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먼지! 프로탈출러다.
집사와 함께 산 일년 일개월.
나는 탈출을 꿈꾸는 프로탈출러 먼지다.
언젠가 내가 탈출을 한 적이 있다고 얘기했던가.
그날은 목요일 저녁이었다. 해가 어슴푸레 넘어가던 여섯시 반 경.
목요일 저녁은 세탁소에서 찾아오는 시간이지.
세탁소 그 자가 찾아오면, 집사는 현관문을 열고 그자와 대화한다.
나는 중문은 열 수 있지만 현관문은 아직 열 수 없기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집사는 늘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현관문을 잽싸게 닫기때문에
탈출이 쉽지 않지만, 세탁소 그자가 올때면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자가 찾아오면
집사가 굽신대는 모양새가 영 보기 좋지 않지만.
어쨌든 집사는 그자에게 옷을 받고, 다른 옷을 넘겨주고.
돈을 내고 또 돈을 돌려 받는다. 느려터진 인간들. 시간은 충분하다.
게다가 집사는 귀가 어둡다.
나는 세탁소 그자가 오는 날에 맞춰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그날, 역시나 집사는 현관문을 연채 그자와 이야기하고있었고
난 잽싸게 그러나 조용하게 중문을 열고 나와 1층까지 달려갔다.
이제 저 문만 통과하면, 나는 자유다!
나는 바로 나의 스승 아비시니안 선생님을 찾아가
지난 여덟번의 묘생에 관한 고견을 들으며
자유에 대해 논할 것이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라! 열려라 이 답답한 유리문아!
분명 이 문은 자동이었다. 병원에 갈때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이 앞에 가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단 말이다! '
내가 그 유리문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때였다.
누군가 나를 덥썩- 잡아챘다.
'이자는! 세탁소 그 자가 아닌가! 놔라! 놔라! '
나는 그대로 집으로 끌려 (아니, 안겨) 갈 수 밖에 없었다.
세탁소 그자는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고
집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에서 경악하는 표정, 감사의 표정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어머! 먼지야 너 대체 언제 나간거야?! 어떻게 된거지?
나간줄도 몰랐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서 찾으셨어요?"
"얘가 1층 현관 앞에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문이 안열려서 다행이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집사의 감사 인사를 스테레오로 들으며 집으로 잡혀왔고
그날 집사와 큰 덩어리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덩치가 너무 작아서 1층 유리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만약 조금 더 덩치가 컸더라면, 유리문이 열렸을 것이고
나는 자유를 찾아, 스승을 찾아, 이 집을 탈출할 수 있었다!
통탄할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탈출을 위해 증량에 힘써왔다.
집사가 할일없어 보이는 순간이면 난 다가가서 집사에게 간식을 요구했다.
그러면 집사는 기쁨에 겨운 얼굴로 간식을 주곤 했는데
얼마전부터인가 간식을 주는 양이 현저히 줄었다.
바로, 그 병원에 다녀온 후부터 였다.
다이어트. 나에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한 그 병원.
다이어트는 큰꼬가 수시로 하는 것 아닌가. 큰꼬는 툭하면 다이어트 할거야!라는 말을
내뱉곤했는데, 그 뜻이 간식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나보다.
집사는 처음 며칠은 굳은 결심을 한 듯 간식을 내 주지 않았지만
결국 나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먼지야, 이거 비밀이야~"하면서 간식을 던져주는 집사.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하면서 주지만
나는 알고 있다.
조금 쉬었다가 가서 내가 눈을 맞춰주거나, 톡톡 쳐주거나
그래도 안되면 손을 좀 핥아주면, 또 간식을 줄것이다.
집사는 역시 다루기 쉽다.
몸무게를 증량해서 이 집을 탈출하는 그 날까지
집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집사야, 그런 의미에서 간식 좀 가져와라.
어느 정도 살이 쪄야 그 유리문이 열릴까.
나는 간식을 씹으며 자유를, 탈출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