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주연 영화 '거미집' 리뷰
송강호 주연,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이 검열이 극심하던 유신시대 영화감독의 고뇌를 그려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 이리저리 얽힌 문제상황들이 서서히 극 중 인물들을 조여 온다.
오는 27일 공개되는 '거미집'이 베일을 벗었다. 김지운 감독이 선보이는 5년 만의 신작으로 칸이 사랑하는 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다. 덕분에 올해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화제작이다.
◆ 검열과 예술 사이, 고뇌하는 감독과 혼돈의 촬영장
'거미집'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다 찍은 영화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출연진인 호세(오정세)와 민자(임수정), 유림(정수정) 등은 감독을 미심쩍어하면서도 연기에 열중하지만 영화 안팎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화사 대표인 백사장(장영남)의 조카 미도(전여빈)만이 김감독을 따르며 의욕을 불태운다.
송강호는 감독으로서의 천재성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김감독으로 열연한다. 머릿속에 그림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재촬영을 밀어붙일 배짱은 부족하다. 미도의 부추김으로 문공부의 검열을 무릅쓰고 재촬영을 하게 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설정으로 모두의 의심을 산다. 그럼에도 자신의 결말을 밀고 나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절실함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호세 역의 오정세는 이 영화의 코미디를 책임진다. 여성편력이 심한 인기배우 설정이 꽤나 잘 어울린다. 유림을 연기한 정수정은 속물적이면서도 가장 입체적인 인물로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광기에 찬 김감독의 추종자 미도 역의 전여빈은 극 중 촬영장과 이 영화 전체의 트러블메이커다. 민자 역 임수정의 옛날 영화대사 말투와 연기, 시선처리도 인상적이다.
◆ 컬트적인 요소가 가득한 영화…대중성에는 물음표
극중극인 김감독의 영화 '거미집'이 그렇듯, 이 영화에는 컬트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송강호가 중얼대듯 읊조리는 대사들은 찰진 말맛과 함께 잠시 피식할 만한 웃음 포인트가 된다. 호세와 유림, 김감독이 처하는 '웃픈' 상황이 반복되거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물 간의 관계, 에피소드들의 구성이 이 영화의 제목처럼 모두를 거미집으로 이끄는 듯하다.
김감독은 검열을 피해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다고 하지만, 지금의 관객들에겐 클리셰와 막장이 범벅된 황당한 결말일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간 예술의 의미와 검열을 뛰어넘는 맹목적인 광기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당시의 대중문화 검열의 실체를 폭로하면서도, 사실은 예술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 내면의 욕구와 닿아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