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토끼 Jun 25. 2023

인생에도 출구가 있다

살아오면서 회사를 다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던 내가 얼떨결에 취직을 하게 됐을 때 '재미없어지면 그만둬야지'라는 마음으로 다녔다. 직장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하는 배부른 소리인 것도 맞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다독임이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언제든지 사표를 던지면 된다는, 스스로에게 미리 전하는 '괜찮아'.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행히 그런 마음이 들었던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이런 마인드가 분명 도움이 됐다.


문제는 인생이다. 나는 종종 내 매니저에게 "I just want to work. Can someone live my life for me? (나 그냥 일만 하고 싶어.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면 안 되나?)"라는 십프로만 농담인 멘트를 던지곤 할 정도로 일이 제일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의 성인 버전이려나.) 일은 어느 정도 틀이 정해져 있고 발생하는 문제도, 져야 하는 책임도 한정적이다. 물론 같이 일하는 사람에 따라 말도 안 되는 일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다행히 일로 엮인 사람은 어느 정도 끊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말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면 퇴사하면 된다는 최후의 수단이 있다. 그럼, 인생은?


인생은 그렇지 않아서 힘들었다. 내 인생은 온전히 내 책임이고,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업체를 구해 아웃소싱할 수도 없다. 아니, 있구나. 그래서 내가 개인 트레이너와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많이 의지했구나.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아웃소싱했지.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점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회사에서 만나는 또라이는 퇴사하면 평생 안 볼 수 있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떨쳐내나.


그런데 인생에도 출구가 있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을 뿐. 노력하는 데 지치고 애써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다 '그래,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만 살아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당장 실행에 옮길 것도 아니고 (자살 충동이나 시도를 했던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지독하게 힘들면 소중한 사람들을 헤아릴 여유도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한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 감당하기 힘든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그 프로젝트 데드라인이 있다고 전해들은 느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나는 거니까.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건데, 남은 날들이 난 왜 그렇게 막막했던 걸까. 



작가의 이전글 넌 내가 죽었다는 걸 알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