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4살
2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면 나는 가족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사는 ‘우리 집’에 웬만하면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는 우리만의 집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마치 둥지를 지키는 새처럼 말이다. 당시에 왜 그랬을지에 대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친구들 집에 가서는 잘만 놀았으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부에 그 누구도 초대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이사를 해서 어린이집을 옮겼을 때는 엄마의 출근길을 붙잡고 떨어지기 싫다고 생떼를 부렸다. 하지만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첫날에 적응하자마자 다음 날은 신나게 입장을 하셨다고. 참 웃긴 애였다. 유치원생 때는 더 가관이다. 엄마가 회사 회식을 하고 늦게 오는 날이면 항상 하던 일이 있었다. 작은 손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집에 언제 오느냐며 끈질기게 재촉했다. 당시에는 마치 일터에 뺏기는 느낌이 들었던 듯하다. 정말 아이답고 그래서 더 얄미운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어린 내가 어른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20대
이렇게 애착이 컸던 아이가 근 두 달 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가는 길은 지루하다. 빠르다는 KTX를 이용하더라도 꼬박 왕복 7시간 걸린다. 고속버스를 타면 9시간 정도. 고향에 자주 못 가다 보니 갈 때마다 무언가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아, 원래라면 오랜만에 볼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밀린 수다로 밤을 새웠을 텐데 이번에는 비밀리에 다녀왔다. 도착하자마자 대부분은 집에서 콕 박혀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조심스러움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가족과 있어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한 부모님과 우리 집 막둥이 고양이와 함께.
항상 육아와 일을 병행해온 바쁘고 참 근사한 사람인 엄마에게 취미가 생겼다. 얼핏 희미한 기억으로는 엄마가 10대일 때, 미술을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로 그만두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 아쉬움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꾸준히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학원에 다녔다. 당시에 외부 대회에 나갈 때면 항상 엄마와 동행했다.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으로 그녀의 중단된 과거를 위로해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그런 엄마는 요즘 흰 캔버스에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쓱쓱 무언가를 그리고 칠한다. 오래전부터 가끔 같이 누워있으면 갑자기 펜을 꺼내 내 발에 낙서를 하곤 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참 높은 질이다. 내 발, 휴짓조각, 메모지 등등 어느 곳이든 휙휙 작품을 그린다. 원래 굳이 도화지가 필요하지 않는 재능있는 이단아였다.
한번 그림을 시작하면 3시간 정도는 꿈쩍도 하지 않고 몰두했다. 옆에서 알짱거려보니 생각보다 3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붓을 들고 있는 팔도 아프고 눈도 피로해졌다. 그렇게 지쳐 소파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딸 완성했다!”라며 보여준 캔버스에는 해바라기 5송이가 피어있었다.
그 순간이 너무 찬란했다.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비몽사몽 듣는 엄마의 신난 목소리와 활짝 핀 꽃들을 보고 있자니 그 순간이 내게는 영화였다. 워킹맘이자 커리어우먼 그녀에게 일 외에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은 참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눈은 밝게 빛났고 들떠있다. 그렇게 집에는 벌써 몇 점의 작품들이 있고 현관을 밝혀준다. 이번 그림은 할머니께 선물로 드린다나.
아 참 집 구조도 바뀌어있었다. 매년 우리 집은 4계절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봄에는 베란다 너머의 벚나무들이 분홍빛을 띠고 여름에는 초록빛들과 어울리는 대나무 카펫이 거실로 나온다. 가을에는 단풍색 담요들과 쿠션들이다. 지금의 테마는 쌀쌀한 겨울. 작은 산타들과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전기장판이 생긴 것!
전기장판은 화재사고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엄마의 만류로 출입금지인 물품이었다. 그런데 안방과 거실에 떡하니 두 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순서를 기다리듯 엄마와 고양이가 앉아있고 다음은 아빠 마지막은 내가 누워보았다. 이제야 겨울에 전기장판 안에 들어가서 귤을 까먹는다는 그 순간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추운 한파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그 느낌을 말이다.
남들에게는 우스운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이다. 걱정과 나름의 신념을 져버리고 받은 뜨끈한 대가라고나 할까.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우리 집 고양이가 그 위에서 푹 퍼져있는 사진은 오늘도 출근길에 힘을 주었다.
아쉽지만 괜찮아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밤. 항상 아쉬운 날이다. 다음날 기차를 놓칠지 미처 몰랐던 휴일은 아닐지 등등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떠나는 게 아쉬워 거실에 있는 전기장판에 누워서 멍을 때리다가 힐끔 주방을 봤다. 나에게 줄 저녁을 정성 가득히 준비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유독 다정했다. 이 재료를 쓸지 저걸 쓸지 투닥거리는 게 귀여워서 풋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순간 멀리 떨어져서 보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장면인지 강하게 주입이 되는듯한 기분이었다.
짧은 며칠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반갑지만, 또 한편으로는 익숙한 대화들이 모두 좋았다. 내년에 한 두 달 정도는 본가에서만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