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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Aug 29. 2020

당신은 몇 점짜리 부모인가요?

내가 성장하면서 본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다. 배움이 짧은 탓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앞뒤가 꽉 막힌 듯이 가족들과 대화도 잘 안되고, 본인이 믿는 것이 있으면 그게 전부인 듯이, 그 생각을 절대 꺽지 않는 분이시다.


"나이 들어서 그렇지, 너희들이 이해해야지, 어쩔 수 없잖아?" 


아버지랑 대화하면 답답해서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면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그랬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어머니도 아버지와 생활을 하면서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답답하게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지만, 세월의 힘인지, 부부의 정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인지, 아니면 반쯤은 포기하신 것인지, 아버지 때문에 속상할 때면 적당히 혼잣말로 푸념을 늘어놓으시다가 말곤 한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로서 우리 집의 경제권을 쥐고 집안 살림을 잘 꾸려나가셨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부모님 또한 수저 두벌과 옷가지 몇 점만 가지고 신혼 생활을 시작하셨던 터라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자식들을 데리고 유원지에 나들이를 간다든지,  가족 전체가 외식을 한다든지, 기념일에 멋진 선물을 산다든지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또한 자식들에게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겠지만 경제적 안정을 이루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여자로서 하고 싶은 것마저 포기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는 어머니 원망도 많이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맛있는 과자도 매일 먹고, 오락실에 가서 재밌는 게임도 많이 하고 싶었지만  경제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는 절대 허락을 하지 않아, 언제나 욕구불만이었다.

부모님을 점수로 매기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어린 나에게는 0점짜리 부모님이었다.


우리 아기는 무슨 기질을 타고났는지 항상 즐겁다. 내가 어려서 별 것도 아닌 일에 배꼽 잡고 웃으면 어머니는 "날아가는 새, 똥구멍을 봤냐, 그래, 한 창 웃을 때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우리 아기도 내가 조금만 재밌게 해 주면 영화에서 나오는 효과음처럼,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아기 특유의 웃음소리를 낸다.


비단 웃는 것뿐만 아니라, 밥투정을 하거나 음식을 가리지 않고, 심술부리는 일 없이 잘 놀고, 제 시간 되면 잠투정하지 않고 잘 잔다.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기,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고, 잘 자는 아기가 딱 우리 아기라는 생각이 든다. 


점수를 매기자면 우리 아기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내 자식이 100점이 아닌 경우가 드물겠지만, 나는 평가에 굉장히 엄격한 편이고, 내 아기라고 다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우리 아기는 내가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고, 여자 아기보다는 남자 아기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는 점수를 매기면 좀 더 낮은 점수가 나오리라. 다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기'라는 기준에는 완벽하게 들어맞는지라 100점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 대학공부까지 시키고 결혼도 시켰건만, 아직도 자식네 밑반찬 준비며, 손녀 돌봐주기며,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바쁘다 느닷없이 전화해서 "엄마, 지금 집에 있어? 가도 되지?" 하며 본가를 찾아가도, 어머니께서는 싫은 내색하지 않으며, 손녀를 활짝 핀 웃음꽃으로 맞아주시고, 손녀 간식과 자식 끼니까지 챙겨주신다. 아버지 또한 자식네 왔다고, 손녀 이유식 만들어 주라며 밭에서 갓 따온 오이며 가지며 호박 같은 채소를 아낌없이 나눠주신다.


얼마 전 본가에 들렀을 때는 문득 '부모님도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불혹을 바라보고 있으니, 부모님 얼굴의 주름이 깊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인간이 늙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오로지 자식 걱정, 가족 걱정만 하며 정작  본인들 신변은 돌보지 않는 것이, 자식으로서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상하다.


나는 아들로서 몇 점일까?

우리 아기는 엄마 아빠를 몇 점이라 생각할까?


아기가 외친다. "아빠, 밖에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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