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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Jun 05. 2023

눈 앞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싫어

'나의 해방일지'에서

계속되는 꿀꿀함과 무기력에 뒹굴대다 회사 전체가 쉬는 금요일, 기분 전환하려고 수영장을 찾았다. 집 근처에 멤버십 없이 일회성으로 입장할 수 있는 수영장은 걸어서 30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어 수영복, 타올, 속옷, 세면도구 등을 챙겨 슬슬 걸어갔다. 평일이니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애매한 11시쯤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수영장으로 이어지는 공간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 수업 전용 수영장인 Teaching pool이 있어 자유 수영을 하는 곳은 조용했다. 총 8개 레인이 있었고 수영 실력에 따라 slow, medium, fast로 구분해 놓았고 레인별로 도는 방향도 표시되어 있었다. 레인마다 한 명 또는 두 명이 수영을 하고 있어서 그 중 한 명이 있는 레인에 몸을 담궜다. 슬슬 준비하고 있는데 먼저 헤엄을 치고 있던 여성 분이 말을 걸었다. "Happy to split the lane(레인 반으로 나눠 쓸래요)?" 원래는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돌도록 되어 있는데 그냥 반으로 쪼개서 각자 알아서 왔다갔다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지 뭐.


그렇게 레인의 반쪽을 왔다갔다 몇 번 하고 나니 옆 레인에 있던 사람이 나가는 게 보여 얼른 옆 레인으로 옮겼다. 아싸 이제 통으로 내 꺼다.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아저씨가 내가 있는 레인으로 들어왔다. 딱 한 사람이 더 생긴 거라 복닥거린다고 하기엔 간격이 충분했고, 딱히 거슬리게 행동하는 아저씨도 아니었지만 혼자 레인을 쓰던 때보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레인의 끝에 오고 나면 아저씨가 어디쯤 있나 살피고 다시 출발하기를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니 맨 끝 fast 레인이 비었다. 혹시 이 아저씨가 옮기려나 생각하며 일단 수영을 계속했는데 나가지 않더라. 잠시 후 비슷하게 레인 끝에 도착한 순간 아저씨에게 말했다. 


나: You know that lane over there is empty? (저 레인 비었는데 아세요?) 
아저씨: Yes, but I'm not so fast. (아는데 난 별로 빠르지 않아서..)
나: You're defenitely faster than me. Just asking as I don't want to get in your way. (저보단 빠르시니까요. 제가 걸리적거릴까봐요.)
아저씨: I'm alright. Unless you're not comfortable. (난 괜찮은데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한가요?)


사실 옮겨줬으면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낸 거였지만, 너무나 상냥하게 자긴 괜찮다고, 혹시 자기 때문에 불편하냐고 확인하는 아저씨에게 그래 불편하니 옮겨주겠니? 라고 할 순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괜찮다고, 어차피 몇 바퀴만 더 돌고 나갈 거라고 하니, 나 때문에 가는 건 아니지 재차 확인하는 스윗한 아저씨였다.


반성했다. 아니 수영장을 전세낸 것도 아니고, 사실 레인에 한두 명 있는 건 정말 양반인 건데 그것도 거슬려 하는 나란 인간. 


괜찮을 땐 괜찮은데 싫을 때는 눈 앞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싫어. 눈 앞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인데 들어줘야 되고 나도 쓸데없는 말 해내야 되고. 무슨 말 해야 되나 생각해내야 되는 것 자체가 곤욕이야.

사람들 많은 데서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 커피숍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도 거슬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만 있는데.
                                                                                                          <나의 해방일지> 중에서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것. 여전히 아저씨가 어디쯤 있는지는 신경을 썼지만(안전한 수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 더 이상 거슬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래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아파트 이웃과 안면을 트고 소통을 하는 게 층간 소음의 괴로움을 줄일 수 있다고 하나보다. 지금 쿵쿵 거리며 뛰는 윗집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귀엽게 인사하는 그 아이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더 참을 수 있을테니. 그런 점에서 익명성의 현대 도시생활은 참 너그러워지기 힘든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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