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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Sep 28. 2022

토실이의 세척 당근

아직도 마트에서 중국산 세척당근만 보면 토실이가 생각난다. 벌써 토실이가 떠난 지 7년이 흘렀다.





토실이는 나의 첫 애완토끼였다.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군대 가면서 데려온 친구다. 군대 가 있는 동안 토실이와 놀고 있으라는 배려인데 둘 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어찌해야 할지 지켜보기만 했었다.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로 추정되었던 토실이는 세 달 정도 지나니 금방 성인 토끼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기였을 때 사진을 많이 찍어둘 걸 후회한다.






토실이는 처음에 이름이 없었다. 동물 병원에 가도 그냥 '토끼'였다. 이름을 지어주기가 무서웠다. 토실이에게 정을 주는 게 두려웠다.



이 작은 친구는 금방이라도 내 곁을 떠날 것만 같았다. 밤새 세찬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는 작은 친구가 떠날까 봐 잠도 못 자고 귀를 막아줬다. 내 걱정과 달리 작은 친구는 건강하게 자랐다. 다 큰 토끼는 얼굴이 작았고 아이라인처럼 예쁘게 눈 주변으로 검정 털이 진해졌다.

엉덩이가 토실토실해서 남자친구가 토실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토실이는 강아지 같았다. 나는 토끼가 이렇게 애교가 많고 주인을 잘 따르는지 몰랐다. 토실이는 집안 곳곳 내가 가는 곳이면 따라다녔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느라 방방 뛰어다녔고 내 얼굴을 핥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토실이는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나에게 온전히 줬다.






나는 여러 회사와 여러 직종을 옮겨 다녔다. 학창 시절 칭찬만 받았더니 가혹한 사회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콜센터에 입사했다. 남들과 대화를 잘 못할 정도로 소심했던 나는 콜센터 상담업무도 쉽지 않았다. 교육시간에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 자체도 매일 스트레스였다.






언제까지 무너질 수 없어 퇴근 후 토실이를 붙잡고 콜센터 스크립트 연습을 했다. 토실이를 가상의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상담 내용을 읽어나갔다. 목소리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성우처럼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연습할 때는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토실이도 방석 위에 얌전히 앉아 나를 바라봐 주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적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밤 우는 날들이 많았고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날들도 있었다. 고객들의 폭언에 상처받아 울고 있으면 토실이는 조용히 다가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물론 토실이는 손이 없으니 혀로 열심히 핥아주었다.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누워있으면 토실이도 잠을 자지 않았다.



내 배 위에 올라왔다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대고 있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귀여운 애교를 보여줬다. 새벽 서너시가 되어서야 잠이 오면 토실이는 가만히 나를 지켜봐 줬다. 누군가가 지켜봐 준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토실이와 함께 생활한지 6년 정도 되었을 때 남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토실이를 신혼집으로 데리고 가야 하나 이야기가 나올 무렵 갑자기 토실이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증상이었지만 나이도 있고 하니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증상을 시작으로 곧 토실이는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하필 긴 연휴 때문에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 몸이 많이 허약해진 거 같아 토실이 줄 건강식도 많이 주문해뒀다.



토실이의 마지막 모습. 토실아 ㅠ_ㅠ




지옥 같았던 연휴가 지나고 자주 가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토실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미 온몸에 빼곡하게 암세포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토실이는 나와 더 함께 하고 싶어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암 환자인데 왜 못된 것만 주인 닮았니. 처음 가보는 김포 어딘가에 토실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엄청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집에 와서 누워버렸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식을 떠나보낸 것처럼 힘들었다.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놀아주지 못했던 미안함, 아프다는 신호도 무시했던 나의 잘못들 다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연휴 때 주문했던 토실이의 건강식은 주인이 상자를 열어보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무지개다리 건넌 토실이가 속상할 거라고 달래주는 남자친구 덕분에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토실이가 떠난 지 6년이 흘렀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토실이 덕분에 남자친구와 오래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다. 토실이 덕분에 콜센터에서 10년째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못 만날 나의 소중한 인연이다.






오늘도 세척 당근을 사지 못했다. 어디선가 주황색 입술을 킁킁거리며 토실이가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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