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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an 17. 2022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증후군'에 대한 증후군

아이를 키우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엄마'를 처음 수행해내면서 말 그대로 잘하고 싶은 욕심, 아니면 최소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자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한다. 이렇게 생겨난 온라인 상의 모임이 맘카페라 생각한다. 현재 '맘카페'는 특정 이슈에 있어서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의 알레고리가 된 듯 보이지만...


필자 역시 임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나 태교를 위한 다양한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안전에 유난을 떨었기에 말 못 하는 신생아의 신체를 살피거나 표정이나 울음, 먹는 정도 등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꼬물거리는 아기도 인격체이기에 욕구가 발생할 것이고, 이를 분출하지 않을 경우 자신만의 방식으로 히스테리를 마구 뿜을 것이라 스스로 유추하고는 최대한 억누름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있다. 점점 시간이 흘러 스스로 앉았을 때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이 놀란 녀석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오감놀이, 소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한 다양한 놀잇감을 매일같이 녀석 앞에 대령했다. 유사한 시기에 출산한 후배도 종종 놀러 와 좁은 거실에 잔뜩 난장을 피웠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후배는 "언니, 토리는 눈도 맞추고, 잘 웃는다."라고 말하면서 본인의 아들은 눈 맞추기를 싫어하고 엄마가 노래를 하면 더 싫어한다고 속상해했다. 후배는 보컬 출신으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아마도 소리의 진동이 나와는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는 예민한 청각이니 반응도 유난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했었다. 


당시는 누가 더 빨리 일어서고, 누가 이유식을 잘 먹으며,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지, 밤에 잠을 잘 자는지 등등이 엄마의 역할을 잘 수행하며 자식과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뿌듯함을 자랑하는 소재였다. 조금 더 자라니 이제는 정보가 서서히 독이 되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 산만하게 움직이는 아이, 특정 장난감만 고집하는 아이, 잠을 안 자고, 소리를 지르며 오래도록 울고, 엄마와의 애착이 유난하거나, 어린이집에서의 또래와의 교감이 어렵거나 등등이 모두 일종의 증후군으로 둔갑되었다. 증후군의 홍수시대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조금 남다른 행동들은 일종의 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치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정도에 따라 당연히 의사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내가 지금 말하는 부분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며 아이의 개성이나 고집, 성격을 모두 치료의 대상으로만 구분해서 아이를 잠정적인 환자로 치부해버리는 오류를 꼬집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도 있다. 본인의 아이가 눈 맞춤을 잘하지 않고, 대근육의 발달이 토리보다 느리다고 걱정했던 후배의 아이는 이후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나 역시 예민했던 과거보다 더 예민하게 토리를 관찰하기 시작했으며, 조금만 짜증을 내면 걱정이 앞섰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누워버린 그 순간 하지 않던 짜증을 부리는 녀석이 혹시나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동시에 오은영 박사의 대처법 사이에서 갈등했다. 물론 신랑과 난 오박사님의 방식을 따랐고, 이후 아이는 절대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초2를 눈앞에 두고 있는 녀석은 또래보다 이를 빨리 갈았다. 키도 제일 크고, 생각도 유난히 성숙하다. 아이의 성숙함이나 사려 깊은 성격은 그다지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책에서 또 전문가들이 언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도 걱정이고, 반면에 그래서 난 상대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편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혹시...' 하는 속 마음은 감추기 어렵다. 코피를 자주 쏟아 이런저런 초기 증상이 아닐지 걱정이고, 10시간 이상 숙면을 하는 녀석이 늘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어떤 병이나 무슨무슨 증후군은 아닐지 여러모로 걱정이 앞선다. 


과연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끌어모은 다양한 정보가 정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의 양분이 되는지 늘 의문이다. 그럼에도 보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다. 이 박쥐 같은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늘 그렇듯 엄마의 심력이 좌우하는 듯 여겨진다. 내가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 이정도로 허덕이지는 않을텐데... 담담하게 잘 지내주는 녀석을 보며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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