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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롱 Oct 15. 2023

익어 떨어질 때까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 전에는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시험이 끝나면 ‘조금만 더 공부할 걸’하고 후회한다. 시험 기간 중에 공부한 것은 휘발성이 유난히 높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어떤 내용이 시험에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을 비워야 다음 과목 시험을 준비할 수 있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암기한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탓이다.

 숙지熟知는 ‘익숙하게 또는 충분히 앎’이라는 뜻이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현종 시인은  「익어 떨어질 때까지」에서 만사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라 했다. 그런 기다림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 『슬로싱킹』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 했다. 고민하는 동안 신경세포들이 서서히 자라서 뇌 속에 흩어져 있던 관련 지식이 마침내 연결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번개를 맞은 듯한 깨달음의 순간이라 했다. 고민하며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년 3월에 있는 전기산업기사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전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한국폴리텍대학에 입학했다. 어려운 부분을 공부할 때면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이왕 시작한 공부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 시간을 버틴다. 어려운 부분은 몇 번이고 책을 읽어보고, 교수님께 도움을 부탁하고 스스로 이해가 될 때까지 생각한다. 그러다가 실마리를 알아내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는 ‘아하’하며 소위 ‘뽕 맞은 기분’이 든다. 공자는 그 깨달음에 대해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했다. 자격증 공부가 공자처럼 큰 도를 깨닫는 공부는 아니지만 공부의 참맛을 자주 느끼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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