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쳐서 월요일부터 좀 쉬고 싶었다.
이틀째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이틀 연속으로 연차휴가를 낸 건 작년까지의 나에겐 없던 일이다. 그러니까 올해가 첫 시도인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지난여름에 해외여행을 더 길게 가기 위해 워킹데이 5일의 하기휴가에 주말과 광복절을 연결한 뒤 미리 통보했던 연차휴가 이틀을 붙인 게 입사 이후 첫 시도였는데.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이렇게 주중에, 그것도 난데없이 주말과 붙여서 이틀 연속으로 휴가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간 뒤 내가 좋아하는 전(前) 부서장님과 함께 과메기를 안주로, 소맥 폭탄주를 말아서 신나게 회포(懷抱)를 풀었기에, 지난 일주일간 받았던 깊은 상처가 어느 정도는 아물어서 서서히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터졌다. 나는 토요일 새벽에 가끔씩, 오늘이 평일인가 싶어, 출근을 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느라 착각 속에서 살짝 잠이 깰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혹시나 미주(美洲) 쪽에서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 간혹 그룹웨어를 열어 보는, 그런 변태(變態) 같은 습성도 있다. 그런데 그날엔 그런 바보 같은 나의 이상한 습관이 결국 큰 화근(禍根)이 되었다.
그날 새벽에 나는 어찌 이렇게 심한 갑질을 할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업무 협조를 거부하는 갑(甲) 부서의 메일 한 통을 기어이 열어보고야 말았다. 그런 메일은 주로 모두가 퇴근한 금요일 늦은 저녁에 수신되기에, 그래서 주말엔 더더욱 그런 메일을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건 마치 판도라가 그렇게 열지 말라던 그 상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확 열어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뜻밖에 발생한, 그 재앙의 근원.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이 메일 속에서 내세운 건 거짓 정보들과 비겁한 변명들 뿐이었다. 물론, 살짝 미안했다는 표현도 두 군데 정도 들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가 이 정도까지 해줬는데 너는 뭘 더 바라냐는 내용이 주(主)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이건 사실 사과라기보다는 오히려 비아냥에 가까운 표현들이 대다수였는데, 문제는 그 메일의 참조(C/C : Carbon Copy)엔 여러 부서장들까지도 들어있었다는 것. 그러자 나는 힘이 쭉 빠지면서 뭐라고 역공(逆攻)할 만한 힘조차 잃어버렸다. 그러다 급기야 나에겐 뜻하지 않던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고, 뭔가 알 수 없는 우울증까지도 막 시작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주말을 제대로 푹 쉰 뒤, 잔뜩 동기부여가 된 채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산뜻하게 출근을 할 순 없는 법. 그리하여 나는 지난 토요일 아침에 월, 화로 이틀 정도 혹은 그 이상 휴가를 쓴다고 부서장에게 일방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버렸다. 답이 있든 말든 난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 마침내 부서장으로부터 뒤늦은 답장이 왔다. 아침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 답이 없어 사실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진 않고 그냥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평소처럼 주말을 보냈던 터였다. 더욱이 토요일 밤엔 둘째 아이의 야구 결승전 야간경기가 있어 아이와 아이 친구를 한양대학교 옆 살곶이 체육공원의 야구장까지 차로 데려다줬고, 물론 그전에도 아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참여하는 야구경기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때까지도 몹시 열을 받은 상태여서 몸과 마음에 쌓인 화(火)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야구 경기가 끝날 시간에 맞춰 거기에서부터 동호대교까지 그냥 말없이 걸었다. 핸드폰의 뮤직 앱에서 내 마음에 위안을 주는 트랙을 골라 아이팟을 귀에 꽂은 채로. 그런데 아마 동호대교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중랑천의 용비교를 지날 무렵이었을 거다. 부서장의 문자 메시지를 수신한 순간은. 용비교 근처엔 삼삼오오 모여 러닝을 하는 사람들과 빠르게 걷는 중장년층,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도로를 쌩쌩 달려 건너편 서울숲으로 진입하는 사람들로 한밤중에도 뜨거운 운동의 열기(熱氣)가 느껴졌는데, 부서장의 문자메시지를 보니 내 맘속엔 갑자기 싸늘한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지금에서야 문자를 봐서 답장이 늦었다, 그리고 네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잘 쉬면서 마음 추슬러 보라는 뭐 그런 내용. 그런데, 부서장이라면 당사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서 상황을 대충 뭉개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갑(甲) 님들을 찾아가서 한마디 해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 내가 원한 건 물론 그 상황에 대한 공감과 위로도 있었겠지만, 이젠 그런 것보다도 리더로서, 상대 부서에 명확한 팩트 체크를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 그 담에 큰소리 한번 치고 나서 우리가 얻을 걸 가져다주는 걸 더 원했었는데. 그러니까 조용하게든 시끄럽게든 그들에게 그냥 한 방 날리면서 그들과 확실한 결판을 냈으면 됐는데... 그놈의 정치적인 야망(野望)을 앞세운 그분께서는 다른 부서의 직원에게는 항상 신사적으로 대하면서 오히려 같은 부서의 나 같은, 힘없는 아군(我軍)에게만 늘 참으라고 강조하시니. 그러나 그건, 나 같은 만만한 직원들을 이용해 먹기만 한 뒤, 본인은 저기 저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더러운 출세욕(出世欲)이라고, 용비교 앞에 서있던 나는 건너편 서울숲을 보며 그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나는 이 아침 시간에 혼자 집에 있다. 주중에 나는 늘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집을 나서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첫째 아이가 겨우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을 잠깐 동안 짧게 확인한 뒤 부랴부랴 서둘러 출근길에 뛰어드는 사람이었는데. 이틀째 이렇게 가족들이 다 나가는 것을 보니, 마치 한 회사를 25년 다니다 퇴직한 드라마 속의 김 부장처럼 마음이 참 쓸쓸하다. 어제는 조간신문을 펼쳐놓고 거의 정독(精讀)을 하다가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러 병원에 다녀왔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읽지 않는 신문엔 내가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중요한 정보들이 참 많더라. 그리고 이 동네는 병원에도 월요일 아침부터 대기 환자들이 무지 많더라. 또 김밥 한 줄 사러 갔던 우리 아파트 단지에 인접해 있는 재래시장엔, 점심시간 무렵에도 엄청난 인파로 북적대더라. 더욱이 날씨는 벌써 초겨울로 접어들어 한낮인데도 체감온도가 영하권(零下圈)을 맴돌고 있더라. 그렇게 내가 잊고 있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과 갑작스러운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며, 그동안 일에만 몰두했던 내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오전 9시 5분. 집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어제부터 갑자기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져서 쌀쌀하다 못해 추운 날씨가 시작되었는데, 베란다 창밖으로 비치는 포근한 아침햇살은 따뜻하다 못해 반갑기까지 하더라.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그래도 이 계절에 집 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다. 여느 날처럼 출근하면 지금 이 시간엔 한창 그날의 해야 할 일 쏟아지는 소리로 머리가 멍했고 눈은 따가운 채로 몸 어딘가가 늘 아파왔는데. 그리고 사무실 창밖엔 선릉역 방면 테헤란로에서 비치는 햇살이 건너편 고층빌딩 창에 반사되어 정확하게 내 자리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거슬렸는데. 오늘 햇빛은 번아웃 증상 비슷한 걸로 상당히 지쳐있던 내게, 오랜 친구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햇빛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비타민D가 우울증 예방에 아주 중요하다지. 나에게 이미 번아웃은 왔지만 이 증상이 우울증까지 번지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하니까.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까지 그 온기(溫氣)를 느꼈다.
한편,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오는 길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데려다주려고 나서는 젊은 부모들이 보였다. 심지어 Tumi 백팩을 메고 어린 딸과 함께 집을 나서는 젊은 아빠도 보였는데, 그렇게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출근할 수 있는, 극도로 낮은 출산율 덕분에 매우 친(親) 육아적으로 변한 이 시대적 분위기가 상당히 부러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름휴가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데려다준 적이 없었다.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건 늘 배우자의 몫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배우자의 복직 이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내가 아이들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하교를 같이 했던 때도 있긴 있었다. 그때 아마 유치원의 등하교 담당 선생님께서는 아빠 오셨다고 아이에게 엄청나게 크게 얘기하면서, 아이보다도 더 들뜬 얼굴로 나를 맞았던 적이 있었지. 왜냐면 나는 유치원 주말 행사 때 빼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 시절의 나는, 그리고 나의 회사는 근무시간은 8 to 8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근무, 그러나 현실은 7시 30분 출근에 8시 30분 퇴근이었지.)이 기본이었고, 주중 세끼 모두를 회사에서 해결했으며, 주말에도 회사 행사나 동료 결혼식에 시달렸고 그렇지 않은 토요일엔 자주 출근을 했었다. 그럼 연차휴가는? 그땐 늘 2진수였다. 0 아니면 1. 그래서 술자리에서 시쳇말로 우린 모두 개근상 받아야 한다고 푸념하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이젠 연차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데, 하지만 간부사원 중에서도 중견 간부 이상인 나 같은 애매한 시니어급 직원들에겐 그런 게 여전히 다소 제약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간부사원이 아닌 주니어급 직원들에겐 연차휴가 같은 건 매우 관대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회사가 사실상의 개점휴업을 시행하는 12월 중순 이후에도 휴가를 쓰지 않고 꾸역꾸역 회사에 나갔다. 왜? 부서장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보직자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너는 굳이 왜 휴가를 쓰냐고. 이상하게 나에게만 물어보더라.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좀 힘들어서요...라고. 하물며 이건 진짜다. 진짜 힘들었다. 몸도, 그리고 마음도. 그런데 그러면 또 이상한 꼬리질문이 이어진다. 주말에 푹 쉬면 되는 거 아냐? 같은 편협(偏狹) 하고 이기적(利己的)인 질문이.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에선 이것저것 챙길 것들이 많기 때문에 주말에 맘 놓고 쉬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주재원 귀임 후 한국에서 골프 한번 치러 간 적도 없다. 아이들이 제법 큰 지금도 주말마다 아이들 라이딩(학원과 운동)을 해야 하고, 아무튼 뭐 할 게 많으니까. 물론, 한국에서의 골프는 비용적인 문제(그린피 + 캐디비용 + 그늘집 등등... 진짜 비싸도 너무 비싸다.)도 있고, 특히 나는 양쪽 어깨를 죄다 수술한 탓에 어깨의 가동범위가 잘 나오지 않는 그런 표면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말은 언제나 "나" 보다는 "가족"의 범주(範疇)로 묶인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내가 온전히 나의 시간을 쓸 수 있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가 가장 적기(適期)로 생각되어 가급적이면 그 시간에 맞춘다. 물론,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토요일 오전도 괜찮은 시간이긴 한데, 아무래도 토요일 오전은 좀 늘어지고 싶은 시간인지라 글도 따라서 늘어지더라. 게다가 토요일 오후까지 잘 쓰지도 못한 글 붙잡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좀 눈치도 보이고.
아무튼, 이틀째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는데, 시간의 흐름은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느껴지고 있다. 뭔가를 찾다가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받아만 놓고 쌓아둔 정기간행물들을 대충 읽고 처분하려고 분류작업을 하다 보니 오후 4시,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학원 가기 전에 뭐라도 먹이려고 분주하게 주방에서 뭘 하다 보니 오후 5시, 정신없이 아이들 보내고 잠시 숨을 돌리려 하니 오후 6시. 집에만 있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감기(▶▶)처럼 쏜살같이 흘러간다. 게다가 11월의 해는 점점 고도가 낮아져서 빨리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감한다. 어느덧 컴컴해진 창밖에선 또다시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이윽고 현관의 자동문 여는 소리. 띠리릭. 그리고 그렇게 아내가 퇴근하고 들어오면서 기분 좋게 한마디 한다. "집안일 많이 해놨네!"라고. 나는 그냥, 세탁기와 건조기 돌리고 빨래 개기, 쓰레기(일반, 음식물, 재활용의 3종 세트) 처분과 간단한 청소, 그리고 설거지까지,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당연히 해놔야 할 일들을 해놨을 뿐인데, 맞벌이임에도 남편이 늘 바빠 주부 100단이 된 아내는 또 그걸 알아본다. 사실 집안일은 해놔도 별로 표가 나지 않고, 시간만 꽤 많이 투입되는 상당히 생산성이 낮은 일이다. 다만, 맞벌이를 하면서도 그런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아내가 보기엔 조금이나마 표가 났을 뿐이었다.
한편, 나는 부서장에게만 살짝 한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을 거라고, 토요일 아침에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같은 부서의 어떤 누구에게도 뭐라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업무적인 전화 네 통 외에는 이틀 동안 진짜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예전엔 옆에 있던 동료가 하루 이틀 출근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본다고 짧은 메시지 같은 거라도 보내곤 했었는데. 지금은 다 자기 일하느라 바쁘고 남의 일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무 연락이 없더라. 회사에선 조직문화를 개선하네 어쩌네 하면서 겉으론 꼰대 문화를 없애서, 방해받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막상 조직의 속을 심도(深度) 있게 들여다보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비인간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뭐가 더 좋다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한다고 해도 그 사유를 물어보지 않을 직원들이 많을 것 같다. 사실 얼마 전에 옆 부서의 직원이 9개월 정도 누적해서 무려 16개의 자료를 주지 않아 그날 내 자리에서 나와 대판 붙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누구도 그 말싸움에 끼어들지 않았고, 심지어 그 대화가 종료된 뒤에도 어떤 누구도 따로 묻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엔 사내용 메신저도 있고, 핸드폰의 카카오톡 같은 것도 있고. 얼마든지 누군가가 볼 수 없게 개인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Tool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누구든 사후(事後)에라도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었을 건데. 하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이면 이건 오히려 내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한 자책감(自責感)이 들었다. 예전엔 같은 부서 인원이 다른 부서 인원에게 당하고 있으면, 그래도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면서 공감하고 상대를 비난해 주는 직원들도 몇몇 있었는데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협업하는 부서 사람들과의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던 게 갑작스레 내 기억을 스쳤다. 물론 약속시간 두어 시간 전엔 핸드폰으로 알람이 울릴 거니까, 평소 같으면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리마인드 될 수 있던 거였는데. 그런데 그때 거짓말처럼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책임님, 어제와 오늘 모두 메신저에 로그아웃 상태던데, 오늘 저녁식사 잊지 않고 계셨죠? 혹시 휴가나 출장이면 다음으로 연기할까요?"라고. 그러자 나는 곧바로 답을 줬다. "아, 어제오늘 모두 연차휴가를 냈는데요. 저녁식사 약속은 당연히 알고 있고, 어차피 저녁은 먹을 거니까 시간 맞춰서 거기로 갈 겁니다. 그럼 이따 봬요!"
그렇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특히 술약속이라면 더욱더. 나는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지 않은 이상, 회사 생활하면서 내가 스스로 술약속을 미루거나 한 적은 거의 없다. 이틀 쉬었다고 회사랑 영영 작별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일부터 다시 일을 하게 될 거. 잠시 휴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한다고 생각해야지. 하지만, 이런 사태를 겪고 나니, 평소에도 회사에서 말수가 별로 없던 나였지만, 사무실에 복귀하면 내일부턴 그 없던 말수가 부쩍 더 줄어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건 같이 일한 동료들과 잠시 풀었던 술자리 만으론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지, 올해 연말은 나에게 정말 잔인하게 느껴진다. 올해는 이제 6주가량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초부터 쌓인 마음의 벽은 이젠 점점 더 높아져서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듯 무겁게 내 마음에 닿는다. 무겁고, 무겁게. 매년 연말에 내가 느꼈던 감정과는 너무 많이 다르게.
하지만 그래도 꿀같이 달콤했던 이틀 연속으로 쓴 휴가. 오늘까지는 그래도 마음의 벽 같은 건 모두 잊고, 가볍고, 가볍게, 연말에 내가 느끼던 감정과 최대한 비슷하게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겠다.
(덧붙여) 이틀 연속 연차휴가를 쓴 진짜 이유
이틀 연속으로 연차를 쓴 게 "그동안 지쳤다, 쉬고 싶었다."라는 건 그저 표면적인 이유였고, 사실은 부서장이나 부문장 등 윗사람들에게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렇게 연차휴가를 쓰는 건 직원의 권리이기에 파업(罷業)이나 태업(怠業) 같은 노동쟁의(勞動爭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내가 이 조직에서 진짜 없어도 되는 직원인지 그들에게 조용히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이 조직의 일원(一員)이 맞는지도 꼭 따져서 소리쳐 묻고 싶었다.
참고로, 회사 전체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우리 부문(部門)에서 받아 왔다고 하면, 그 일은 사실상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거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부문장이 그 업무를 하지 못하겠다, 이건 우리의 일이 아니다 뭐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 업무를 받는 것에 대해 부문장이 직접 거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일인데,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문장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당신의 일은 우리 조직의 일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걸 내가 부문장(부서장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부서장으로부터 우회적으로 전달받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논리적인 모순(矛盾)이 아닌가?
[대전제] 우리 조직의 직원은 우리 조직의 일을 한다.
[소전제] 그런데 나는 우리 조직의 일을 하고 있지 않다.
→ 물론 이건 부문장의 의견이지만,
어디까지나 이 조직 내에선 그의 의견이
절대적이라 부정(不正)이 아닌 것으로 간주함.
[결론] 따라서, 나는 우리 조직의 일원이 아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기적의 논리"란 말인가? "우리" 안에는 "나"라는 사람이 분명히 속해 있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밀어내는 엄청난, 기적의 3단 논법. 그렇게 나는 회사에 출근해도,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소속이 없는 무적(無籍)의 회사원이 되었다. 아마도 언젠가 내가 이 조직에서 밀려나 다른 곳으로 전보(轉補) 당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그들은 미리부터 무슨 떡밥(!)을 뿌려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기적의 논리와 함께 이틀간의 달콤했던 휴가가 끝나간다. 하아...
아, 그리고 휴가의 끝자락에 아주 반가운 소식 하나 추가. 이 글을 예약 발행한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오후 5시 무렵, 저녁 약속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과 동일한 루트로 가고 있는데, 강남역을 지날 때쯤 무척이나 반가운 카톡 메시지가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부서의 막내 후배직원이 보낸, 마치 내 눈물 한 방울과 바꿔야 할 것 같은 문장. (그 직원은 사실 부서에서 막내는 진작 벗어났는데, 한때 나와 같이 있던 파트에서 막내였기에 아직도 귀여운 막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이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술 마시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눈물 한 방울 먼저 떨어뜨리고 간다. 이렇게 반갑고 고마운 안부 문자라니! 이 직원에겐 내가 본의 아니게, 나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만들었던 터라, 나는 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이런 인간적인 직원 덕분에, 이 삭막하고 이기적인 조직에서도 회사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잠시 후 나는 목적지인 선릉역에서 하차했지만, 이 메시지를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느라 다음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올 때까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음은 원본 그대로 가져온, 눈물 나게 고마웠던 그 직원의 메시지.
책임님, 안녕하세요!
어제 오늘 휴가이신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어디 아프시거나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시죠..?
(참고) 직장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
(* 출처 : 인크루트, 2016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