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시작한 여행은 일정한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였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중 밥값, 기름값 같은 경비를 원칙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세 명 중 한 사람이 부담했다. 특히 차를 갖고 온 친구는 기름값과 통행료를 부담하면서 운전까지 하는 상황이라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쑥스러울 정도였다. 이번엔 다르게 자세한 시간 계획과 여행경비 정산 방법을 포함해, 우리 동네까지 와서 나를 픽업해 간다고 자세하게 알려왔다.
십이월 첫날,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졌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한반도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와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것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광역버스 정류장에서 친구의 승용차에 올랐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세 시간 정도 달리면 목적지 부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서해안 지역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눈발이 날릴 수 있어 눈길이 걱정되면서도, 눈까지 볼 수 있는 이런 날이 오히려 좋은 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가는 겨울 여행이 처음이고, 부안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 내게 처음은 두려움보다는 늘 설렘을 안겨주었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나에게 친구는 네팔 여행에 대한 아내의 반응을 다시 물었다. 우리 여행이 네팔 여행을 목적으로 이루어졌기에 확실한 내 답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닥칠 후환이 걱정돼서 기가 센 아내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는 나를 여행에 동참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내 셋이 가는 네팔 여행에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한 지난번 아내의 대답이 친구의 머리를 지금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있던 게 확실했다. 아내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을 전제로 온갖 아이디가 나오기 시작했다. 네팔까지만 함께 여행하고 아내를 설득해 혼자 중국 여행을 하게 한 후, 우리는 베트남에서 골프와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안과 네팔 여행 후 우리 부부를 보내고, 친구 둘만 태국과 베트남을 여행하는 안으로 이견이 좁혀졌다. 두 안 모두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내 혼자 보내는 것도 베트남 여행을 포기하는 것도 탐탁하지 않았다. 네팔 여행은 아직 멀었으니 그때 가서 고민하자고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다. 일하는 아내가 열흘 이상 사무실을 비워 둘 수 없어 결국엔 네팔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란 얄팍한 기대감에 희망을 걸었다.
부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할배라고 부르면서 여행 이름도 삼할배 투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삼할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끼리 하는 말로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이름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할배라 할지라도 대놓고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할배란 말을 난 남보다 일찍인 십여 년 전부터 들었다. 법적으로 할아버지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손녀와 함께 있을 때 늦둥이냐고 묻는 사람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할배는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단어였다. 아직 젊은 내가 늙은이로 비치는 것 같아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곧 할배가 될 친구가 짓고, 부른 이름이라 현실처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수긍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는 나만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나만 박 영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를 영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아내뿐이었다. 옛날처럼 존경의 의미, 사랑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아내를 할매라고 부르는 데 대한 반감으로 아내가 선택한 호칭이었다. 내가 할배가 된 후, 영감은 아내가 은밀하게 부르는 내 이름이었다. 이런 영감이란 호칭을 친구는 공개적으로 나에게 붙인 것이었다. ‘아빠의 청춘’에 나오는 가사가 좋다면서 ‘원더풀 박 영감’이라고 부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른 친구의 호칭은 ‘엄박’이었다. 성은 엄이고, 박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붙인 것이다. 내가 할배와 영감으로 동시에 불리는 것은 그들 눈에 진짜 할배로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점심때가 지나서 곰소항에 들어섰다. 찬 바람을 뚫고 이곳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을 것임을 예상은 했지만, 인적없는 포구를 우리가 독차지할 줄은 몰랐다. 하늘엔 비든 눈이든 쏟아 낼 듯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잔뜩 흐린 하늘과 잿빛 바다는 맑은 날에 보는 푸른 바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간간이 흩날리는 진눈깨비와 검은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햇살이 옷자락에 내려앉았다. 바닷가 특유의 냄새도 짠 바다 내음도 나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만이 내 콧등을 건드렸다. 곰소항 앞에 펼쳐진 호수 같은 잿빛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 몸과 곰소만이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곰소는 구마소라고도 하는데, 곰이 빠져 죽은 연못이란 뜻이란다. 일본의 구마모토를 한자로 웅본(熊本)으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천 오백 년이 흐른 지금 백제의 흔적이 여기에도 남아 있는 듯했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지형적인 영향으로 이곳엔 눈이 내린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곰소는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곰소항 주변은 젓갈 집과 젓갈 식당 천지였다. 곰소항이 있는 곰소만에서 나는 여러 해산물과 곰소 염전의 천일염이 만나 이곳 젓갈의 품질이 좋아서 생긴 풍경이다.
곰소만을 줄포만이라고도 부르는데, 갯벌이 깨끗하고 염도가 높아 좋은 소금 생산지라고 한다. 곰소 젓갈은 예부터 알아줘서, 부안에서 밥을 먹으면 어딜 가도 젓갈 서너 가지가 나온다. 유명한 사람이 다녀갔다는 젓갈 전문식당으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이름이 알려진 것과 맛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밥값을 치른 게 아니라 이름값을 치르고 나온 느낌이었다. 식당을 나오자 세찬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다시 날리고 있었다. 우리 여행을 축하하듯 하얀 꽃가루가 머리 위로 뿌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