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 이미 터 있었다. 시내 전경을 보려고 호텔 발코니 문을 열었다. 사 오층 되는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매캐한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70년대 겨울 아침 등굣길에서 맡던 연탄 타는 냄새 같았다. 맑은 날씨였지만, 카트만두 시내를 스모그가 옅게 뒤덮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난방용 연료가 타면서 생긴 매연이 주범인듯했다. 오랜만에 맡는 견디기 어려운 냄새를 피해 얼른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포카라에 가기 전까지 카트만두 시내를 다녀야 하는 데 마스크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선진국의 폐차장이라고 할 정도로 거리를 뒤덮은 고물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카트만두 분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다고 시내 풍경을 묘사한 유명 작가의 글처럼 자동차 배기가스도 공기를 나쁘게 하는데 한몫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간단하게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때우고, 카트만두 시내 동쪽에 있는 부다나트 스투파 사원으로 향했다. 한적한 곳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남대문 시장처럼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티베트 불교의 성지답게 수많은 사람이 탑 주위를 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탑 주변 골목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번잡해서 먼발치에서 둘러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호텔에서부터 동행한 현지인은 관광안내소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외국인에게 표를 파는 매표소였다. 울타리도 출입문도 없는 이곳을 보는데 표가 있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달러로 낸 관람료 거스름 때문에 현지인과 매표원이 실랑이하는 것을 보면서 외국인은 어딜 가든 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타라이 지방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태어났고, 부처님이 살아 있을 당시에 불교가 널리 퍼졌다. 부다나트 스투파는 세계 최대 탑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단이 36n, 탑이 38m로 총 높이가 74m인 티베트 불교의 탑이다. 부다나트 스투파는 깨달음이라는 ‘부다나트’와 탑이라는 뜻을 가진 ‘스투파’가 합쳐진 네팔말이라고 한다. 이탑은 ‘카샤 스투파’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곳에 순례 왔다 입적한 티베트 고승 카샤의 유해(遺骸)를 담은 작은 기단부 위에 부다나트 스투파를 세웠기 때문이란다. 기록엔 이곳에 부처님의 뼈 사리도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사원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었다. 티베트 불교 스님, 불자, 관광객이 뒤섞여 시장 바닥을 방불케 했다. 탑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따라 돌고 나서 매표소 근처 로드하우스 카페로 올라갔다. 번잡한 곳에서 조금 벗어났음에도 피난처같이 조용했다. 탑을 둘러싸고 있는 상가와 카페, 호텔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탑, 스투파란 이름이 더 어울려 보였다.
커피를 주문했다. 서울에서 먹던 큰 컵이 아니라 작은 자기 잔에 커피가 나왔다. 진한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탑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앉은 3층 자리는 탑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탑 아래에서는 자세히 볼 수 없는, 탑의 옆면에 그려진 커다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눈, 지혜의 눈이었다.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강렬해서 차마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인 이곳 주변에는 티베트에서 건너온 난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라고 한다. 고향을 등지고 나온 티베트 사람에게는 불교가 큰 힘이 되고 있어 이곳 주변에 몰려 산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의 옷차림은 대부분 우리의 60년대처럼 남루했지만, 탑 기단 외벽에 둘러쳐진 마니차를 돌리며 불경을 외는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포카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어제저녁에 도착한 공항 한쪽이 국내선 터미널이었다. 주말 시외버스 터미널같이 혼잡했다. 각 항공사 데스크 앞엔 사람으로 북적였다. 비행시간이 30 여분밖에 소요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육로를 이용할 경우, 예닐곱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항공기를 이용한다고 한다.
포카라는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고 해발 900m에 있는 도시이다. 약 19만 명이 사는,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포카라 주변 30km 이내에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등 8,000m가 넘는 고봉이 즐비하다.
72명이 탐승하는 쌍발 프로펠러 붓다 항공에 올랐다. 오른쪽 창문 너머 하얗게 눈이 쌓인 히말라야 고봉이 보였다. 우측 창가가 가장 좋은 자리지만, 친구가 차지했다. 창 너머로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카라에 거의 다다를 무렵, 비행기가 엔진 출력을 높이면서 선회를 하는 것이었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공항인데, 선회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큰 공항에선 가끔 이런 일을 겪지만, 의외였다.
포카라 신공항은 한산했다. 우리나라 초봄 같은 날씨로 포근했다. 중국의 도움으로 2023년 1월 1일에 개항한 신공항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가 개항한 지 열흘 만에 온 것이었다. 카트만두 공항과 달리 넓고 대도시 버스터미널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났다. 완공되었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에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대기하고 있던 현지인의 차에 올랐다. 우리나라 읍내 같은 포가라 시내를 지나 삼십 여분 가자 주변이 깨끗한 동네로 접어들었다. 포카라는 아름다운 호수에 자리 잡은 휴양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설산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호수 주변으로 식당, 관광 시설이 즐비했다. 마치 우리나라 도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수지 모습과 차이가 없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 나면서 호수 주변에 생겨나는 식당, 상가 때문에 호수가 오염되고 주변이 망가진 것이었다.
호숫가에서 떨어져 있는 temple tree resort에 들어섰다. 포카라에 있는 아름다운 호텔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조금 전까지 차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휴양 도시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출입문 하나를 두고,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묵었다가 가면 영혼이 치유될 것 같은 호텔 너머 설산이 보였다. 알프스 마터호른과 닮은 삼각형으로 우뚝 솟아 있다. 높이가 약 7,000m에 이르는 마차푸차레였다. 왼쪽으로 7천 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 남봉, 오른쪽으로는 거의 8천 미터에 달하는 안나푸르나가 같이 있지만, 내 눈을 붙잡는 것은 마차푸차레뿐이었다.
8천 미터급 고봉이 즐비한 히말라야 산들에 비해선 높이가 다소 낮긴 하지만 모습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모습만으로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비교해서, 일부 사람이 네팔의 마터호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터호른, 아마다블람과 함께 세계 3대 미봉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에 있고 에베레스트 근처에 있는, 마차푸차레보다 조금 낮지만 비슷한 6,800m급 산이다. 마차푸차레는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포카라 주변에 있는 이름 모를 산등성도 보통 4,000m급인 것을 보면 마터호른은 모양이 특이하다는 것을 빼면 히말라야 산들에 비해 높이나 크기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
안나푸르나 산행이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히말라야 근처에 들어선 게 틀림없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여러 날 머물며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고 했다. 우리가 늘 이야기했던 소울 투어란 그런 여행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이틀도 되지 않는 하룻밤만 묵고 떠날 포카라 여행은 소울 투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히말라야 산속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겉만 대충 훑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포카라에 오면 중국의 구채구나 장가계 같은 절경에 넋을 잃고 세파에 찌든 영혼이 히말라야 산신에 의해 치유될 거라고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 비싼 돈 들여가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온 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간 모양이었다. 호수와 설악산이 보이는 속초의 리조트나 이곳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이란 결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스스로 따라나선 여행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난 실망하고 있었다. 누군가에 손에 이끌려온 여행에서 큰 감동과 행복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와는 달리 다른 친구는 새벽에 일어나 경비행기를 타고 히말라야를 보고 온다고 들떠 있었다. 스스로 신을 찾아 영혼을 치유하러 나서는 것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사방에서 밀려올 공포감을 굳이 겪으며 타고 싶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포카라의 아침을 맞고 싶었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근처 전망대에 가서 히말라야 고봉을 보고 난 후, 오후 3시 20분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타는 일 외엔 할 일이 없었다.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가 아니라 잃었을 때라는 말이 떠올랐다. 포카라의 밤은 잠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