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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동설 Jan 30. 2021

죽다살아난 명상이야기

-사마타에서 위빠사나로1


참선을 하면서 목적지 없이 그냥 버스에 몸을 싣고 가기만 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던 중 사마타적인 요소는 내가 가진 특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객관적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우리나라에 위빠사나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할 때쯤이라 

위빠사나라는 것이 자기를 관찰하는 수행법이라는 얘기를 듣고 

당시 서울에 최초로 생긴 안암동에 자리 잡았던 위빠사나선원을 찾아갔었다.

처음 초보자 수행에 참석하여 위빠사나에 대한 법문을 듣는데,

관찰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른다는 설명이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내내 못 알아듣고 있다가 수행방법에 대한  지도 스님의 법문이 부실하다는 생각에 화까지 좀 났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법문이 계속 지지부진해서 답답한 마음에 발끈해서 질문했던 기억이 있다.

"계속해서 관찰을 통해서 보다보면 대상이 사라지는 작은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관찰하는 힘이 생기고,그래서 결국엔 무아까지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스님은 지나치게(? 불쑥 항의하듯 던지는 나의 질문에도 너무나 반색하시던 스님의 반응에 살짝 당황함) 맞다 맞다, 바로 그것이다!라고 긍정해 주셔서 (너무 퉁명스러웠나하고 약간 죄송한 마음도 들었던 터라) 그다음 집중 수련에까지 참가하였다.

위빠사나의 방법을 듣고 있어도, 또 몇 번을 들어도

사마타적인 집중명상에 익숙해있던 나로서는 한국말인데도 위빠사나를 하는 방법이 참으로 

두뇌에 인식도 저장도 되지를 않았다.

나와 떨어져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보면 될 것을...... 이해 안 된다고 속으로 부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위빠사나방법을 제대로 알 때까지 가보자 해서

겨울방학 동안 열리는 열흘간의 집중 수련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열흘을 빼기 위해 휴일 없이 며칠 동안 수업 강행군을 하여 몸의 피로가 많이 쌓인 채로 수련 장소에 도착했다.

퇴근 후 출발하여 제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프로그램에 합류하며

바로 걷기 명상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만 하면 된다는 이 단순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의 원리의 부재에 대한 반발심과

수련에 참여한 이들의 열기와

나의 누적된 피로에

서서 천천히 걷는 와중에 회음부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몸의 내부를 점점 채운다고 느끼다가 머리 꼭대기에 닿는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꽁꽁 언 냉기 어린 바닥에 꼿꼿하게 선 채로 그대로 '꽈당!!!'하고

뒤로 넘어가버렸다.

"꽝!!"하는 장롱 넘어가는 엄청난 큰 소리에 설마 사람이 저렇게

넘어가진 않았겠지..;;;라고 수련생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사람이 넘어갔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는 다들 

다음날 사이비 수련회에서 발생한 사고로 뉴스에 방송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는 말을 다른 참가자에게 들었다.


그렇게  쓸데없이 정직하게  그대로 뒤로 넘어간 나는  당연히 내가 죽은 줄 알았었고,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기 전,  내가 떨어진 세계가 궁금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나 나쁜 일을 많이 했나 잠깐 계산하기도 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바깥 세계를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고, 그 동기에 따라 천천히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오면서 아직 죽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나자신은 살짝 안도하는 것 같았는데, 함께 수련에 참가한 이들뿐만 아니라 지도 스님까지 놀라서 다다닥 달려오셨다고 하니 사마타에서 위빠사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은 나의 신고식은 참 야단법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나를 둘러싸고 서있는 사람들의 형상이 어렴풋하게 보이고 귀로도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는 과정은 나의 의식을 깨우려는 듯  또..똑..하는 노크처럼 느껴졌다.  마치 현미경의 재물대에 물체를 올려놓고 나사를 돌려서 촛점을 제대로 맞추면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처럼, 눈을 서서히 뜰 때 사람들이 뿌옇고 희미하게만 보이는데 머리 안쪽에서 촛점이 맞춰지는 소리가 딱!하고 선명하게 들리자 갑자기 사람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안근이 기능하고 있어도 안식이 들어서지 않으면 두뇌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안식이 자리잡자 눈 앞이 제대로 보였고, 그제서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서 사람 냄새도 났으며 멈칫거리는 사람들의 느낌도 전달되었다. 이 때 육근의 기능과 육식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뿐만아니라, 안이비설신의의 순서 또한 의미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 같다.

암튼  그 후로 집으로 돌아온 후, 단 며칠 동안 잠깐이나마 소위 신통력이라는 게 생겨 주변에서 재미난 일들을 몇 가지 겪기도 하면서 너무 신기해서 아무에게도 말은 못하고 혼자 히죽거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사라지기를 기다렸고 별다른 의미는 두지 않았다. 

단지, 무엇보다 안 그래도 납작한 뒤통수가 더욱 납작해진 것만 같아 그 점만은 참으로 아쉬웠다.

성질 좀 죽였으면 될 텐데 모르겠다는 불만이 '화'로 변해 끝을 봤던 것이다.


아무튼 위빠사나를 하게 되면서

이렇게 내게서 떨어져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지금부터 바라보기 시~작!!

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했다.

 

나를 관찰하는 그 방법을 습득해가는 과정과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원리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바르게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고 하라는 말이냐...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원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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