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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Feb 05. 2021

28. 역사적 예수는 진보주의자였다

공생애는 머리 누일 곳조차 없었던 홈리스 ... 기득권층엔 큰 위협

 대학원 시절 성당에 다니는 가까운 후배가 있었다.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서 만나면 자연스레 주말에 어떻게 지냈는지가 화제가 됐다. 보통 일요일엔 둘 다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고 저녁엔 밖으로 나가 한 잔 했다. 나중에 신부가 된 후배는 수시로 보좌신부와 성당 앞에서 한 잔 했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과 교회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한 잔 했다. 

 언젠가 내가 섬기던 교회 부목사로 있던 분에게 이렇게 물은 일이 있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드셨을까요?"

 질문의 의도를 간파한 그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드셨겠죠. 드셨어도 아마 많이 드셨을 겁니다.” 

 예수가 행한 첫 이적은 물로 최상급의 와인을 만들어 술이 떨어져 낭패를 당한 혼주로 하여금 결혼식 피로연에 온 하객들을 환대케 한 것이다. 예수는 즐겨 먹고 마신다고 사람들에게서 술꾼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누가복음 7장 34절)

 그 시절 즐겨 부른 노래 중에 ‘금관의 예수’가 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김지하가 노래말을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기독교 민중가요의 효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하는 희곡 ‘금관의 예수’도 썼는데 거지, 문둥이, 창녀를 돕는 수녀, 이들을 등쳐먹는 경찰과 악덕업주, 이런 현실을 외면하는 대학생과 신부가 등장한다. 이 연극을 올릴 무대에서 쓸 곡으로 그는 노래 금관의 예수를 만들었다. 김지하는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이 아니라 금관을 씌움으로써 권력과 타협하는 기독교를 풍자했다. 금관의 예수라는 파격적인 제목은 결국 노래를 발표할 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제목으로 순화됐고, 양희은이 불렀다. 권위주의 시대 권력과 타협했던 기독교는 훗날 맘몬-금권과 타협했다. 

 작가이자 목사인 박총은 자신의 저서 <욕쟁이 예수>에 예수가 입에 담은 욕 ‘독사의 자식’은 날 것으로 번역하면 ‘뱀새끼’, 한국식으로 번안하면 ‘개새끼’라고 썼다. 예수가 내뱉은 이 욕엔 불의를 향한 의분이 배어 있었다. 구약성경의 선지자들도 사회구조적 불의에 대해 불같이 노하고 추상같은 경고를 했다. 

 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 나그네는 성경에 등장하는 4대 취약 계층이다.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야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고 했고, 과부·고아를 괴롭히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너희 아이는 고아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 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겁박이다. 공동번역성경은 출애굽기의 이 대목에 약자보호법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놨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편이다.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하나님은 진노했다. 

서소문역사공원에 있는,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역사적 예수는 고달픈 밑바닥 삶을 살았다. 출처 : 신선님의 블로그


 예수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비혼모에게서 태어난 사생아 신세였고 태어나자마자 이집트에서 난민 생활을 했다. 갈릴리의 노동자였고 공생애가 시작된 후엔 머리 누일 곳조차 없는 홈리스였다. 그런 예수가 산업현장에서 매일 노동자 네댓이 떨어지고, 끼이고, 깔려 죽는 이 땅의 구조적 불의를 용납하실 리 없다.  

 본디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야성을 잃고 부와 권력에 길들여졌다. 한국 교회 역시 언젠가부터 중산층 이상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먹고 살 만해야 다니고 내세울 게 있어야 당당한 기득권층의 종교가 됐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로서 기독교인은 약자와 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선거 때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 같은 교인이라고 해서 뽑는다면 비신자들이 ‘정종유착’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다. 

 개신교 장로였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집권으로 대한민국 출범 당시부터 기독교의 기득권화는 시작됐다. 이승만은 한국을 개신교 국가처럼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권 기반이 취약했던 박정희는 정권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지해야 했다. 당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민간 세력으로는 개신교가 유일했다."(백중현의 <대통령과 종교-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박정희 집권기 개신교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가 이 시절 등장했다. '반공'과 '친미'가 기독교 교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명박도 장로 대통령이었다. 

 누가복음엔 예수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예언이 기록돼 있다 그가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엄청난 배척과 반대를 당해 눈엣가시로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급진 혁명파 지도자 바라바보다도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더 큰 위협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 대신 이 악명 높은 살인자이자 혁명가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박총 목사는 기독교 신자가 급진적인 정치세력보다 기득권층에 더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예수를 닮기엔 한참 멀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만큼 어둔 세상에 빛을, 차가운 사회에 열을 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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