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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술에 취해 앞 구르기를 했을 수도 있다.

독서의 무용함

by 송주

남편이 또 술을 잔뜩 먹고 왔다. 노상 있는 일이다.

어제는 기분이 나빠 술을 마셨다며 되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갑자기 앞 구르기를 시작했다.

소파에서 둘째와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세 한탄이 자동으로 나왔다.

바닥에서 잠시 그렇게 기괴한 쇼를 하던 남편은 어디다 숨겨뒀는지 모를 불닭볶음면을 꺼내 나왔다.

남편은 술을 많은 먹은 후 속임수를 쓰는 위장의 공허를 먹을 것으로 채운 후 잠든다. 일단 먹어야지 잠이 드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불닭볶음면 용기를 들고 혼잣말로 아주 크게 이야기했다. 물 계량선이 없단다.

'술이 취해 용기 안에 선이 안 보이는 거겠지.'

나는 남편이 취해 있을 때 웬만하면 귀를 막거나 귀를 활짝 열고 들은 말을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낸다. 쌩깐다는 말이다.

남편은 수프를 뜯은 후,

취객이 무방비 상태에서 뻑치기를 당하는 것처럼 매운 소스 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연신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콜록

읽던 소설 끝 부분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정말 시끄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저럴 거면 처먹질 말지..'

난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늘 속으로 생각만 한다. 결혼 후 누차 생각한 게 있다. 안 참으면 이혼 이겠구나였다. 누군가 참아야 한다면 홧병을 얻더라도 내가 참는 쪽을 택했다. 왜냐하면 성향상 전면전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활화산 같은 남편의 기질에 맞불을 놓는 행동은 삼가는 편이다. 대신 화산이 조금 진정되는 때를 기다렸다 할 말을 하곤 한다.


붉닭볶음면을 다 먹은 후 안방으로 들어간 남편은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 모프로에서 헤밍웨이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송주야 너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 읽어봤어?

남편이 바로 잠들지 않았나 보다. 곤란 그 자체였다.

난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 읽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한 남편의 깐족거림이 시작됐다.

"너는 어떻게 그 책을 안 읽어 봤을 수 있어? 어쩌고 저쩌고 꼬불랑 꼬불랑~~"

얼레리 꼴레리 뉘앙스로 자꾸 말을 걸어오는 남편에게

"그럼 오빠는 저 책장에 책 다 읽어 봤어?" 했다.

우리 집 책장의 책들 대부분은 다 남편이 산거다. 나는 책을 주로 빌려 보는 편이 있었고 남편은 주로 사서 읽는 편이었다. 노자니 도덕경이니 하는 동양 철학서 역시 남편이 산 것이었다. 이사를 오면서 절반의 책들을 버렸고 요즘 브런치 벗들 덕에 계속 책이 다시 쌓이고 있는 중이다.


'저걸 다 읽고도 모양이라니..'

독서가 모든 이에게 같은 득을 주는 것은 아닌듯하다. 아니면 술이 유용한 것도 무용하게 만드는 묘수를 부리는 것 같다. 하긴 공자, 맹자도 술에 취하면 앞 구르기를 했을지 누가 알리?


얼마 전 사촌 동생 결혼식에 갔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고 사촌 동생은 귀여운 모습으로 "술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해장국을 끓여 주겠습니다."

라고 해맑게 선언했다.

살아봐라~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해장국의 북어 대가리로 두드려 맞지 않음 다행인 거다.


*참고로 공자는 술을 절제하며 마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알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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