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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건화 May 26. 2024

한반도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

2024년 5월 10-12일, 초강력 울트라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오로라는 남극이나 북극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5월 11일 강원도 화천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다니!!! 우주과학자로서, 오로라 연구자로서 매우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오로라는 자극을 중심으로 띠모양으로 형성되는 오로라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한반도는 오로라대에서 매우 먼 저위도 지역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매우 어렵다. 아니,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5월 11일에는 우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5월 12일 용인 어린이 천문대와 구리 어린이 천문대 분들이 강원도 화천에서 촬영한 오로라.

과거에도 한반도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던 적이 있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예로, 2003년 10월 30일 새벽 경북 영천 보현산 천문대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다. 당시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원영인 박사팀이 보현산 천문대에서 대기광(airglow) 관측을 위해 전천카메라를 운영 중이었는데, 그때 소위 "할로윈 스톰"이라고 불렸던 우주과학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자기 폭풍 중 하나가 발생했던 것이다. (매년 10월 말에는 할로윈 데이가 있고, 마침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이때쯤 발생했기 때문에 "할로윈 스톰 (the Halloween solar storm)"이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이번에 강원도 화천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다는 것은 2003년 할로윈 스톰과 같은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다는 말일까? 

미국 국립해양대기연구청(NOAA) 우주기상예보센터(SWPC)에서 공개한 2024년 5월 9일 당시 태양흑점 사진과 1859년 캐링턴 지자기 폭풍 당시의 태양 흑점 스케치와의 비교

그렇다. 지난 5월 9-11일쯤 태양 표면에서는 수차례의 강력한 태양폭발이 발생했다. 반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초대형 태양 폭풍이었으며, 이것은 2003년 할로윈 스톰 이후로 지구 주변 우주환경을 크게 뒤흔든 가장 강력한 지자기 폭풍을 일으켰다. 이 지자기 폭풍이 발생하기 수일 전인 5월 8일쯤 태양표면에서는 거대한 흑점 그룹이 관측되었는데, 이 흑점의 크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자기 폭풍을 일으켰던 1859년 캐링턴 태양 폭발 당시의 흑점 크기와 비슷했으며, 지구 크기의 15배가 넘는 거대한 흑점 그룹이었다. 이 흑점 그롭에서 수차례의 강력한 태양 플레어(Solar flare)와 코로나 물질 방출(Coronal Mass Ejection: CME)이 발생했으며, 이들이 지구 근처에 도달하여 지구 자기권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고, 지구 고층대기(90~1000 km)를 크게 교란시켜 자기권 파동, 전리권 플라스마 밀도 교란 등과 함께 강한 오로라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2003년 할로윈 스톰 때는 지자기 폭풍을 일으키는 태양 폭발이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몇 차례 발생했다면, 이번 지자기 폭풍 때는 태양 폭발이 짧은 시간 내에 연쇄적으로 수차례 발생하여 단시간 내에 훨씬 더 큰 지자기 폭풍을 일으켰다.  

미국 NASA 외 유럽 ESA가 공동으로 운영 중인 SOHO(Solar and Heliospheric Observatory)에서 촬영한 태양 폭발 영상 (www.esa.int)


 

미국 국립해양대기연구청(NOAA) 우주기상예보센터(SWPC)에서 제공하는 우주환경지수를 보면, 5월 10일 17:00 UT 경 강력한 태양 폭발과 함께 행성 간 자기장(IMF)의 세기가 크게 증가했고, 태양풍 플라스마 밀도, 온도 및 속도가 크게 증가했다. 즉 강력한 태양풍 충격파가 지구 자기권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때 지상 자기장의 변화 정도를 보여주는 지자기 활동 지수(Kp)가 거의 최댓값(Kp~9)으로 증가했으며, 이 상태가 24시간 이상 지속된 후 서서히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Kp 지수의 크기가 6 이상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평상시에는 0~2 정도에 불과하며,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기껏해야 4~6까지 증가하는 정도이다. 즉, Kp 지수가 8~9까지 증가했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 것이다. 어쨌든 Kp 지수가 이렇게 크게 증가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지구 주변 우주환경과 고층대기에서는 다양한 우주기상 현상들이 발생하게 되지만, 여기서는 오로라의 관점에서만 얘기해 보자.

자극점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오로라 타원체(auroral oval). 지자기 활동 정도가 증가할수록 넓게 확장된다.

극지역에는 오로라가 주로 발생하는 "오로라 타원체(auroral oval)"라고 하는 영역이 있는데 (또는 "오로라대(auroral zone)"라고 하기도 한다), 남북극 자극점(magnetic pole)을 중심으로 위도 65~75도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오로라는 주로 이 영역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지자기 활동 지수 Kp가 증가할수록 오로라의 발생확률이 높아지고, 더 낮은 위도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 5월 지자기 폭풍 때 이 오로라 타원체는 미국의 경우 중부지역까지 확장되었다. 더구나 오로라는 90~500 km 고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오로라 타원체 밖에 있는 지역에서도 극지역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지평선 부근 멀리에서 오로라의 윗부분이 보이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는 훨씬 저위도 지역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이번 지자기 폭풍 때 오로라 타원체가 크게 확장되어 자기적으로 저위도에 속한 한반도 지역에서까지 오로라가 관측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지난 2003년에 보현산에서 관측되었던 오로라는 붉은색뿐이었지만, 이번에 강원도 화천에서 관측된 오로라는 붉은색뿐만 아니라 초록색까지 관측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이번 지자기 폭풍 때 오로라 타원체가 2003년 때보다 더 낮은 저위도지역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90-150 km 고도) 나타나는 초록색 오로라는 오로라대 바깥에서는 관측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에서(~250-500 km 고도) 나타나는 붉은색 오로라의 경우는 오로라대 밖 저위도 지역에서도 관측이 훨씬 용이하다. 

남극 자남극 주위로 형성된 오로라 타원체와 오로라대 그리고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의 위치

자, 그러면 이렇게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남극기지에서는 어떤 모습의 오로라가 관측되었을까? 우선 오로라대 근처에 있는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공유한다. 극지연구소에서는 2008년부터 남극 장보과학기지에서 오로라 관측을 수행해 오고 있다. 아래 영상은 오로라 전천카메라를 통해서 촬영된 이미지를 이용해서 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장보고기지에서 촬영된 오로라 이미지들과 비교해서, 이번 지자기 폭풍 때 발생한 오로라는 훨씬 다양한 형태와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이번 지자기 폭풍이 이전과는 크게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5월 11일 오로라 폭풍 때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촬영된 오로라. 장보고기지 본관동 뒤쪽으로 다채로운 색깔의 오로라가 보인다. (출처: 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대 제공)
오로라의 색깔이 매우 다양해서 붉은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등의 오로라가 촬영되었다. (출처: 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대 제공)
2024년 5월 11일(05:30-20:30UT)에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오로라 전천카메라에서 촬영된 오로라 영상 (출처: 극지연구소 우주과학팀 제공)

또 다른 남극기지인 세종과학기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종기지의 위치는 남극점을 중심으로 자극점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비록 남극이지만 지자기적으로는 중위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세종기지에서는 보통 오로라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지자기 폭풍 때는 세종기지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되었다! 사실 세종기지는 오로라 관측에는 매우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다. 지자기적으로 낮은 위도에 있기도 하지만, 특히 흐린 날이 많아 오로라 관측에 매우 불리하다. 더구나 세종기지에서는 오로라가 발생한다고 하더라고 남쪽 방향의 지평선 부근에서 나타날 텐데, 세종기지 남쪽은 바다 쪽과는 반대 방향인 산악 지역이어서 지평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오로라가 지평선 쪽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워낙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하늘에서 오로라가 나타나 세종기지 남쪽 산 너머로 빨간색 오로라가 관측되었던 것이다. 사진에서는 빨간색 오로라만 보이고 있지만, 초록색 파장대의 필터를 이용해서 고감도로 촬영된 전천카메라 영상을 보면 아래쪽(남쪽)에서 초록색 오로라도 관측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4년 5월 13일 지자기 폭풍이 끝날 무렵 세종기지 남쪽 하늘에서도 빨간색 오로라가 나타났다! (출처: 남극 세종과학기지 제37차 월동연구대 제공)
남극 세종과학기지 전천카메라에서 촬영된 오로라. 초록색 파장(557.7nm) 필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흑백으로 보인다. (출처: 극지연구소 우주과학팀 제공)

유튜브나 구글 검색을 해보시면 이번 슈퍼 지자기 폭풍 때 세계 각지에서 관측된 오로라 사진을 보실 수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오로라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아주 인상적인 오로라 사진을 공유한다.

5월 10일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촬영된 오로라 (Image Credit & Copyright: Xuecheng Liu & Yuxuan Liu)

이 블로그를 통해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고 있는데, 더 많은 오로라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은 여기를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앞으로도 이 블로그를 통해 오로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기들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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