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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롱 Jun 27. 2022

하나님도 여러 날 걸린 일

처음으로 기능사 시험을 치르고(서두르지  말고  즐기면서)

 창세기 제1장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과정이 나온다. 첫째 날은 빛을 만들어 낮과 밤을 만들었다. 둘째 날은 하늘을, 셋째 날은 땅과 바다를 만든 후 풀과 채소, 그리고 나무를,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다섯째 날에는 공중의 새와 바다의 생물을, 여섯째 날에는 육지의 생물과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 이렇게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은 쉬셨다.

 

 4월 19일부터 직업전문학교에서 전기내선 설비와 태양광 설비 교육을 받고 있다. 내년 1월까지 진행되는 과정이다. 퇴직 이후에 무엇을 할까 여러 날 고민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벽에 구멍 두 개가 보였다. 구멍 크기가 젓가락이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크기가 젓가락 굵기와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양손에 젓가락을 잡고서 구멍에 넣었다. 순간 찌릿한 떨림과 함께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나에게 '전기'는 공포였다. 지금도 어쩌다가 형광등을 갈아야 할 때는 두꺼운 목장갑과 가죽장갑을 끼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가슴 조이며 겨우겨우 갈아 넣는다. 전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전기를 잘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근처에 직업전문학교에서 전기 관련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고 등록했다.

 

 첫 한 달 동안은 생소한 단어와 무수한 공식을 외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용어에 대한 개념과 공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지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 배우는 과정은 수료만 하면 기능사 필기시험이 면제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기능사 필기시험 합격에 대한 욕심이 났다. 담임교수도 일찍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는 기간에 다른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보라고 했다. 5월 중순부터 6월에 있을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막상 시험 준비를 시작하니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에 조바심만 났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김선경 엮음)'라는 시집에 ‘이제 깨달은 것은(작자 미상)'이라는 시가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하나님도 여러 날 걸린 일을 우리는 하루 만에 하려 든다'는 것이다. '아, 그렇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세상을 만드시는데 6일이나 걸렸지. 전기 공부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내가 그것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되고 암기한 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거야.’ 조급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자꾸만 잊어버리는 나이 든 뇌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준비하고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도 그날그날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셨다. 미상의 시인은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하룻밤 사이의 성공이 보통 15년이 걸린다.’는 것도 이제 깨달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공한 사람들이 노력한 시간에 비교하면 이제 시작한 나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차근차근 공부했다. 모임에 가서도 다음날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싶어서 사이다만 마셨다. 그리고 지난 6월 12일에 전기기능사 필기시험과 6월 18일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기능사 필기시험을 치렀다. 두 과목 모두 합격했다. 두 달 후에 실기 시험이 있는데 잘 준비해야겠다. 하나님도 세상을 만드는데 6일이 걸렸고 성공한 사람들의 하룻밤이 15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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