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 어느 조직이든 일정량의 얌체, 진상, 무능력자, 아첨꾼 등의 일명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아래와 같다.
1. 또라이를 피해 조직(팀 또는 회사)을 옮기면 그곳에도 다른 또라이가 있다.
2. 상또라이가 없으면 덜또라이 여럿이 있다.
3. 팀 내 또라이가 다른 데로 가면 새로운 또라이가 들어온다.
4. 또라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또라이가 될 필요도 있다.
5. 팀 내 또라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또라이다.
이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다섯 번째다. 자신이 또라이임을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델피(아폴로) 신전 입구 현판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아폴론)으로부터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라는 신탁을 들었다. 신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만 ‘나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소크라테스는 신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많은 사람이 현명하다고 인정하는 한 정치가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소크라테스는 그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여러 시인들을 만나 그들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지혜가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점쟁이나 예언가와 같이 일종의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장인(匠人)들을 찾아갔다. 소크라테스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은 자신이 훌륭한 기술자이므로 모든 종류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음을 사실을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긴 고민 끝에 그들과 자신의 차이점, 즉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보다 지혜롭다는 결론을 내린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편에 나오는 글이다. 적을 몰라도 자신을 알면 최소한 반은 이길 수 있지만 자신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험에 빠진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은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의 요구에 반발해 요동 정벌을 계획했다. 원나라와 명나라가 싸우는 시기에 명나라는 전력을 다할 수 없으므로 최영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고려의 남쪽에서는 왜구가 창궐했고 선봉 장군은 전쟁에 반대하는 이성계였다. 그렇게 강행한 전쟁은 결국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저 최영 장군 자신은 목숨을 잃은 건 물론이고 고려 왕조도 마지막이 되었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사정은 알았지만 고려의 상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결과인 것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이 않으리라.’라는 글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알게 되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심으로 보게 되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에 보이던 것과는 같지 않더라.).’라는 조선시대 유한준의 글을 원용한 글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시작이다. 성경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는 구절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 숨어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이다. 노자는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자신을 천하만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다.).’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이 한 몸 불살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고 외치지만 노자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제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같이 국민과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진실한 사랑과 지혜의 시작이며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 또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출발점이다. 자신 안에 있는 얌체, 진상, 무지, 무능력자, 아첨꾼인 ‘또라이’를 알아야 그 삶을 벗어날 수 있다. ‘또라이’의 삶을 벗어나려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미완성(未完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삶의 과정이 아름다운 완성, 미완성(美完成)의 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일은 자신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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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90년생이온다(임홍택), 소크라테스의변명(플라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브리꼴레르(유영만), 생각하는힘노자인문학(최진석), 마흔에읽는손자병법(강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