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백발의 아버지가 가볍게 산행을 하고 오신게 너무 감사하다.
아버지와 엄마는 막 산에 다녀오신 참이셨다. 엄마는 점심준비를 하고 아버지는 TV를 보고 계셨다. 뉴스에서는 향년 78세로 생을 마감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언론은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었고 재개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돈 아무리 많으면 뭐 하나 느이 아버지랑 동갑인데 먼저 갔네"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시던 엄마가 다 부질없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그때 알았다. 아버지가 벌써 78세라니,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73세인지 75세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매년 생일케익에 초를 꼿을 때 정도만 나이를 인지했었다. 마음속에 나의 아버지는 그냥 70대 아버지였다. 그런데 78이란 숫자는 80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진 느낌이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가장 공정하게 함께 데리고 간다. 기억 속으로 사라져 없어질지 모를 위태로운 시간이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나의 시간만 흐른 게 아니었구나, 바보 같은 깨달음이 전해졌다. 부모의 건강이 자식에겐 가장 큰 행복임을 새삼 느꼈다. 친숙함에 속아 많은 부분을 놓치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오늘따라 엄마가 챙겨주신 점심 밥상에 마음이 뭉글거린다. 백발의 아버지가 탄탄한 당신의 두 다리로 가볍게 산행을 하고 오신 게 너무나 감사하고 크게 느껴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영원하고 싶은 것은 있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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