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힘
나의 전 직장생활로 말하자면...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쌓아온 자존감을
가장 깊숙한 바닥까지 끌어내린 시기이며-
출근과 동시에 매 시간
"내가 정말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던 시간들이었다.
늘 우울감이 깔려 있었고,
희미한 자존감마저 조금씩 침식당했다.
처음 그 직장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단지 구인 사이트에 올려둔
이력서를 통해 제안을 받았고,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과
내 경력이 잘 맞았기에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본 그 자리에서,
추후 나의 직속 상사가 되는 인물(여기서는 ‘A’라고 칭하겠다)
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담당자가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그만뒀어요.
저희가 바로 오픈해야 하는데 도와주세요.
진짜 급해요.”
그 말에 나는 마음이 흔들렸고
아이도 좀 컸겠다. 집에서 쉬느니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출근을 약속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왜 이곳은 그렇게 자주 사람을 구하는지
왜 그 전 직원이 그렇게 급하게 떠났는지를..
그 교육시설은 그 주에 오픈했고,
시작부터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이어졌다.
엉망진창인 운영, 불분명한 업무 분장,
그리고 수습이라는 명목 아래
끝없는 요구가 쏟아졌다.
결혼 전까지는 규모 있는 회사에서만 일해왔기에
이런 식으로 업무를 하는 곳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았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이 체계를 조금은 정리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멍청한 책임감 하나로,
그곳에 머물렀다.
나는 늘 ‘5분 대기조’처럼 일했다.
정해진 내 업무 외에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왔고,
포토샵, 엑셀, 파워포인트까지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모든 걸 다 떠맡았다.
연차는 말만 '연차’였고,
정해진 기간 이외 사용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직장이 잘 되면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부끄럽지 않게 일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딱 하나. 정시 퇴근이었다.
아니 정시도 아니었다.
6시 10분 퇴근..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퇴근 시간은 6시.
A는 내게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말했다.
“00님! 6시예요. 얼른 퇴근하세요~
아이 기다리잖아요. 얼른 가세요!”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건
그녀는 내 뒤에서
‘칼퇴근 한다’며 나를 욕하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A가 나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다른 곳에서 00님 스카웃 하면
가실거예요? 하며 물었다.
음. 하며 대답을 고민하던 나에게
A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뭐야 왜 고민해요~
30대 후반에 아이 엄마에 경력 단절도 있었잖아요.
누가 스카웃해요 솔직히?
저희만큼 대우해줄 데 있을까요?”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있다.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왜곡-
그때가 바로 그랬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아..정말 그런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그 자리는 그 정도의 책임과 권한을 감당할 깜냥이
전혀 안 되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은 애초에 누군가가 희생해서
정상화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소모하는 자원’으로 바라보는 곳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내가 거기서 견딘 시간
내 마음이 얼마나 조용히 무너졌는지를.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지금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다.
나처럼 멍청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너무 늦기 전에 빠져나오기를.
그건 절대 도망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