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Mar 16. 2022

당신의 기억 속 '부모님의 가장 어린 모습'은?

'현재의 나'보다 더 어렸던 어머니와 아버지

가끔 집안 어디엔가 숨어있는 부모님의 사진들을 뒤져보면 참 재밌다.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지.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아주 오래전 그들의 젊은 시절, 풋풋하고 빛바랜 결혼사진까지….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때를 엿보며 퍽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다 최근 불현듯이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부모님'이 현재의 나보다 한참 어렸다」는 것이다. 갓난아기 때는 기억이 없다고 봐야 하겠지만, 유년기 어느 순간부터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될수록 더 많은 추억들이 선명해진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장면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어리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부터는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내 모든 과거의 한 페이지 속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현재의 나'보다 쭉 어리게 남아있을 예정이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오래된 추억들. 그 한복판에는 내가 기억하는 '작은 부모님'이 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던 두 손, 간식을 사주던 뒷모습, 자연농원을 처음 갔을 때 함께 회전목마를 타던-, 그런 장면들. 그 모든 과거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보다 한참 조그맣게 변했다.


그동안은 이 모든 추억들을 그저 가슴 따뜻하게만 간직했다. 그런데 이걸 깨닫고 난 시점부터는 느낌이 다르다. 「가만, 부모님이 지금 내 나이였을 때면 몇 년도지?」 떠올려보면 짠하다. 현재 내가 영위하고 있는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했던 과거의 그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나타난다. 오롯이 나에게 매달렸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들이 더 깊이 뇌리에 박히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여전히 철부지인 것 같은데. 그때 내 나이의 부모님은 지금보다 훨씬 더 모자랐던 나를 참 힘겹게 키워왔다. 그 어려운 시절에 말이다.


비교적 또렷한 청소년기의 기억부터는 시선이 바뀌어간다. 그간 몹시 방황하던 당시 기억들로 종종 후회를 하곤 했었다. 지금까지는 그때 했던 말과 행동, 부족했던 내 모습들에 관해서만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는 당시의 부모님이 보인다. 나에게는 큰 상처가 없다. 오히려 내가 남긴 흉터가 부모님에게 새겨졌을 것이다. 뒤늦게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패배했던 수능. 영 원활하지 않았던 대학생활. 군 입대와 첫 직장생활까지.


내가 거쳐온 모든 과정들이, 과거 그 어린 시절의 부모님께 흔적처럼 남아있겠구나. 




안방에서 꺼내 든 가족 앨범. 오랜만에 펼쳐보니, 이제 예전과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분명 여러 사진들에는 우리 가족들이 다 함께 들어있다. 그런데 사진 속 그 모든 주인공들이 '현재의 나'보다 어리다. 나만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 조그만 사람들이 지금의 늙어가는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의 탄생부터 지금 늙어가는 과정까지. 줄곧 지켜보고 있는 부모의 심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고작 그들의 30대 시절부터 겨우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미처 구경하지 못한 그들의 청춘이, 요즘 들어 몹시 궁금하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언젠가 시간이 흘러 오늘을 추억했을 때…. 

여전히 '미래의 나'보다 더 어린 '지금의 부모님'을, 나는 얼마나 무겁게 그리워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