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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miman Oct 15. 2021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순간

모바일 시대를 연 iPod Nano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바일 시대가 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전제 조건 중 하나는 NAND가 메인스트림 메모리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기존 하드디스크(HDD)는 크기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껐다 켤 때의 시간도 크고 접근 속도(최대 전송속도가 아니다)도 느리기 때문에 휴대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휴대용 음악감상기기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다. 수십 개의 회사들이 각자 자기만의 음악감상기기를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조그마한 일종의 CPU가 필요했다.

 당시 미디어 프로세서 시장에서 가장 강력했던 회사는 바로 포털플레이어(PortalPlayer)라는 회사였다. 삼성전자 역시 포털플레이어의 칩을 사서 자사 제품에 채용하기도 하였으며, 결정적으로 최초의 애플 iPod(Nano가 아님)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나름 전설적인 물건이다.


 그러던 중, 애플은 iPod Nano라는 좀 더 세련된 기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 기기는 기존 iPod의 절반도 안되는 작은 크기였는데,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들의 크기가 매우 작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했다. 기존 iPod은 음악 저장소로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는데, 하드 디스크는 iPod Nano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소형화를 하면, 기기의 작동 원리상 성능이 매우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공간이 좁기 때문에 미디어 프로세서, 메모리, 저장소 등 각종 부품을 늘어놓으면 원하는 크기로 만들 수 없었다.


 이 순간 빛을 발한 것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놀랍게도 애플이 원하는 작은 사이즈의 아담한 저장소(NAND), 미디어 프로세서(삼성LSI + 파운드리), 메모리(DRAM)을 모두 가지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후의 변화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애플은 NAND Flash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HDD의 크기 자체가 iPod Nano보다 크므로, 하드디스크를 써서는 절대 iPod Nano가 나올 수 없었다. 아래의 두 사진은 iPod과 iPod Nano의 분해 모습이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차지하던 하드 디스크와, 하드 디스크와 PCB를 연결하기 위한 부위가 얼마나 깔끔해 졌는지 알 수 있다.

iPod Classic의 분해 모습. (출처 : ifixit.com, HDD 글자 추가)
iPod Nano의 분해 모습. (출처 : whatsinside.info)


 이 결정으로 인해 애플은 모바일 디바이스의 1인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압도적으로 작고, 반응성 좋고, 디자인까지 멋진 기기를 삼성전자의 NAND 30% 할인을 통해 매우 싼 원가로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DRAM, NAND,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모두 가진 회사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후에 더 도전적으로 사이즈를 줄여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의 또 다른 승자는 삼성전자이다. iPod Nano가 NAND를 마구 흡수하면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NAND를 살 기회는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 파운드리와 설계는 큰 고객을 얻었고 경쟁자였던 포탈플레이어가 시장에서 퇴출되게 된다. 이는 아마도 삼성전자가 가진 수직계열화와 조직간의 이해 조정 능력이 없었다면 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다른 사업 분야를 키우기 위해, 특정 사업부가 솔선수범해서 자신의 NAND 단가 를 30% 할인해 제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이후 애플은 iPod의 대 성공을 통해 iTunes Store라는 일종의 모바일 유통 시스템을 시도하여 성공하고, 휴대기기에 기반하는 전자 유통 체계가 성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는 이런 형태의 시스템이 모바일 생태계(App Store)에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1분이면 어떤 기능의 앱이건 즉시 받아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게 해주는 앱스토어는 우리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후 iPhone이 사용한 최초의 ARM 프로세서, eDRAM(공간 절약을 위해 ARM위에다 얹었다) 모두 삼성전자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두 용기있는 회사가 2006년에 던졌던 도전이 지금의 세상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부품을 믹스해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생태계 큰 그림을 그린 애플, 소탐대실하지 않고 NOR를 무너뜨리고 NAND의 시대로, 나아가 모바일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기술을 확보한 삼성전자. 그리고 이 두 회사는 지금 모바일 분야(기기부터 부품까지)에서 돈을 1등, 2등으로 많이 버는 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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