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정 Jan 13. 2024

"말레이시아? 뭐 그런데를 왜 가냐?"

"후진국 아이가?"

말레이시아에 취업하게 됐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맨 처음 들은 말이다.


"말레이시아? 뭐 그런데를 왜 가냐? 후진국 아이가?"

"석사까지 그렇게 쎄가 빠지게 공부한 애가 아이고... 내 아들이 우짜다 이래 됐노."

"호주로 다시 가는 거는 안되고? 니 그 대표랑 친했다 안 캤나."


2021년 12월, 나는 일본 소재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원래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꿈은 졸업 후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현장 전문가가 되어 활동하고 향후에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개발협력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이하 ESD), 즉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이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신흥분야이지만 일본의 경우 공적개발원조의 역사가 우리나라 보다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개발협력에 관한 학문들도 뼈대 있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당연히 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일본으로 석사유학을 고려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가 2019년 가을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해 반도체 주요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당시 이른바 'NO JAPAN 운동'이라 일컬으며 일본 여행, 일본 제품, 일본 유학 등 일본에 관한 어떤 것도 소비하지 말자라는 대대적 불매운동이 일고 있었다. 나 역시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 대의에 수긍하는 편이었지만 정치와 민간 차원은 구분해서 생각하자는 쪽이었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결심에는 변화가 없었다. 


"배울 수 있는 건 또 겸손히 배워야 나중에 되려 이길 수 있는 법이니까... 그게 오히려 애국이다."




하지만 여느 인생이 그렇듯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발발했고 2년의 학위과정 전체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무엇보다 현장 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주제를 잡아 논문을 써야 하는 개발협력 전공 특성상 이동의 제한은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연구주제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대혼란이 야기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나는 Plan B로써 현장 조사가 필요 없는 연구주제를 일찍이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가 있었다. 


내 연구는 고등교육에서의 ESD 프로그램에 대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례를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두 나라 모두 ESD 프로그램의 포커스가 초중등교육에 맞춰져 왔으며 대학원이 아닌 학부 레벨에서의 ESD 프로그램은 아직 역사가 짧고 신흥 트렌드라는 점에서 같았다. 사례연구의 대상 지정을 놓고 고민하던 와중 감사하게도 나의 모교인 한동대학교가 때마침 Handong Global Citizenship Program이라는 ESD 프로그램을 한국 대학 최초로 론칭하게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재학 중이던 일본 죠치대 (Sophia University)에서도 시기적절하게 Sophia Programs for 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ESD 프로그램을 론칭하게 되었다. 나는 이 일련의 상황을 내게 찾아온 기회로 간주하고 이 두 대학의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동과 집합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결과는 홈런 (Home run)이었다. 


현장 조사의 부재로 불가피하게 대부분의 학생들이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한 추상적인 주제를 연구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을 취한데 비해 나의 경우 실제 시행되고 있는 학위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을 비교한 케이스 스터디이다 보니 실용적이고 직관적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덕분에 논문 디펜스 동안 교수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과 질문이 오고 갔고 나도 차분히 답하여 좋은 분위기에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다른 동기들의 발표에서는 느낄 수 없던 적극적인 분위기에 사뭇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석사를 마친 것과는 별개로 그 이후 나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논문을 쓰는 일은 없을 거야."


되려 꿈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교육 개발협력의 전문가가 되어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을 키우겠다는 꿈도, 박사까지 따교수가 되겠다는 꿈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미약한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열정이 모두 식어버렸다. 석사학위라고 하는 연구자로서의 첫 단추를 잘 꿰었음에도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느냐고? 이유가 있다. 


그냥 공부 자체에 너무 질려버렸다. 중학교 때는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발악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sky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발악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외고에도, sky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후 두 번째로 희망했던 대학에 들어가게 됐지만 내가 원했던 교육학 전공이 없어 방향을 잡지 못하였고 중간에 전과를 하는 바람에 5학년 10학기까지 꽉꽉 채우고 졸업하게 되었다. 군대 2년까지 합치면 대학만 7년 다닌 셈이다. 투자하는 노력에 비해 얻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이 뫼비우스의 띠 마냥 반복되면서 재미를 잃어갔다. 


겨우겨우 졸업을 하기는 하게 되었고 졸업 직후 좋은 기회로 호주에 있는 교육 비즈니스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교육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호주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관찰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흥미를 느꼈고, 대학시절 교육학을 심도 있게 공부해 볼 수 없었던 환경적 아쉬움이 다시금 돋아났다. 호주에서의 생활이 모든 면에서 안정 궤도에 들어선 상태였지만 지금 박차고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진 상태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나이가 되기 전에 차라리 지금 저지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일본 대학원 생활은 기대보다 만족스러웠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여러 가지 제한사항 때문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공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교수님들 밑에서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2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흔히들 말하길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칠 수가 없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지쳐버렸다. 연구와 논문작성이 큰 원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논문도 결국 글을 쓰는 것이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리고 연구라 함은 기본적으로 마치 실험실이나 골방에서 올곧이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게 얼마나 대외적인 소통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또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주어진 형식에 맞게 글로 풀어내야 하는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간과하고 있었다. 단순 분석에 그칠게 아니라 독창성까지 담아내야 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일본 대학원이었지만 영어 학위 프로그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논문 역시 영어로 작성해야 해서 내가 의도한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된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순간도 많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인 건지 다행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잘 끝내기는 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그 일을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2022년 1월, 졸업을 막 앞둔 시점에 나는 도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어디든 좋으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이 되도록이면 한국은 아니기를 바랐다.


'엄마 말대로 호주에서 다니던 회사 대표님한테 다시 연락해 볼까? 나 믿어주던 사람인데...'

'캐나다는 선진국 중 버티기만 해도 영주권을 주는 몇 안 남은 나라라던데... 한 번 알아볼까?'

'전공 살리려면 코이카 해외봉사라도 1년 갔다 올까? 아, 근데 돈 되는 일이 아니라서...'


문득 '말레이시아'라는 단어가 나의 뇌리를 스친 때는 위와 같은 고민들의 끝자락 즈음이었다. 


'말레이시아인가 어디였지? 저번 여름에 나 취업 멘토링 해준 코치가 일한다고 했던 곳이...'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 마냥 말레이시아에 관련된 글과 영상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았다. 단순히 신혼여행으로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온 유랑기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이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그러고는 바로 앉은자리에서 EBS <세계테마기행>의 말레이시아 편을 4시간 동안 정주행 하였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곳

경쟁적인 삶 보다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로움을 가치롭게 여기는 곳


사실 내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흔하게 보고 들었던 다인종 국가에 대한 소식은 주로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인종 갈등과 종교 갈등이 점철되어 사회불안과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정서가 팽배 해지고, 정치인들은 그 상황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우 '다르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인종 다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국가들 중에선 보기 드물게 인종과 종교에 직결되는 갈등이 매우 적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기본 마인드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자.'라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조화로운 다인종 다문화 국가란 어떠한 모습인 걸까?"

"저곳에 가면 정말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저곳에 가면 정말 정신적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한평생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항상 두려웠다. 늘 "남들 하는 만큼만 해라!"는 통념적인 말을 듣다 보니 그 말이 뇌리에 박혔고, 그들이 말하는 '만큼'에 미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근데 알고 보니 말이 쉬운 거지 그 정도에 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무르고 상냥하게 구는 게 경쟁에서 이기는 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살아남고 싶어서 그랬던 적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온 지난날의 끝은 뜻밖에도 승리감과 성취감이 아닌 피곤함과 허무함이었다. 


"그리 모질게 마음먹고살지 않았어도 됐는데. 그런 것치고 뭐, 성과가 딱히 탁월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 인생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살고 싶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히 있지만 부자가 되거나 건물주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내 한 몸 유지 할 수 있고, 가끔씩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여행 갈 수 있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내 사람들한테 저녁식사든 술이든 한 턱 낼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된다. 사실 이 정도야 이미 도달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커리어 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다.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좋다. 승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설령 능력이 된다고 할지언정 일부러 중간 혹은 그 이상만 유지하면서 낮은 포지션에 머물고 싶다. 직책이 올라가 연봉이 늘면 그만큼 책임도 늘어날 텐데 그 상황이 너무 귀찮을 것 같아서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적은 금액이라도 월급날에 맞춰 따박따박 들어오고, 근무시간 끝나면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온전히 내 시간으로 가져가는 삶이다. 운동하고, 게임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수다 떨고 그렇게 말이다.        


이러한 삶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직장문화에서 실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말레이시아에 가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말레이시아에 대해 쓸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