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기록
<바빌론>, 2023, 데미언 샤젤 감독
심장박동을 닮은 재즈음악, 기똥차게 들리는 트럼펫 소리, 타락의 서커스를 보는 듯한 도입부, 올라갔다 금세 지옥끝까지 치달아 내려가는 전개, 그리고 영화의 역사에 대한 찬사의 피날레.
오늘 바빌론을 보고 왔다. <라라랜드>를 감명깊게 본 사람으로서 데미언 샤젤 감독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너무 적나라하고 선정적이며 불쾌하기까지도 하다는 감상평을 보고 주저되기도 했다. 양가감정은 영화를 보고난 이후에도 여전하다. 정말 감명깊게 본 영화지만 두번 보고싶지는 않은.
사실 초반에 나오는 파티 장면은 녹터널 애니멀스의 도입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느낌은 아니었고, 강렬하고 적나라하네라는 생각 정도는 했다. 어쩌면 시작부터 나오는 이런 강렬한 자극때문에 뒤의 이야기가 묻히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왜냐면 중반부까지는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매니(디에고 칼바)의 눈빛에서 너무 뚜렷하고 선한 희망이 보여서 좋았고,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의 주문한대로 나오는 눈물씬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배우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게 이런걸까 싶을 정도로.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가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도 액션이 떨어지자마자 연기를 제대로 하는 장면도 소름 끼쳤다. 저래서 배우하는거구나.
무성영화 시대의 서부극을 찍던 배경은 웬만한 액션영화의 느낌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영화찍다 죽기도 했다는 라떼시절(?)을 아주 잘 표현햇다고 생각한다. 간간히 웃음도 났다.
음악을 절묘하게 찰떡같이 표현해낸 영화라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점에 나온 문구처럼, 말그대로 'Hooray for Sound!'였다. 라라랜드와 위플래시에서 느꼈던 사운드로의 통쾌함은 역시나 바빌론에서도 통했다. 시드니(조반 아데포)의 트럼펫 연주는 마치 재즈바의 현장에서 엄청난 연주를 들은것만큼이나 박수가 나올만한 연주였다. 나까지 트럼펫을 배우고 싶어지더라니까.
불쾌해 지는 시점은 넬리가 뱀에 물리던 장면에서 부터였던 것 같다. 원래 나는 고어, 좀비물을 못보는 스타일이고 대충 무섭거나 징그러울 것 같으면 눈을 감고 안보는 스타일이다. 뱀한테 물린 것도, 레이디 페이주(리준리)가 뱀을 뽑아낸 것도(?), 그리고 키스한 것 까지 '이 장면은 왜,,,무슨 의미로,,,,대체 왜,,,,?' 같은 느낌의 챕터였다. 사실 뱀으로 부터 넬리를 구해준 영웅(?)인 페이 주의 서사가 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돌연 유럽을 간다고 한 이후로는 사라져버려 아쉬웠다.
엘리노어 세인트 존(진 스마트)와 잭 콘래드의 대화 장면은 너무도 좋았다. '시대'와 '스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부분이었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대화들에서도 느꼈지만, 감독이 얼마나 예술을 경외하고 그러한 예술을 하는 이들과 예술을 하는 이들로서 많은 대화를 했을지가 가늠되었다. 아마도 그 대사들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입 속에서 실제로 나오고 술자리에서 잔 속에 쌓였던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예술, 영화계가 가지는 찬란한 빛과 그 빛의 유효기간, 섬광을 일으키고 재로 변해버리는 그 빛들. 하지만 그 빛은 그 빛을 내던 이들이 죽은 이후에도 예술이라는 장치로 영원히 남는다. 스타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한 시대를 살다, 그들의 시대가 끝나면 사라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 시대가 끝난 것. 애석하게도 엘리노어가 잭에게 한 말은 너무도 다 맞는말이었고, 아마 실제로 스타로 사는 이들이 (마치 잭처럼)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결국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자 특권이자 십자가임을 느낄 수 있는 대화였다. 사실 잭은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변화를 미리 감지했고, 변화를 따라야한다고 외치던 인물이었다. 근데 자신이 그 변화의 주동자가 아닌 변화로 인해 떠나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손 떨림, 자주 깜빡이던 눈을 보며 나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에 감탄하였다.
넬리가 바닥을 치며 망가지고 있을 때, 사실 거기까지만 보여줬으면 우리한테 경고 아닌 경고를 주지 못할것이라고 감독은 생각한걸까? 토비 맥과이어가 나오는 장면부터 지하동굴 씬은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뭐랄까.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영화계 버전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진짜 지옥을 보는 기분이어서 너무 끔찍했고 계속해서 단테의 신곡의 지옥 지형도와 겹쳐보였다. 왜 그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지옥 그림있지않은가. 그게 연상되는 씬들이었다. 보는 나로써는 너무 불쾌하고 토할것같은 기분이었지만 감독이 그걸 넣은 것에 대해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불쾌감을 선사하는 것이 감독 입장에선 예술계의 모든 현실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인 이 작품의 의의에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의 섬뜩한 얼굴에는 하얀분칠이 되었고, 시드니의 얼굴에는 검은분칠을 하게 되었을 때 물론 두 씬은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백인을 더 하얗게 흑인을 더 까맣게 표현해내는 연출에서 감독이 함의하고자한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시드니의 챕터는 그 당시의 인종차별적 요소로 이해하였고 맥케이의 챕터에서 분칠 역시 조금 더 서커스적인 요소로 이해할수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분칠, 다른 인물의 대조가 의미하는 또다른 것이 있진 않을까 내심 궁금했다.
넬리는 그녀의 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장면 전에 지옥씬도 나오고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넬리가 어둠속으로 걸어갈 때 저러다 잭처럼 죽는걸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어 겁을먹었다. 저렇게 걷다 갑자기 차에 치이는 거 아닌가 노심초사하며 본 장면이다.
시간이 흐르고, 매니가 극장에서 싱잉인더레인을 보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그리고 지금의 아바타(?)까지 영화의 역사가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장면은 되게 마약을 했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환영같으면서도 좋았던 장면이다. 영화가 걸어온 길에 대한 감독의 찬사와 그 모든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쏟아내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을 하는 이가 예술에게 보내는 경외, 찬사를 피날레에서 느꼈다.
되게 심장이 뛰는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계와 예술을 하는 행위를 환상부터 밑바닥까지 싹다 구경시켜주고는 '그래도 널 사랑해'하며 쉴새없이 입맞추는 피날레.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어디에 눈이 도는지, 무엇에 심장이 뛰는지, 왜 이 짓을 계속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합리화할 수 있는 여러 장면을 관객에게 구경시켜준 영화였다.
#바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