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과는 불가근불가원 ... 가까워져 권언유착, 검언유착, 경언유착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에 관한 경구이다. 기자로서는, 취재원 관리에 관한 금과옥조이다. 취재원은 말 그대로 가까이할 수도,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멀리할 수 없는 건 멀어져서는 취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까이할 수 없는 건 아니 가까워져선 안 되는 건 취재원과 유착이 생기기 때문이다. 언론이 권력과 깊은 관계를 맺는 권언유착, 정치계와 가까워지는 정언유착, 공무원과 가까워지는 관언유착, 검사와 가까워지는 검언유착 무엇보다 금력과 가까워지는 금언유착 내지는 경언유착은 모두 감시해야 할 취재원과 너무 가까워져서 생긴다. 아무리 적폐집단이라도 오랫동안 출입하면서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고 나면 그 집구석 사정을 수긍하게 된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해당 집단에 대해 ‘경사’가 생기는 까닭이다.
기자 지망생인 한국잡지교육원 19기생들이 구본창 코피노 활동가와 기자회견 형식으로 실습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불가근불가원, 기자는 취재원과 유착되어서는 안 된다.
취임 후 한 번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1월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던 '정규재tv'와 인터뷰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 재임 중 파면당하기 한 달 남짓 전이었다. 나는 정 주필이 당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 박 전 대통령에게 인터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여섯 권의 인터뷰집을 냈다. 이들 책을 내기 위해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해 미디어에 연재했다. ‘위로 아닌 직설로 응원하는 20대의 홀로서기’라는 부제를 달아 <너답게 살아갈 너에게>를 냈을 때의 일이다. 출판사 편집자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인터뷰를 제외하자고 말했다. 명색이 청춘 멘토링 책인데 박 회장이 경영하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신입사원들도 희망퇴직을 시켰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 회장은 내가 몇 번의 인터뷰 시리즈를 할 때 첫 인터뷰이였다. 편집자와 상의해 박 회장의 입장을 들어본 후 원고를 손보기로 했다. 그는 그러나 그냥 자기 이야기를 빼 달라고 했다.
“사람이 미래다”는 박 회장의 믿음이 담긴 두산의 슬로건이었다. 당시 한 신문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의 기업광고와 현실이 동떨어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썼다. 이 회사가 시장 상황이 나빠져 신입사원을 포함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려 한 것은 사실이었다. 회사 측은 “시장 전망에 실패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신입사원도 희망퇴직 대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빗발쳤다. 박 회장은 긴급히 신입사원을 배제하라고 경영진에 지시했다.
그 후 박 회장이 장문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원의 희망퇴직에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더구나 신입사원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입니다. 사원·대리급은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매번 내가 반대해 간부급에 대해서만 세 차례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조직이 위는 대롱 같고 아래는 지나치게 비대한 기형이 돼 버렸습니다.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수축이 돼가 비용을 줄여야 했습니다. 경영진이 더 이상 간부만 희망퇴직 받기 어렵다고 사정사정하더군요. 이야기를 듣다 코너에 몰려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미온적으로 답변한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신입사원이 포함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저녁 8시, 밤을 꼴딱 새우고 다음 날 새벽 6시에 즉시 철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새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니다.
지난해 사원 포함해 십여 명이 재입사했습니다. 대학 졸업하던 해 은행원을 천직으로 삼겠다고 외환은행에 취직했던 때를 돌아봤습니다. 나를 비난한 젊은이들의 마음이 공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사람이 미래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죠.”
기업인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말미에 그는 “두서 없는 넋두리로, 공개되지 않을 거라 믿고 썼다”고 적었다. “한번은 누구에게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희망퇴직 건 이후 누구에게도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절절하게 공감합니다. 넋두리 상대로 선택 받은 것, 영광입니다. 공개하고픈 직업적 욕망을 애써 누르겠습니다.”
몇 달 후 나는 그의 양해를 얻어 이 이야기를 후배가 대표로 있는 경제 월간지에 썼다. 직업적 욕망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그 후로 박 회장은 나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어쩌면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은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다.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기업으로서는 존속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그 후 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이 현대중공업에 지분을 매각해 새 주인을 맞았다. 두산의 재도약은 두산중공업의 재기에 달렸다. 소비재 중심이었던 두산을 인수합병(M&A)을 통해 인프라 지원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공업 그룹으로 변모시킨 주역이 박 회장이다.
7년여 재임한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난 박 회장은 최근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란 산문집을 냈다. 직접 쓴 이 책에 그는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었고,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지만, 그게 다 공부였지 싶다. 그걸 깨닫고 나니 양지가 아닌 곳에 있는 순간에도 사는 것이 좋다.”
기자란 외로운 직업이다. 어쩌면 상종 못할 직업인인지도 모른다. 취재원 입장에서도 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