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며느리의 추억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다

공벌레가 몸을 둥글게 마는 이유

by 로드퓨처


마트에서 눈이 가는 것은 모두 장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요즘은 눈에 보이는 것마다 죄다 사진을 찍고 본다. 이렇게 찍힌 아이들은 내 브런치 글감 냉장고에 들어가 숙성을 거쳐 글로 태어난다. 그동안 딱따구리, 강아지, 미생물 등 생명체를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쥐며느리다. 아파트 입구에 많이 보이길래 일단 찍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였다)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아마 4학년쯤으로 기억되는데, 자연 수업 시간에 쥐며느리에 대해 배웠다. 정확히는 쥐며느리과에 속하는 공벌레인데, 갑각류의 일종으로 땅속의 미생물을 먹고살며 몸을 둥글게 말 수 있다는 것 등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내가 오늘 발견한 것이 쥐며느리인지 공벌레인지 궁금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아마도 공벌레가 아닌 쥐며느리인 것 같았다. 쥐며느리와 공벌레의 차이는, 전체 모양은 비슷한데 꼬리 부분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쥐며느리는 공벌레와 달리 몸을 둥글게 말지 않는다는 것이다.


쥐며느리, 꼬리 부분에 더듬이 한 쌍이 있다. (네이버 지식검색)


위 사진에서 보듯이 쥐며느리는 꼬리 부분에 더듬이 한 쌍이 붙어있는데 비해 아래의 공벌레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쥐며느리과 공벌레, 꼬리 부분에 더듬이가 없다. (네이버 지식검색)


검색 결과를 보고 나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꼬리 부분에 더듬이가 있었다. 즉, 공벌레가 아닌 쥐며느리였다. 그리고, 가까이 가도 둥글게 말지 않는 걸 보니 확실히 공벌레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꼬리 부분에 더듬이가 있는 것으로 봐서 쥐며느리인 것 같다. (직접 찍은 사진)


공벌레는 아래와 같이 외부의 위험을 감지하면 둥글게 몸을 말 수 있다.


공벌레가 몸을 둥글게 만 모습 (나무위키)


선생님께서 공벌레가 몸을 둥글게 마는 이유는 포식자 등 외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함이며, 생명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몸을 둥글게 말고 꼼짝하지 않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했다. 즉, 위험에 대비하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공처럼 둥글게 말고 경사진 길을 최대한 빨리 굴러 내려가는 것 말이다. 위험에 대비하는 목적 외에 신속한 이동의 목적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럼, 네가 직접 실험으로 확인해 볼래?"라고 하시는 거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으니 교과서나 백과사전 같은 책에 없으면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난 방과 후에 쥐며느리 공벌레를 잡기 위해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과 집 뒷산 등을 뒤졌다. 쥐며느리와 공벌레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비슷한 건 모두 잡았다. 고민 끝에 실험 구상도 끝냈다. 무려 40여 년 전 기억을 되살려 생각해보니, 널빤지 같은 걸 오려서 책 같은데 걸치게 함으로써 경사진 길을 만들었던 것 같다. 아래 그림과 같이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실험 도구를 그려봤다.


맨 위에 평평한 면을 만들어 놓고 공벌레를 올려놓았다. 처음엔 위험을 감지했는지 둥글게 말고 있었다. 따라서 그대로 경사길로 굴러가지 않도록 입구에 칸막이를 두었다. 안정이 되고 몸이 펴지자 입구를 막고 있던 칸막이를 들어 올렸다. 다른 방향으로는 길이 없으니 반드시 경사진 길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몸을 쭉 펴고 천천히 내려가느냐 아니면 둥글게 말고 빨리 굴러 내려가느냐 이것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주변에 포식자나 위험도 없으니 몸을 말았다면 그것은 이동의 편이를 위한 행동이라고 봐야 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칸막이를 올리고 공벌레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초등학생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결과는 둥글게 말고 쏜살같이 굴러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내 가설이 맞은 것이다! 공벌레가 몸을 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실험적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다음 날, 가설, 실험, 결과 순서로 보고서를 써서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실험까지 할지는 몰랐다고 하시며 교과에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하셨다. 설마 이 사실을 내가 처음 밝힌 건 아니겠지? 당시엔 정보의 접근이 매우 어렵던 시절이라 우리만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알려진 사실이었다고 해도 실험으로 재확인한 것이니 의미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가 쥐며느리가 아닌 공벌레였다면 추억을 더듬어 40여 년 전의 실험을 재연해봤을 텐데 아쉽다. 나는 공벌레로 실험까지 했던 그 즈음부터 작은 생명체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미생물 쪽을 전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공벌레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토양 미생물인 담자균류(Basidiomycetes)를 잡아먹음으로써 지구온난화 억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지구 온난화 막는 공벌레, 아시아경제, 2015.05.21). 혐오의 대상인 쥐며느리, 공벌레가 지구온난화에까지 기여를 한다니 무작정 벌레 취급만 할 건 아닌 듯하다.


하나 더 생각나는 것은, 저 쥐며느리 뱃속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있을 것이며 그중에는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미생물을 먹어 소화시킨 후 새로운 대사산물을 만든다면, 이것을 먹고 자라는 특정 미생물도 뱃속에 자라고 있지 않을까? 우리 몸속에 장내 미생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미생물이 혹여라도 탄소, 수소로 이루어진 유기분자를 마구 내뿜는다면? 원소 구성으로만 보면 탄소, 수소는 휘발유와 플라스틱의 구성 성분이다. 분자 구조만 일치한다면 이 조그만 갑각류 생명체가 화석 연료 대체의 키를 움켜쥐는 게 된다. 이쯤 되면 쥐며느리의 뱃속을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같은 얘기 같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혐오스러운 외모에 한낫 벌레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해로운 미생물을 없애주고 기후변화에도 도움을 준다니 이것이 바로 유용한 생물자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외모로만 평가할 게 아닌 듯하다.


쥐며느리의 추억에 젖었다가 불현듯 인류의 미래까지 생각이 커져 버렸다.

아무튼 추억을 반추시켜주고 좋은 글감이 되어준 쥐며느리, 공벌레에게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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