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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Mar 28. 2021

36. 진보적 노인은 일종의 소수자

내 또래는 대부분 보수 ... '내가 좋으면 남들도 좋겠거니'

 마라톤 마니아였던 회사 선배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뛰는 인간과 마라톤을 뛰지 않는 인간. 나이 들어 꼰대가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꼰대가 되느냐, 왕꼰대가 되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꼰대는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horse)라고 말한다. 왕꼰대는 “왕년에 말이야”를 외친다.  

 우리 집은 다섯 식구다. 가족 카톡방은 여섯 개다. 당연히 용도가 다 다르다. 사용 빈도도 다르다. 정년퇴직 후 장년인턴을 하게 됐을 때 나는 딸·아들과의 톡방에 “아빠가 인턴을 하게 됐다”고 올렸다. 아이들로서는 짠했을지도 모른다. 원격으로 데스크를 보고 1주일에 하루 기자들 교육을 한 이 인턴은 3개월 만에 끝났다.

 아내, 해외에 근무하는 딸과의 세 명 톡방은 멤버가 넷이다. 현지 폰을 주로 사용하는 딸이 톡방에 이 ‘폰을 든 여자’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 폰으로 현지에서도 업무 톡을 자주 한다고 한다. 우리 집 고양이 온유가 딸의 남자친구 집으로 떠나기 전 나는 딸을 위해 온유 동영상을 자주 올렸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객지의 딸을 위한 서비스였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시는 80대 후반의 나의 아버지는 톡 헤비유저다. 여러 번 말씀 드려 요즘은 여기저기서 받은 글과 이미지를 가족 톡방에 공유하시는 일을 중단했다. 내가 좋으면 남들도 좋겠거니 하는 게 꼰대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신문사 시절 나는 블로그의 비공개 폴더와 메일함에서 일했다. 요즘은 주로 톡방에서 일한다. 메일함은 하루에 한두 번 열어 본다. ‘나에게 보내는 톡’은 이동 중에 특히 유용한 메모장이다. 강의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주로 애용한다. 몇 년 전 부부학교 스태프를 할 땐 조장들 톡방에 이렇게 ‘톡방의 원칙’을 제안한 일이 있다.  

1. 글은 올리고 싶을 때(올릴 수 있을 때) 올리고, 각자 알아서 읽고 싶을 때(읽을 수 있을 때) 읽는다. 낄끼빠빠가 아니라 올올읽읽.

2. ‘일하는 톡방’인 만큼, 하루에 한 번은 꼭 방문해 읽는다.

3. 올라온 글에 대해 형편이 되는 대로 반응한다.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 ㅋ

4. 모든 소통과 공유는 범위가 적절(타당)해야 한다.      

 모교에서 대학동문인 언론계 동료 아홉과 팀티칭 하는 윤상삼기념강좌를 꾸리기 위해 만든 강사진 톡방엔 얼마 전 이렇게 올렸다.      

“‘돼지 백 마리 몰기보다 기자 열 명 데리고 가는 게 더 힘들다’는 이 바닥 속설이 있습니다. ㅎ 이 강좌는 동문 언론인 열 사람의 팀 티칭입니다.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팀워크를 위한 최소한의 스킨십입니다.”      

 지난해 나는 몇몇 톡방에서 나왔다. 그랬다가 다시 초대해 복귀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엔 두 번째로 대학 동기들 톡방에서 퇴거했다. 조국, 추미애, 윤미향 등을 비아냥거리는 동기의 펌글이 불편해 이런 거 올리지 말라고 한 마디 한 게 발단이었다. “내가 웃자고 하면 남도 웃겠거니 하는 게 꼰대의 특징, 누군가에겐 폭력”이라고 하자 다른 동기가 “유머를 모르는 좀생이”라고 받았다. 설사 소수라 하더라도 누군가 불편해 할 글은 올리지 말라는 게 취지였다. 유머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유머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내가 웃자고 하면 남도 웃겠거니 하는 게 꼰대의 특징이다.


또 다른 동기는 나에게 불편해도 못 본 척 넘어가는 대범함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집행부의 입장을 들어보겠다고 했지만 관여할 생각이 없는 듯해 내가 나왔다.

 내 또래는 대부분 보수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 노인은 동년배들 사이에서 소수자다. 2018년 한국갤럽은 전년도에 실시한 서베이를 토대로 연령대별 정치 성향을 파악한 결과 54세부터 보수 성향이 진보를 역전했다고 밝혔다. 보수적 노인과 만났을 때 나는 더러 무색무취한 듯 굴기도 한다. 일종의 보호색이다.

 보수가 소수자인 톡방에서 역으로 진보가 보수를 소외시켰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가정의 상황이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념적 소수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했을 거 같다.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가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실은 누구 말인지 불확실하다. 심지어 나중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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