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우리나라 경주를 방문했다. 경주 시골길을 지나가는데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소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고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다. 통역을 통해 그녀는 농부에게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걸어갑니까?"
농부가 대답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힘들게 일했으니 짐도 나누어지고 가야지요."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했다.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 우의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차량을 밀고 있었는데 차주가 나타나서 자신의 차에서 손을 떼라며 밀치고 폭언을 했다. 그리고 경비소장에게 그 경비원을 자르라며 윽박질렀다. 차주는 1주일 후 경비실에 찾아가 그 경비원의 코뼈가 부러지도록 폭행했다. 경비원은 일주일 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일로 차주는 구속되었고 지난 2021년 5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양형 기준상 최대 형량인 3년 8개월보다 많았다.
펄 벅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9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가 조금 넘었다. 2020년 기준으로 GDP는 1조 6,382억 달러로 세계 10위 규모로 성장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31,880달러로 세계 25위다. 1960년에 비해 GDP는 862배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00배나 늘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대함은 사라져 버렸다. 신문이나 방송에 심심찮게 나오는 갑질 뉴스를 들으면 경주 시골길에 소달구지를 끌고 가던 그 농부의 넉넉한 마음이 그립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도 있는데 생활은 많이 풍족해졌지만 마음은 더 가난해졌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을 줄인 말이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관대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해도 인간을 모르면 망나니가 되고 수많은 선생을 만나 배웠지만 인간적인 스승을 만난 적이 없으면 차가운 지식인에 불과하다. 가해자는 자신이 아파트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망나니가 되어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 망나니가 나 자신이 아닌지, 차가운 지식인이 내가 아닌지 두렵다. 혹시라도 나를 대할 때는 춘풍(春風)으로 남을 대할 때는 추상(秋霜)같이 하지 않았나 식은땀이 흐른다.
참고자료: 신명난 탈출(이규석), KOSIS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