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흐르는 강물처럼

2026년 3월 28일(토)

by 달빛라디오

충무로의 토요일 오후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낡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을 지나, 세월의 흔적이 듬뿍 묻어나는 돼지갈비집 문을 열었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밴쿠버의 거친 바람을 견디며 살아서일까, 녀석의 얼굴엔 타국 생활의 고단함과 가장의 단단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우리는 2017년, 내 둘째 딸과 함께 떠났던 캐나다 여행의 기억을 안주 삼아 이제는 입에도 데지 않는 술잔을 기울였다. 당시 녀석이 소개해 주었던 여자친구는 이제 아내가 되었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얻은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란다. "그 녀석 언제 다 키우냐"며 짐짓 핀잔을 줬지만,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의 눈가엔 늦깎이 아빠의 지극한 행복이 걸려 있었다.


친구는 이번 방문의 주된 목적이 건강검진이라고 했다.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이라 믿었던 그곳에서도, 한국만큼 빠르고 정교한 검진을 받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비싼 비용과 느린 절차를 피해 고국을 찾은 친구의 말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의 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한국은 정말 대단해. K-팝이니 K-문화니 하는 것들이 빈말이 아니더라고. 캐나다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석쇠 위에서 보성녹돈 갈비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동안 친구는 연신 대한민국의 위상을 칭찬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식당 밖 충무로 거리에는 수년 전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거주자들이 섞여 활보하고 있었다. 한때 우리가 막연히 동경했던 '서구 선진국'이라는 환상은 이제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이민이 마치 인생의 탈출구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으나,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녀석이 감내했을 고독과 용기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만약 그때 나도 떠났더라면, 지금쯤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마음속으로 가만히 뇌어보았다. 익숙한 언어, 사랑하는 가족, 나를 지탱해 주는 이 터전들을 모두 등지고 새로 시작할 용기가 내게는 이제 남아있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소중함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평온함이 더 귀해진 나이다.


창밖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굳이 거센 파도를 찾아 떠나지 않아도 좋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낮은 곳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듯, 나 또한 이 일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흘러가고 싶다. 내일이면 친구는 다시 먼 길을 떠나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거리에서 나의 삶을 지켜낼 것이다.


갈비 냄새 배어든 점퍼를 여미며, 다시금 확인한다. 내가 머물 곳은 바로 여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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