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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예찬(都市禮讚)

선릉 테헤란로에서

by freejazz


1.

출근 무렵 아침시간

지하철 선릉역(宣陵驛) 4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

한여름의 눈부신 아침해가

사무실을 향해 바삐 걷는 걸음을 재촉한다.

대로변(大路邊) 베이커리에서는,

고소하고 담백한 빵 굽는 냄새와

솔솔 풍기는 연한 기름냄새가

기분 좋게 아침길을 열어주고.

나는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스윙 재즈(Jazz) 음악을 들으며,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때마침 이른 아침부터,

커피전문점에서 모닝커피를 Take-out 해서

손에 들고 가는 직장인 남녀가 내 옆을 지나가니,

마치 갓 볶은 것 같은 커피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나는 탁 트인 테헤란로를 계속 걷다가

사무실로 들어가기 직전,

역삼역(驛三驛) 방면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 숲에 시선(視線)을 잠시 멈춰본다.



2.

퇴근 무렵 저녁시간

지하철 선릉역 5번 출구 근처의 편의점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잠시 시간을 보낸다.

내 손에는 맥주 한 캔이 들려져 있고,

귀에는 에어팟을 끼고 최신 Pop 음악을 듣는다.

약속시간 한 시간 전,

1차 장소는 근처 고깃집이고

2차 장소는 고깃집 바로 옆 찌개집이라는 예고(豫告)

먼저 여유롭게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대로변(大路邊)을 쳐다본다.

이제 막 해가 지려는 시간, 테헤란로의 건물 숲

어둠 대신 밝은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

오늘도 야근(夜勤)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한숨 섞인 푸념이 들려오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정겨운 풍경이다.

이곳으로 잠시 사무실을 옮긴 지

이제 막 1년 여가 지난 시점.

몇 달 뒤, 아마도 계절이 두어 번 더 지나면

이곳 선릉 임대사무실에서의 근무는 종료되겠지만,

이미 여기 선릉 주변에 정(情)이 꽤 많이 든 것 같다.

너무나도 자주 야근을 하고 있는 내가, 그런 내가!

주변 건물의 야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동질감(同質感)을 느끼는 건지,

오히려 그들의 어두운 모습조차 반갑게 느껴진다.



3.

한편, 조만간 복귀할 양재동(良才洞)에도,

탁 트인 대로를 지나면 바로 양재천을 만나고

좌우로 뻗은 구룡산과 그 옆의 우면산 줄기가

우리의 시선을 시원하게 끌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인 청계산 쪽 지점에서

시선을 멈춰, 여름 내음을 한껏 맡아본다.

출근길 양재역 11번 출구를 나오면

샌드위치와 핫도그, 계란빵을 파는 노점상에서 풍기는

버터 냄새가 아침을 반겨주고,

환승한 시내버스는 시원하게 중앙차선을 달린다.

아, 근데 그게 버터가 아니라 마가린인가?

뭐 아무려면 어떤가. 향이 좋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퇴근길 양재역 근방에서

아직 철거되지 않은 보도육교를 건너면

푸근한 인심으로 떡볶이와 순대를 가득 주시는

분식집 아주머니도 아직 계시고,

양재시장의 포차와 닭집, 그리고 족발집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양재동엔,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해주는

추억의 말죽거리가 아직 그대로 있다.



4.

서울의 부도심인 강남 한복판에 있어도

서울의 끝자락인 양재 말죽거리에 있어도

이 도시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눈부신 아침과 편안한 저녁이 있고,

단골로 혼자 먹을 곳 하나,

외롭지 않게 혼자 앉을 곳 하나

갖고 있는 이런 도시(都市).

계절에 무관하게 어디에서도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는 이런 도시.

이런 도시를 예찬(禮讚)하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진짜 도시인(都市人)이다.



#.

오늘도 나는,

에어팟에서 나지막이 연주되는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Dave Brubeck Quartet)의

"Take Five" 를 들으면서

선릉역 4번 출구의 에스레이터를 타고

바쁜 아침을 시작한다.

재즈의 일반적인 3박자나 4박자가 아닌,

3+2개의 4분 음표가 불균등하게 나뉜 5박자로,

색소폰이 피아노를 당김음으로 잡아당기는

변칙적인 리듬의 강약조절을 통해,

흥겹고 신나는 스윙(Swing) 감(感)이 느껴지는

이 곡은 나에게,

도시를 사랑하는, 진짜 도시인으로 살아가게끔

긍정적(超肯定的)인 마인드를 심어준다.





(덧붙임)

"도시예찬(都市禮讚)" 이라는 글의 제목은

EBS 다큐프라임 "도시예찬" 3부작(2021년 9월)에서,

그리고 "진짜 도시인" 이라는 단어는

건축가 김진애 님의 "우리 도시예찬" (2003년)에서

각각 모티브(Motive)를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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