분 유명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해당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주요 기사를 위주로 반강제적으로 읽게 되어 있는데, 종이신문에서는  헤드라인 기사뿐만 아니라 지면 한쪽 귀퉁이에 있는 기사까지 훑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지면 광고까지 정보로서 참고하였다.


3) 지인과 약속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얼마 전까지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부서 이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동료와 함께 식사라도 할 요량으로 연락을 취해봤으나 개인 일정으로 인해 만날 수 없었다. 약속은 잡지 못했지만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친한 사이에도 내가 먼저 연락하여 약속을 잡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직장 동료가 나에게 "OO 씨, 오늘 저녁에 맥주 한 잔 어때? " 하면 별일 없는 이상 OK 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여 약속을 잡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익숙하지 않고 매우 어렵다.

그게 뭐가 어렵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상대방과 약속을 잡는 것은 수학 문제 푸는 것보다 어렵다


 "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괜히 내가 설레발치는 것은 아닐까?" " 상대방이 바쁘면 어쩌지? 괜히 시간만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등 걱정을 먼저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나름 큰 시도를 한 것이고, 나를 둘러싼 큰 장벽을 허물어뜨린 느낌이다.


대학시절, 학기 중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생활하며 지냈고, 한 주가 지날 때면 성취감을 느끼며 주말을 마음껏 즐겼으나, 방학 때면 어느 누구보다도 늘어졌다. 별달리 하는 것도 없이 빈둥거리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하면서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못 봤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밤을 지새웠다. 당시,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은 나의 사전에는 등재할 시도 조차 하지 않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요즘 말로 좋게 말하면 여유 FLEX라고 할 수 있을까?


망중한(忙中閑)에 즐긴 24시간. 

마음 한 구석에는 아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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