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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Jan 21. 2021

27. 지식인이 외면하는 한국 교회

기득권 동맹에 기생하는 개신교 목사들 종교자영업자로 전락  

 서울 도봉구에 있는 우리 교회는 13년째 정의여고 강당을 예배실로 사용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거의 모든 예배와 모임을 온라인으로 실시 중이다. 학교 건물이라 방역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 드리는 일요일 온라인 예배 접속 인원은 1000명 가까이 된다. 최근엔 전남 여수에서 어느 분이 새신자 등록을 했다. 경기도 덕소의 우리 교회 자매교회엔 지방의 다른 교회 교인이 상당액의 헌금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가정을 돕는 특별헌금이었다.  

 카타콤은 로마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이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 교도들을 핍박받던 시절 이들은 카타콤으로 피신해 예배를 드렸다. 박해의 세월이 길었기에 거기서 태어나 자라 살다가 죽어 카타콤에 묻히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들의 예배를 받으셨듯이 나는 코로나 시대 당국의 방역 방침에 따라 신자들이 각자 집에서 드리는 랜선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거라 믿는다.

 일부 교회와 교계 단체들은 왜 지방정부와 소송까지 벌이면서  대면 예배를 고집할까? 한 신학대학원 교수는 대형 교회의 경우 지난 1년 간 헌금이 20~30% 줄어들었을 거로 추정했다. 

 물론 대면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교인들도 있다. 더욱이 농어촌 지역 노인들은 온라인 예배 자체가 익숙지 않다. 도농 간·세대 간 디지털 디바이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형교회를 비롯해 앞서 비대면 예배를 안착시킨 교회들이 도울 수 있다. 아니 미자립교회를 돕듯 개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선교의 비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소송전까지 벌이며 당국에 맞서는 건 불안감 때문이라고 본다. 헌금이 줄었을뿐더러 대면 예배를 회복했을 때 현장 예배가 외면당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대학처럼 교회도 위기를 맞은 것이다. 비대면 예배로 충족되지 않는 건 사실 목사와의 직접 대면뿐이다. 목사들이 하나님을 교회에 유폐하지 않았다면 현장 예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교회에 갇혀 계실 리 없다. 

 신천지예수회, BTJ열방센터와 더불어 교회발 대규모 집단감염의 진원지였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본인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었다. 그는 격리조치를 통보받고서도 광화문 집회에 나가 마스크 없이 연설했다. 심지어 “여기(집회) 오면 병(코로나)이 낫는 거”라고 외쳤다.  

 그가 “하나님 꼼짝마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한 건 하나님 모독이다. 백보양보해 과대망상이라 치자. 무엇보다 기성 교회가 그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는 건 그가 하나님을 우상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물질적 감사가 있어야 되는데 주님을 섬겨 보니 하나님도 돈에 약하다”고 말했다. 창조주 하나님 외에 맘몬(재물)은 물론 권력, 명예, 심지어 자식까지 모든 피조물을 섬기는 건 우상 숭배다. 그는 하나님을 우상 숭배자로 규정한 셈이다. 전광훈씨는 2019년 여름 소속교단에서 면직, 제명당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그 엄청난 규모, 권위적인 건축 양식과 엄숙미에 나는 압도당했다. 이어서 든 생각은 이 웅장한 건물에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것이었다. 출처 : 바네사스타일 블로그


 어느 기독교 단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행정 당국의 제재로서의 교회 폐쇄라는 용어에 대해 “‘예배 일시 중지’로 바꿔야 하며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예배는 일시적으로도 중지되지 않았고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은 적이 없다. 하물며 교회에 대한 탄압이라니 터무니없는 프레이밍이다.  

 서울 사랑의교회는 신도 수 9만 명의 초대형 교회이다. 이 교회는 지하 예배당의 서초역 일대 도로 불법 점용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대법원이 원상을 회복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커뮤니티 처치’를 표방하는 이 교회는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 언젠가 이 교회 앞을 지나는데 ‘하나님이 다하셨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속으로 ‘하나님이 당하셨는데 이응 받침이 탈락해 다하셨습니다가 됐군’ 했던 기억이 있다. 

 유럽의 식자층엔 친개신교 성향 인사가 많고, 미국의 식자층엔 구교인 친가톨릭 성향의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유럽은 가톨릭이, 미국은 개신교가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이재철 목사는 “유럽과 미국의 식자층은 가톨릭과 개신교 중 어느 쪽이 더 성경적으로 행동하는지 헤아려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신교와 구교 중 어느 쪽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할까? 아니 한국의 종교 기득권 집단의 주류는 개신교도인가, 가톨릭 신자인가? 나는 한국의 기득권 동맹에 기생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종교 자영업자로 전락했다고 본다.  

 오래 전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엄청난 규모, 권위적인 건축 양식과 엄숙미에 나는 압도당했다. 그러나 이어서 든 생각은 이 웅장한 건물에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의 ‘메가 처치들’이 언젠가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처럼 텅 빌 것으로 본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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