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술북스 Aug 20. 2021

왜 ‘레몬에이드’가 아니라 ‘레모네이드’일까?

맞춤법과 표준어에 대한 생각

그녀는 젊은 남자 앞에 레모네이드 한 잔을 놓고 다른 손님 쪽으로 갔다.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에 그의 힘이 고갈된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민음사, 2018), 236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레몬즙에 물·설탕·탄산 따위를 넣어 만든 음료를 ‘레모네이드’라고 쓰며 ‘레몬에이드’는 비표준어다. 왜 비표준어일까? 망고에이드, 포도에이드, 딸기에이드 등등 ‘과일-음료’라는 형식으로 과일의 이름을 정확히 밝히는 다른 표기와 달리 레모네이드는 발음을 그대로 적은 걸로 보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서도, 그럼 수박에이드는 ‘수바게이드’라고 써야 하나 의문이 든다. 어째서 ‘레몬에이드’가 아니라 ‘레모네이드’일까?



한글 맞춤법 제1장의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망고에이드, 포도에이드, 딸기에이드는 입으로 말하면 각각 [망고에이드], [포도에이드], [딸기에이드]라고 소리가 나고, 따라서 그 소리대로 적는다. 여기서 레몬에이드는 ‘몬에’가 [모네]로 발음되기 때문에 ‘레모네이드’라고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대로 적는다는 원칙만으로는 표준어를 적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맞춤법 해설에서는 ‘꽃[花]’을 예로 든다.


꽃이[꼬치], 꽃을[꼬츨], 꽃에[꼬체] …………… [꼬ㅊ]
꽃만[꼰만], 꽃나무[꼰나무], 꽃놀이[꼰노리] … [꼰]
꽃과[꼳꽈], 꽃다발[꼳따발], 꽃밭[꼳빧] ……… [꼳]


의미가 같은 하나의 단어라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는 다르게 발음될 수 있다. 만약 소리대로 적는다는 원칙만 고수한다면 ‘꼬치, 꼰만, 꼳과’와 같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서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본래의 모양을 살려서 일관되게 ‘꽃’이라고 적는 게 좋다. 맞춤법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어법에 맞도록 함”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레모네이드(lemonade) 역시 ‘레몬-에이드’(lemon-ade)라고 쓰는 게 좋지 않을까? 레몬(lemon): <식물> 과즙에 시트르산이 많이 들어 있어 신맛이 있으며 향료로도 널리 쓴다. 그리고, 에이드(ade): <명사> 과실의 살과 즙을 섞어 밭은 것. 이러한 두 가지 단어의 본래 모양이 명확히 눈에 들어오도록 말이다. ‘레몬’이 들어간 다른 합성어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레몬에이드’가 더욱 납득이 된다.


- 레몬유(lemon油): <명사> 레몬 껍질에서 짠 기름.
- 레몬옐로(lemon yellow): <명사> 익은 레몬 껍질의 빛깔처럼 약간 주황빛이 감도는 노랑.


한글 맞춤법 제4장 제4절의 제27항: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리거나 접두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레몬-유’, ’레몬-옐로’를 표준어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이들을 ‘레모뉴’. ‘레모녤로’라고 쓰다간 ‘수바게이드’ 꼴이 날 테니까 말이다.


물론 ‘레모네이드’는 외래어이므로 한글 맞춤법 제1장의 제3항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라는 원칙을 따른다. 그리고 외래어 표기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1장의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영어를 한글로 옮겨 쓸 때에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영어의 발음을 기준으로 한글 표기를 정하여 옮겨 적습니다. 그런데 'lemonade'는 영어의 한 단어로서 [ˌleməˈneɪd]이며 이를 한글로 옮겨 적으면 '레머네이드'가 되는데, 이때 'lemon'은 '레몬'으로 적는 관례가 있으므로 '레모네이드'로 쓰는 것입니다. 즉 영어에서 한 단어로 굳어진 단어를 '레몬'과 '에이드'로 굳이 분석하여 적지는 않고 연음되는 발음을 그대로 반영하여 적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답변)


lemon의 관례적 표기인 ‘레몬’과, 발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원칙적 표기인 ‘레머네이드’를 적절히 조합하여 ‘레모네이드’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꽤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맞춤법(표기법)이 아니라 표준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레몬에이드’는 표준어가 될 수 없을까?


안 그래도 집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레모네이드(레몬에이드)를 한 잔 걸치던 중에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커피집 메뉴판에는 이 음료의 이름이 뭐라고 적혀 있지? 2020년 국내 커피 브랜드 중에서 가맹점 수가 가장 많은 열 군데와 스타벅스의 메뉴판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11곳 중에서 ‘레모네이드’라고 적은 데가 3곳, ‘레몬에이드’라고 적은 데가 2곳, ‘레몬’과 ‘에이드’ 사이에 띄어쓰기 혹은 다른 단어를 넣은 데가 4곳, 그 외 2곳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닌 동네 조그마한 카페에서는 ‘에이드(생자몽/레몬/오렌지)’. ‘레몬 탄산수’, ‘노랑에이드’라고 쓰기도 했다. 전반적인 경향을 볼 때 사람들이 ‘네이드’보다는 ‘에이드’에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이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걸 ‘레모네이드’라고 썼을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키워드 검색을 하여 옛날 기사들을 확인해보니 ‘레몬에이드’, ‘레몬네―드’, ‘레모네이드’, ‘레몬네이드’ 등등 표기가 통일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중에서 검색결과가 가장 많이 잡히는 키워드는 ‘레모네이드’ 였다.


1933년 8월 6일 『조선일보』: 레몬에이드 … 『레몬네―드』는 사시의어느지절을 물론하고 조흔음료인것이다.

1938년 5월 25일 『조선일보』: 가정에서도 탄산수(炭酸水)를만히리용하게되엇습니다.마시는법은 그대로마시어도조코 『시로프』 을너으면 『소―다』 수가되고레몬과사탕을 너으면 『레모네이드』 가됩니다.

1962년 7월 6일 『경향신문』: 레몬네이드―약3개의 「레몬」 을짜서 「컵」 정도의즙을만든다.
『조선일보』 1938년 5월 24일 기사.


정확히 ‘레모네이드’라는 표기 규정은 1987년 문교부(현재 교육부)가 발행한 편수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1월 7일, 기존에 있던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이 27년 만에 ‘외래어 표기법’으로 개정되었다. 장음을 따로 표기하지 않으며 파열음의 된소리 사용을 금지하는 등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규칙들이 이때 정해졌다. 그리고 개정된 표기법에 따라 각급 학교 교과용 도서를 수정하기 위한 표기 용례집(편수자료)이 1987년에 발간된 것이다. 『편수 자료 Ⅱ-1: 외래어 표기 용례(일반 외래어)』에는 제4차 교육과정 초·중·고등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외래어 총 9800개가 실려 있으며, lemonade 항목도 있다.


……
Leitmotiv 라이트모티프
lemon  레몬
lemonade 레모네이드
lemon juice 레몬 주스
lemon pie 레몬 파이
lens  렌즈
……


‘모네’인가, ‘몬에’인가? 일상생활(카페)에서는 레몬에이드에 익숙할 수 있지만, 표기법과 사전을 따른다면 레모네이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책을 만드는 출판 편집자로서 고민이 된다. 만약 저자가 원고에 ‘레몬에이드’라고 썼다면 그것을 ‘레모네이드’라고 교정해야 할까? 표준국어대사전이 규범으로서의 성격이 너무 강한 탓에, 몇몇 사람들은 ‘레몬에이드’는 틀렸으며 ‘레모네이드’가 올바른 표기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한국어능력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외래어 표기법 문제에 대비한답시고 ‘레몬에이드(X)/레모네이드(O)’라고 달달 외우기까지 한다.


‘레몬에이드’에도 충분히 익숙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이는 지나친 규범 강박으로 보인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그렇기에 나는 ‘모네’든 ‘몬에’든 뜻이 잘 통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둘 다 옳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 그렇다면 ‘레몬에이드’ 역시 관용으로 존중하여 국어사전에 등록하면 어떨까? ‘레몬에이드’와 ‘레모네이드’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비표준어였던 ‘짜장면’이 2011년부터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가 되었듯이 말이다.



참고자료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

국립국어연구원 10년사: 외래어 표기법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 「레몬 에이드 / 레모네이드」에 대한 답변, 2020.2.1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글로벌 비율 50%...스타벅스 韓매장 직영만 두는 까닭은」, <이데일리>, 2021.3.10.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食卓의異邦人 『레몬』의이야기 味覺의알·라·모·드」, 『조선일보』, 1933.8.6.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탄산수 참맛은어데잇나」, 『조선일보』, 1938.5.25.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시원한여름철 「주스」」, 『경향신문』, 1962.7.6.

변정수, 『한판 붙자, 맞춤법!』, 뿌리와이파리, 2019.     

「[외래어표기법] 레몬에이드? 레모네이드?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해커스 공무원> 네이버 포스트, 2020.3.9.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도록 한 이유는」, <중앙일보>, 2011.8.31.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만큼 꿀 빨기 좋은 직업이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