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by Family : 첫 번째 가족 '일호선'
아주대학교 삼거리를 들어가다 보면 좁은 골목 하나가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그 좁은 골목이 북적거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큰 화환부터, 손 때가 묻은 선물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까지. 야심한 늦은 밤 골목에서는 돌잔치가 열렸습니다. 많은 매장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있는 요즘, 1년 사이에 수많은 손님들이 ‘단골’이 된 한 막걸리 집의 돌잔치였습니다. 한 가게의 1주년을 축하해주러 오는 '단골손님'부터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직원들'의 모습까지, 그 모두가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벨 하나 없이 한 번 더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다음번에 오면 단 번에 알아보는 정성을 내어주는 공간. 그 공간을 꾸려 나가고 있는 가족을 만나보았습니다. 콤마가 만난 첫 가족은 '일호선'입니다.
마감 시간이 지난 새벽 2시, 땀에 흠벅 젖어있는 다섯 분과 편안한 분위기 속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가장 공들인 부분은 이 친구들이에요.
남일 (사장) : 가장 공들인 것은 같이 하는 친구들이에요. 인테리어는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은 바꿀 수 없으니깐요.
처음 사장님과의 사전 미팅 후, 다섯 분과 인터뷰 일정을 조율할 당시, 사장님께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바로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는 않아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취재자의 입장으로서는 조금 난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장님께서 해주신 정중한 부탁은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고됨과 동시에, 항상 웃음으로 손님을 대했던 직원분들에 대한 감사함까지 들게 하였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덕분에 다섯 분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가졌고, 직원분들은 다음 날 있던 사장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서로 보낸 눈짓이 이 깜짝 파티를 위해서였구나 하고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다섯 분의 관계가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돈독한 관계였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건, 아직도 많이 힘들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이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반복되는 일상이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께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기에, 오늘도 손과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함께 고생한 섭이와 “이번 주도 고생했어.”라는 격려로 힘내야 할 이유를 만들어본다. (출처 : 1호선 인스타그램 , @1st_station_)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호선에서 어느 곳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셨냐고 물었을 때 사장님은 '이 친구들이요.'라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라 직원분들도 저희 팀원들도 감탄하며 박수를 쳤던 게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강석아 나랑 장사하자.”라는 말에 5년 동안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걸음에 넘어온 강석씨, 손님으로 왔다가 먼저 일하고 싶다고 얘기 한 지섭씨, 함께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정태씨, 덕현씨까지. 사장님께 이 분들은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들이자,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함께 꾸는 '일호선'이라는 꿈과 서로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원동력 같습니다.
사장님 다음 막걸리 주세요
가끔 SNS를 보다 보면, 쉽고 재미있게 막걸리를 설명하기 위해 작은 수첩과 함께 다섯 분이 모여 앉아 고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곳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으로 인해, 일호선에는 다른 막걸릿집과는 다른 하나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네 어느 술집에서나 우리는 쉽게 "참*슬 한 병이요", "카* 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호선에서 만큼은 이 말이 생소한 말로 여겨집니다. 사실 이 곳에는 "사장님 다음 막걸리 주세요"라는 그들만의 암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말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일호선 가족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라고 합니다. 손님들은 주문을 할 때 안주와 함께 그 날 마실 막걸리의 병 수를 말하고, 직원분들은 가장 잘 맞는 조합의 순서대로 막걸리를 내어줍니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막걸리를 정확한 설명과 함께, 원래 계획했던 양만큼만 마시게 되니 이 곳에선 과음을 하기보단 기분 좋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물론 원하는 막걸리를 선택해서 마실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쌓아왔던 직원들과 손님과의 신뢰 덕분인지, 여전히 "사장님 다음 막걸리 주세요"라는 말은 끊이질 않습니다.
전국 팔도에 지역의 특색이 담겨있는 우리 술을 손님들께 내어드린다는 건 어쩌면 큰 책임감이 따르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막걸리에 대한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들을 목이 쉬도록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 (출처 : 1호선 인스타그램 , @1st_station_)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
덕현 : 저에게 가족이란, 가장 소중한 사람,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 제가 형을 안 좋아하는데 형은 제 가족이니까. 그래서 버릴 수 없는 거 같아요. 소중하다는 게 싫어도 일단 제일 아끼는 거잖아요.
인터뷰의 말미에 드린 “가족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공식 질문에 대해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받은 답이라 그런지 몰라도, 집에 가는 길에 저 말을 한참이나 곱씹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실제로 우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무도 모르게 자리 잡은 부정적인 감정이라 칭하는 질투, 열등감과 같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그 감정을 숨긴다 할지라도, 무심코 뱉은 한 마디가 타인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그 '실망'이 증폭되면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이리만큼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미움을 받게 되면, 누구든 등을 돌릴 수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가족'이라는 덕현씨의 말을 들으며, 사춘기 시절의 모났었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미움’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맛없는 떡볶이 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고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략)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출처 : 어쩌다 떡볶이 , 요조)
인터뷰 중에 덕현씨의 말에서 <어쩌다 떡볶이>의 저자가 삶의 대하는 방식을 느꼈습니다. 큰 기대를 안고 방문한 곳이 맛없는 떡볶이집이라, 실망하고 미웠지만 그래도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과 덕현씨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미운 행동을 해도 애틋한 마음이 생겨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1호선이 기대됩니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평소와 다르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손님들이 때때로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게 되는 날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절제시켜주고, 또 다음에 방문하면 진정으로 반겨주려고 한다는 그들의 말에서, 덕현씨가 무심코 내뱉었던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일호선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가족 같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피를 나누는 사람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
남일 : 손님도 가족인 것 같아요. 한 분 당,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신다고 생각하면, 삼주에 두 번 정도 오셔도 제가 못해도 한 달에 3~4번 보는 거잖아요. 제가 저희 형을 한 달에 3~4번을 못 봐요. 진짜 피를 나눈 사람들보다 더 많이 보는 거잖아요.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가족이라는 의미를 직원들만의 것이 아니라. 직원과 직원도, 어쩌면 손님과 직원도 가족일 수 있고.
덕현씨에 이어 사장님에게 ‘손님은 가족'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손님을 따뜻하게 대하라’와 같은 클리셰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의미는 '단골손님'에 대한 그들이 내린 하나의 정의와도 같았습니다.
'단골손님', '단골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정감이 듭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와 배달음식이 주식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삶에서, "내가 잘 아는 곳 있어. 거기로 가자"라고 말하여 단골집으로 걸어가는 걸음은 이제 추억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풍이 부는 날에도, 코로나 19로 인해 상권이 마비될 때에도, 일호선에는 여전히 '단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본 계산대 옆 벽 한 켠엔 손님들의 쪽지가 가득했습니다. 개업 1주년에 받은 편지, 연말 인사를 하는 편지, 평범한 날 쓴 쪽지까지, 그 속에서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은 투박한 진심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엽서이든, 테이블에 놓여있는 티슈에 끄적인 쪽지이든, 모든 진심이 가게 한 켠에 놓여있는 것을 바라보다, 작지만 견고한 진심들을 귀하게 여기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단골 손님분들께서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많이 방문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를 대신해서 일호선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막걸리 설명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천도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많이 부족했지만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출처 : 1호선 인스타그램 , @1st_station_)
일호선은 그런 공간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이기도,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끝에서 고된 몸을 이끌고 늘 먹던 음식과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일호선은 모두의 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행 중 생각이 났다며 그림 하나를 선물하기도 하고, 함께 좋은 날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듯, 좁은 골목에선 모두가 가족이 되길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일호선 가족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본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인터뷰와 사진은 12월 공개되는 매거진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