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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풍 박석준 Oct 03. 2023

백령도 표류기 5

마지막 날

  숙소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문자 도착 알림이 울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그제 문자가 날라왔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열었다.

  ‘4/8(인천행)07:00 코리아프린세스호는 정상 운항입니다. 고려고속훼리’

 친구가 어젯밤 삶아서 갖다준 달걀을 까서 입에 넣었다. 백팩을 둘러메고, 언제든지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나흘 밤을 보냈던 방에서 일 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먼저 짐을 챙겨 방을 나서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돌아와 방바닥에 드러눕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나뿐이겠는가.

  붉은 해가 바다 위로 떠 오르고 있었다. 나흘이나 발이 묶였던 코리아프린세스호에 올랐다. 지난번처럼 출항 대기 중이라는 방송이 없는 것을 보아 인천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선 또 다른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직 바람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 먼바다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출항한다고 해도 네 시간 이상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야 하는 뱃길에서 내 몸에 닥칠지도 모르는 멀미가 걱정이었다. 백령도 들어올 때 준비했던 멀미약을 만지작거리며 먹을지를 망설였다. 

  백령도 올 때 탔던 코리아 프라이드호 보다 작지만, 이 층 선실이 있는 코리아프린세스호는 소청도를 벗어나 서해의 한복판으로 접어들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인천에 갈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친구들 움직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서일까. 걱정했던 멀미 낌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배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다는 걱정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평온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책 냈다면서? 나도 몇 년 전에 책을 출간했어.”

 핸드폰에 있는 자신의 책 사진을 내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역경을 이렇게 읽었다’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주역을 새롭게 풀이한 책이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어려운 주역을 공부하여 책으로 펴낸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펴낸 수필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 서적이 아닌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도 없고, 따로 전공하지도 않는 분야를 틈틈이 공부해서 이루어낸 것이라 부러웠다. 여행이란 동행하는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보고 감동한다고 하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군 동기라고 하지만,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지도 않고, 임관 이후 같은 부대에서 근무도 하지 않아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몇 년 전 삼심 여년 일 했던 직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책에서 알게 될 정도로 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모임에서 만나도 인사를 나눈 정도일 뿐이었다. 백령도 여행 중에도 특별히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다. 인천행 배 안에서 그는 내가 옆에 앉은 것을 기회로 말을 걸어온 게 의외였다. 내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친구는 이십 세기 초 갑골문자가 발견되고 나서 주역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송나라 주자의 해석대로 대부분 경전을 풀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판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글자 하나에 매달려 자기의 주장만 해대는 성리학 맹신자를 지적하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성리학 교조주의가 현재까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아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십여 년 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난 주역을 배우지 못했다, 사서를 떼고 나서도 문리가 터져야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경전이라는 것이었다. 한문 공부의 마지막 과정에서 배움이 가능한 주역을 풀이하여 세상에 내놓은 그가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백령도에서 돌아와 한 달이 지나서야 친구의 책을 인터넷 서점을 통해 샀다. 군 복무 후 삼십여 년을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우리는 서로 꿈꾸던 것을 책으로 내놓았고, 그 책이 연결 고리가 된 것이었다. 여행이란 눈에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행한 친구의 새로운 면을 찾았을 때도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백령도 비경이 아니라 서해 한복판 인천행 뱃길에서 찾은 친구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뱃길이 평온해서인지 승객들도 모두 편안해 보였다. 이 층으로 난 계단 아래에 젊은이가 바닥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멀미가 걱정되어 바닥에 누웠다가 그만 잠이 들었나 보다. 파도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멀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네 시간 이상 연속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예전에 비바람이 심하게 부는 울릉도행 배 안에서 멀미약을 먹고, 귀 밑에 패치를 붙이고도 난 멀미의 고통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백령도를 떠나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환기를 위해 선미에 있는 출입문을 열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선미로 나갔다. 대여섯 명이 서 있을 만한 공간뿐이었다. 세찬 바람이 이마를 때렸다. 인천에서 낚싯배로 두 시간 정도 걸렸던 덕적도를 지나고 있었다. 모든 힘을 쏟아내는 듯 굉음을 내며 배는 인천 연안부두를 향해 내달렸다. 멀리 팔미도와 인천대교가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하루가 걸릴 때도 있던 백령도와 인천 뱃길이 이제는 네 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코리아프린세스호는 예상 시간보다 이 십여 분 늦게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탈 없이 무사히 왔다는 것에 안도하며 느긋하게 맨 뒷줄에 서서 배에서 내렸다. 인천공항 비행기 출발 시각이 임박해 부리나케 부두를 빠져나간 친구를 빼고, 여행의 마지막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 부교에 나란히 섰다.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늘어선 모습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단체 여행을 다녀온 초로의 관광객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작별의 인사말을 나눈 후,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주차장으로 삼삼오오 흩어졌다. 대구에서 온 친구가 어떻게 갈지 궁금했다. 다른 친구 차를 타고 가까운 전철역까지 가서  전철을 타고, 광명역에서 KTX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연안부두에서 광명역까지 가는 시간이 KTX 타고 대구까지 가는 시간보다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친구들을 위해 한 것은 백령도에 대해 아는 체하며 떠들어 댄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광명역까지 데려다준다고 내 차를 타라고 했다. 아내도 여행가고 없는 집에 일찍 가야 할 이유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가 백령도 여행을 위해 허비한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이십여 분 돌아가는 것은 아주 작은 수고에 불과했다. 갈 길이 먼 친구와 혼자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난 길 건너 식당으로 들어갔다. 

  고속도로는 예상과 달리 원활했다. 신천 IC를 지나자 달리는 차장 오른편이 우리 집이 있는 동네라고 가리켰다. 광명역이 우리 집과 가까우니 편안하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친구가 광명역에서 환한 웃음을 띠며 내렸다. 백령도 여행은 광명역에서 마무리된 셈이었다. 

  이십 대 초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되어 함께 훈련하고, 밥 먹으면서 보낸 사개 월은 나에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 친구 대부분이 퇴직하고, 인생의 이 막에 접어든 지금, 이번 여행에서 수십여 년 공백이 한꺼번에 채워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친구들이 보여준 따스한 마음이 나를 위로하고,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밥 먹으면서 지낸 나흘 밤은 뱃길이 끊긴 바다 한가운데 섬에 갇혔다는 막막함이 아닌 잊지 못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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