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속에 있자면 이제 곁에 없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실재하거나 이제 실재하지 않지만 결국 전부 머릿속 가상의 인물임으로 내게 해로운 모든 말을 건넬 수 있다. 어느 목소리는 대뜸 욕지거리를 내뱉고 또 어느 목소리는 건조하게 내 이름을 부른 뒤 아무 말도 더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면.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안에서 목소리를 잃은 그들의 한때 뻐끔이기라도 하던 입술은 이제 조금도 달싹이지 않는다. 기억은 소리부터 사라져 간다. 박아셀의 노래. 상상 속에서 반평생 추궁당하고 있다. 알맞게 작별하지 못해서. 죽기 위해 버리고 떠난 뒤에 어처구니없이 살아버렸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일말의 참회나 반성도 되지 못한다. 가능성의 영역 앞에 서성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따름이다.
몇 가지 중대한 사건은 여전히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제때 그러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리되지 못한 채 완결되었다.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만 모르고 있다. 나의 일인데도. 알맞게 정리하지 못해 없던 일이 됐다. 내게만 중요한데 나는 끝내 몰랐고 기억하던 이들은 잊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찌그러진다. 귓속에서 닳고 닳은 음악들이 한데 엉켜 덜그럭거린다.
재작년에는 샤워할 때 죽어, 죽어, 되뇌었다. 다음 해가 되어서는 죽어가 미안이 되어있었다. 미안,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았다. 매번 떠오르는 얼굴이 달랐다. 연말 즈음에는 단말마가 되어있다. 아아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아. 길을 걷다가 견딜 수 없는 게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젓는 습관 생겨 있다.
오래전 꿈에서
강 위의 다리가 건너는 용도라는 걸 몰랐다.
익숙하게 매달리는 나를 가만히 위에서 보다가 이름을 부르던 지친 목소리.
기억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