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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풍 박석준 Oct 10. 2023

네팔 포카라에 가다. 1

 카트만두에 도착하다.

 정초부터 영하 십 도 아래로 내려가며 매섭던 날씨는 출발 나흘 전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차갑지 않아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도 캐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기 전날이 돼서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계절을 모두 겪게 될 여행지에서 입을 옷가지를 찾아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여드레 동안 네 곳을 거쳐야 하므로 간단한 양말조차 세탁해서 신을 수 없는 상황이라, 챙겨야 할 속옷과 양말이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돌아오는 길에 하기로 한 운동에 필요한 옷과 모자, 용품까지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 아니었다. 해외를 밥 먹듯 드나드는 친구가 기내 동반이 가능하게 짐을 꾸려야 이동하기 편하다고 한 말에 부랴부랴 장만한 백팩과 작은 캐리어에 모든 것을 넣어야만 했다. 친구는 내가 미덥지 않았는지 여행 전 만남에서도 한 번 더 당부하는 것이었다. 

  꾸려 놓은 짐을 옆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익숙한 이곳을 떠나 낯선 나라 사람과 풍경을 만난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밤, 온갖 생각에 잠을 설치던 바로 그 모습과 닮았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도 아니고 두 해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여행임에도 다르지 않았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소한 무렵에 떠나는 여행, 여행 준비부터 일정까지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남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채 짐만 챙겨 따라나서는 여행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삼 할배라고 부르는 친구들과 처음 가는 외국 여행지로 네팔 포카라가 친구의 입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그곳에 대한 기대나 가야 한다는 열망보다 거리가 먼 이야기, 간다고 해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나 가능하다고 받아들였다. 

  항공편을 예약했으니 돈을 송금하라는 친구의 카톡이 온 지난해 가을부터 포카라 여행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문득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 떠 올랐다. 안개와 헤어짐, 그리고 여행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 번잡한 이 도시를 벗어나 호젓한 산속에 자리 잡은 네팔 포카라로 이미 가고 있는 듯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사십여 년 만에 무진기행을 다시 읽으면서 젊은 시절엔 미처 느끼지 못한 떨림이 밀려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면 그게 바로 좋은 삶일까.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짜릿한 일탈을 이번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안개에 싸인 듯 보이지 않는 포카라를 향해 난 떠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공항으로 가는 전철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포카라에 가는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영종대교 하부도로를 달리는 파란색 시내버스를 보자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웠다. 연초라 바쁜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여드레 동안이나 놀러 가는 것이 이성적인 결정인가? 사업을 하는 주변 사람이 보면 정신없는 짓이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이번 여행이 친구와 함께하는 쏘울 여행(soul tour)이라서 따라나섰다고 나름대로 합리화하는 것도 변명에 불과했다. 내가 계획해서 가는 여행이라면 이런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바쁜 시기에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네팔에 갈 이유가 없었다. 쏘울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함께 떠나자고 한 친구의 간곡한 제안을 난 뿌리칠 수 없었다. 많은 친구 중에 ‘왜 하필 나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고, 친구의 헤아림을 고맙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초로의 세 남자가 함께하는 여행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다른 사람이 제안했다면 난 분명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따라나서지 않을 것이었다. 삼 할배 투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장터 여행을 하면서 정치관, 역사관, 인생관에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다르다고 갈라서고, 반목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염치가 있고, 생각이 비슷한 점이 선뜻 길을 나서게 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세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데, 함께 다니는 것이 의외라고 한 다른 친구는 너무 달라서 잘 어울린다는 내 말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날이 풀렸다고 해도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기모가 달린 바지를 입었다. 한 시간이면 공항까지 편하게 데리고 가던 공항버스는 삼십 분 간격 배차에서 하루 네 번 왕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싼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출근 시간에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회사에 주차하고,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공항철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공항까지 두 시간이 걸렸지만, 약속한 시각보다 이십 분 일찍 도착했다. 세 군데 여행지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포켓 와이파이를 찾아 항공사 카운터 앞으로 가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것이었다. 

  통신사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중에 전화가 걸려 왔다. 공항철도에서 내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다고 통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금방 일을 끝내고 간다고 이야기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거의 되었으나, 비행기를 타는 시간은 무려 두 시간 이상이나 남아있어 항공사 카운터에 조금 늦게 간다고 해도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순서가 되어 느긋한 마음으로 직원에게 예약 문자를 보여 주었다. 예약을 확인하던 직원은 네팔에선 내가 예약한 장비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약사이트 직원과 통화를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 분명 예약사이트에는 가능하다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안내가 잘못된 것이었다. 새롭게 신청서를 작성하고 장비를 받는 데까지 십여 분이 흘렀다. 장비를 받아 들자마자 친구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간다고 이야기하고 부리나케 걸어갔다. 

  항공사 카운터 옆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세 번씩이나 전화하면서까지 조바심을 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건 친구가 평소 내가 봤던 것과 달리 급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네팔에 도착해서 성격이 느긋하다고 생각했는데 급한 성격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친구가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늦는다고 전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반문하는 것이었다. 상대를 배려 하지 않는 내 행동이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 사정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단정하고, 오히려 성격이 급해서 조바심을 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와 항공사 라운지로 올라갔다. 마일리지가 잔뜩 쌓인 친구 덕분이었다. 면세점을 기웃거릴 일 없이 한 시간 이상 이곳에서 보내면 되었다. 음식 테이블 옆에 자리 잡고는 먹을거리를 골라 접시에 담았다. 비행기를 타면 바로 기내식이 나오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음식을 맛보아야 직성이 풀릴 사람처럼 담아 날랐다. 

  커피 한 잔을 식탁에 올려놓고 비행기 탑승 시각을 기다렸다. 포가라 여행을 처음 꺼낸 모란시장 탐방 날이 떠올랐다. 이 년 전 여름 초입이었다. 가끔 뿌리는 비 때문에 봄과 여름이 반반 섞인 듯한 날씨였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어 외국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그날 이후 한 달에 한 번 하는 장터 여행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선 것이 포가라 여행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네팔은 히말라야 남쪽, 북으로 중국과 남으로는 인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나라다. 지도를 보면 마치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한국에서 대여섯 시간이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인천공항에서 카트만두행 직항을 탔는데도 여덟 시간의 비행을 포함해 집에서부터 꼬박 열두 시간이 걸렸다. 네팔이 동남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서남아시아에 속한다는 것을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서야 실감했다. 

  공항 밖은 어슴푸레 땅거미가 깔려 있었다. 현지 시각으로 저녁 일곱 시 무렵이었다.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속에 자리 잡은 조용한 도시일 거라는 환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야트막한 내리막길 앞에 나타난 공항주차장은 무질서하게 서 있는 차량과 사람으로 뒤섞여 북적였다. 마중 나온 현지인 뒤를 따라 우리 일행을 태우러 온 차량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이런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도 왔던 곳처럼 차량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고 익숙하게 지나갔다. 마치 팔십년대 동대구역에서 내려 길 건너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고 있는 듯했다.

  가로등도 없는 거리는 우리나라 명절 때 저잣거리처럼 붐볐다. 차선도 없고, 포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도로에는 차,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 개까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쟁하듯 뒤엉켜 있었다. 혼잡한 도로에서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해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차 안에서 본 카트만두는 오랫동안 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룬 곳이란 점을 빼고는 다시 방문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번잡함에 더해 매연과 먼지가 뒤섞인 도시는 온통 뿌옇고, 목이 아플 정도로 공기가 오염되어 있었다. 겨울이란 계절 탓인지 바람도 불지 않았다. 거기에 분지에 자리 잡고 있어 스모그는 어디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숨을 죽인 채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날씨는 우리나라 늦가을 같았지만, 기온은 영상 오 도에서 이십도 사이를 오르내린다고 했다. 심한 일교차와 난방시설이 제대로 완비되어 있지 않은 탓에 사람들 옷차림은 한겨울 옷차림인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항에서 차를 탄 지 사십여 분이 흐른 뒤, 제법 번화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차량이 겨우 지나갈 정도 좁은 타말에 있는 로드 하우스 호텔 앞에 도착했다. 친구의 네팔 사업 상대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겸 호텔이었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초라한 건물들 행색과는 달리 내부는 서울에 갖다 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정감이 갔다. 레스토랑은 종로 뒷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되고, 이름이 알려진 주점에 온 듯 눈에 익숙했다. 이탈리아 피자와 간단한 현지 요리로 때운 늦은 저녁은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맛보다는 배고픔을 달래는 정도로 끝냈다. 혼자 자기엔 아까울 정도로 넓은 방은 설렁했다. 난방을 틀고 침대에 누웠다. 최종목적지 포카라에서 보게 될 안나푸르나 주변 설산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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