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오로라 이야기 - 네 번째
오로라는 '빛(light)'이다.
'빛'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리현상, 자연현상 중 하나이다. 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빛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요즘 같이 맑은 겨울날 오후창문 커튼 사이로 따사롭게 들어오는 햇빛, 밝게 길을 비추는 자동차 LED 헤드라이트,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는 전구, 복잡한 도심의 네온사인, 그리고 이 글을 보여주고 있는 모니터에서 빛은 항상 우리 눈으로 쏟아져 들어와 빛을 자각하게 한다. 이렇듯 빛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다. 빛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면 이런 '빛'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혼돈과 흑암의 순간에 '빛'이 있으라"는 말씀과 함께 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어딘가에 나와 있듯이... 이 세상, 우주가 처음 시작된 후 약 38만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빛'은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늘 우리와 함께 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빛을 이해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빛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는 매우 다른 물리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절대성
빛은 세상의 어떤 물리적 실체와는 다른 빛만의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빛의 속력이다.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며, 이 광속(光速)은 모든 물체가 가질 수 있는 속력의 최댓값이다. 세상의 그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강한 힘으로 가속시켜도 빛의 속력을 넘어설 수 없다. 마치 어떤 원리 원칙, 또는 법칙처럼 빛의 속력은 어떤 물체가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한계값이라는 의미이다. 이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더 이상한 것은 빛이 움직이는 속력은 관찰자의 움직임과 전혀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정지해 있거나, 뛰고 있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관찰자에게, 심지어 로켓을 타고 빛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는 관찰자에게나 빛의 속력은 항상 일정하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빛의 특성인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빛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경험하고 인식하게 되지만, 빛에게는 이와 같은 시간이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인쉬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주선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이 우주선의 속력이 빨라질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 마침내 빛의 속력에 접근하게 되면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즉, 빛은 우리 일상과 공존하는 물리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시간이라는 개념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빛은 우리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물리적 실체인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빛은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며, 주변 물체들과는 물론 우리 눈과도 항상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신비로운 '빛'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제는 제법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기도 한 기묘한 속성을 가진 물리현상, 물리적 실체(?)이다. (그런데 빛도 물질일까? 성균관대 한정훈 교수가 "물질의 물리학"이란 저서에서 자세히 다뤄놓았으니, 궁금한 독자들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빛은 주변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반사(reflection), 굴절(refraction), 회절(diffration), 간섭(interference)과 같은 특성을 보이며, 이들은 빛의 파동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빛의 입자성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빛이 입자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은 빛도 물질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빛의 입자성은 파동성에 앞서 17세기에 아이작 뉴턴에 의해 먼저 제안되었다. 빛의 직진성은 입자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하위헌스(C. Huygens)는 빛의 반사와 굴절 등의 특성은 파동성으로 더욱 잘 설명된다고 주장했으나, 뉴턴의 권위에 눌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빛의 파동성은 19세기 초에 이르러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영이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파동의 대표적 특성인 간섭 현상(interference)을 보임으로써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 맥스웰(J. C. Maxwell)에 의해서 빛의 파동성이 확립되었다. 맥스웰은 모든 전자기적 현상을 단 4개의 미분 방정식만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고, 나아가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교차 요동, 즉 전자기 파동이라는 사실을 보였다. 이것은 인류가 빛의 두 가지 측면 중 하나를 처음으로 올바르게 이해한 순간이기도 했다. 빛의 두 번째 측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인슈타인(A. Einstein)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빛이 한 개, 두 개, 세 개로 셀 수 있는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였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와 같은 빛에 대한 이해가 빛의 파동성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빛은 어떤 경우에는 파동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입자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것이다.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빛과 전자기파
빛은 일반적으로 가시광선 대역의 진동수(또는 파장)를 갖는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 or electromagnetic radiation)를 일컫는다. 그러나 가시광선 대역(400~700nm) 바깥 파장대의 전자기파도 가시광선과 동일한 물리적 특성을 가진다. 즉, 전파(radio wave), 마이크로파(microwave), 적외선(infrared), 가시광선(visible light), 자외선(ultraviolet), 엑스레이(X-ray), 감마선(gamma ray) 등 모든 파장대의 전자기파는 모두 동일한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다만 진동수 차이에 따라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빛의 알갱이인 광자의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하므로, 각 파장대 전자기파의 광자의 에너지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빛을 파동으로 이해하는데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모든 파동은 어떤 매질을 통해서만 전파된다. 줄 위의 파동, 물결파, 음파(소리) 등을 생각해 보라. 줄, 물, 공기 등 어떤 매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파동도 전파되어 진행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빛, 전자기파는 별도의 매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그래서 뉴턴을 비롯한 초기 과학자들은 빛을 전파시키기 위한 '에테르(ether)'라는 특별한 매질을 가정하고, 이를 증명하려는 수많은 이론적, 실험적 노력을 했다. 그러나 결국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고, 아인쉬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빛의 전파에는 별도의 매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빛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전기장과 자기장의 주기적인 요동, 즉 전자기파로 빛을 이해한다면, 빛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전기장은 전하(electric charge)를 띤 입자, 즉 전자 또는 이온에서 나오고, 자기장은 운동하는 전하, 즉 전류에서 나온다. 긴 줄이나 물을 일정한 주기로 흔들면 파동이 만들어지듯이 전하를 일정한 주기로 흔들면 전자기파가 만들어진다. 전하를 흔든다는 것은 전하의 속도를 변화시킨다는 (가속시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가속하는 전하는 전자기파(빛)를 발생시킨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하가 움직이는 속도가 변하면 전자기파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전하의 가속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빛의 생성 원리를 살펴보자. 가장 단순한 원자인 수소는 핵과 하나의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소 원자 속에 있는 전자의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값이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띄엄띄엄한 값들만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수소원자 내 전자가 에너지를 얻어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높은 에너지 상태로 변하게 되면, 곧 다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때 전자는 두 상태의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는데, (에너지는 보존돼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빛의 형태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두 방식은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결국 가속하는 전하가 빛을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원자 내에서 전하를 갖고 있는 전자의 에너지가 변한다는 것은 전자가 가속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가속'은 '감속'으로 대체돼도 상관없다. 에너지를 잃고 감속하는 과정에서 빛이 나온다. 오로라 빛은 이와 같이 특정 원자에서 전자가 만들어내는 빛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원자에서 빛이 나오는 과정과 고층대기의 특성에 의해 오로라의 색깔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고자 한다.
*"물질의 물리학" 한정훈 저, 김영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