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싸움을 하지 않는 투견, 메리]
사각 링 위에 투견 핏불 테리어 두 마리가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피는 일방적으로 물어 뜯기고 있는 메리의 피였다. 두 마리의 호흡이 거칠어 질때마다 나오는 입김은 얼마나 추운지 말해주고 있었고, 링 주변에서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대는 투견꾼 아저씨들의 담배만이 그 온도를 그나마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다. 피비린내, 개들 대소변, 비린내, 담배 연기 등이 섞여서 정말 오묘한 잡내들이 링 주위를 휘감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메리의 피냄새가 제일 강하게 느껴졌고 섬뜩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개가 개를 정말 쎄게 물면, 피는 흐르는게 아니라 뿜어져 나온다. 뿜어져 나온 피는 그 모습 그대로 바로 얼기 시작했고, 메리의 가슴 쪽 흰 점은 금방 굳어서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메리야!" 메리는 쟈크에게 물어뜯기며, 시선은 나를 고정하고 있었다. 나의 울부짖음은 투견판에선 정말 어색한 동정이였다. 이 모습은 이따금씩 장면 하나 틀리지 않고 꿈에 나와 새벽에 나를 깨운다.
메리를 내가 만난 시작은 개를 더 보고 싶다는 인터넷 검색이 전부였다. 방학만 되면 산, 바다, 들이 펼쳐지는 진도에서 진돗개들과 자연을 놀이터삼아 돌아다녔다. 그 방학만 기다리기엔 학교 다니는 시간들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고, 방학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면 밤을 세울 정도로 아까웠다. 그 시간을 대신해주기 위해 나는 동네 사거리에 있는 한우리 PC방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게임을 하러 갔지만, 나는 개를 보러 갔다. 2000년대 초반쯤부터 인터넷에선 개에 대한 사이트와 카페들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모니터 속은 내 세상이였다. 아름다운 진도의 자연환경과 대비되는 지하 쾌쾌한 냄새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하는 아저씨들의 담배 쩌든 냄새가 혼합된 PC방이였다.
하지만, 그 냄새가 잊혀지고 개에 몰입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진돗개 사이트를 자주 들어가곤 했는데, 그 곳에선 자신의 진돗개 사진도 올리고 다른 사람 진돗개 사진에 "예쁘네요, 멋지네요" 같은 댓글보단 항상 싸움이 많았다. 특히 항상 2가지의 주제는 탕수육 소스를 찍어먹냐, 부어먹냐처럼 끝없고 의미 없어보였다. 첫번째, 순종 진돗개에 대한 것이였다. 저마다 꼬리는 말려야 된다는둥, 머리는 역삼각형으로 생겨야 된다는둥, 각자 말하는 진돗개가 달랐다. 그중에 몇명은 논문을 쓰다시피 글을 쓰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진돗개 순종은 한국스럽게 생겨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던 아저씨가 회원 사진방에 자기 얼굴을 올렸는데, 한국인 같이 안 생겨서 피시방에서 혼자 피식했다. 두번째, 진돗개의 싸움 실력에 대한 것이였다. 특히 아키다, 기쥬, 차우차우, 세퍼트, 핏불테리어 같은 외국 견종과 견주며 진돗개의 싸움 실력에 대해 싸웠다. 이 두 주제로 불철주야 싸우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반에서 틈만 나면 수업시간에도 만화를 그리는 동현이보고 "그런 노력이면 서울대를 갔을텐데"하던 담임 선생님 말이 생각났다.
그 주제들이 끝 없어지는 이유는 나도 그 떡밥을 물고서야 알았다. "싸움? 우리 백구만큼 할까?" 어릴 적 우리 외가에 있던 백구는 절대 먼저 싸움을 걸지 않았지만, 싸움이 들어오면 한번도 지지 않았다. 자기 체구에 2배는 되보이는 개들도 엎어치고 구석에 몰아넣으면 꼬리를 상대 개들이 꼬리를 잔뜩 말았다. 맞고 오는거보단 싸움 잘하는게 낫다라는 어른들 말도 생각났다. 어릴 땐 TV에 나오는 세계 격투기 챔피언 효도르보다 동네에서 내 눈앞에서 원펀치로 민수형을 쓰러뜨리는 성진이형이 제일 쎄보였다. 마찬가지로, 내심 나는 우리 백구만큼 싸움 잘하는 개는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을 때였다. 그 논쟁에서도 핏불은 싸움의 신처럼 취급 받고 있었다. "진돗개는 핏불 테리어한테 침도 못 바릅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진돗개는 죽어요 죽어" 같은 댓글을 보고 왠지 기분이 상했다. 그 기분 상함은 궁금증으로 바뀌었고, "하 참, 대체 어떤 개길래 그래?" 하며 핏불 테리어 사이트와 카페를 들어갔다.
올림픽, 월드컵처럼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 선수가 이겼으면 마음이 크다. 하지만, 막상 체질부터 달라보이는 외국 선수들이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인정하기 싫지만, 차원이 다르다는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핏불 사이트에 처음 들어간 순간 그랬다. 온 몸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탄탄한 근육질에 단단해보이는 머리와 입, 깊숙하고 날카로운 눈매, 자신감에 넘쳐보이는 자세. 거기다 올라와 있는 투견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평균 15-20분. 길게는 1시간 가까이 치고 받는 영상은 생명이 아니라 기계 수준의 싸움 실력이였다. 그 날 PC방에서 나는 진돗개 사이트에서 왜 그런 글들이 올라왔는지 대번에 이해 됐다.
나는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진돗개라는 검색 대신 핏불 테리어를 어느새 보고 있었다. 왠지 미웠던 핏불 테리어는 실제로 봐야겠다는 호기심으로 어느새 바뀌었다. 당시 핏불 테리어 카페에는 지역방이 있었고, 나는 겁도 없이 수원에 사는 중학생인데 핏불 테리어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닉네임에 수원이 들어간 분들을 찾아 채팅을 걸어 구경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수원 광교산에 핏불 테리어를 여러마리 기르는 내사랑뽕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형이 계셨다. 몇 번 대화도 안나눴는데 인터넷으로 형은 자기를 뽕이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어감이 좀 이상했지만 그렇게 불렀다. 수원에 살면 13번 버스를 타고 과수원집 앞에서 내리라고 했다. 우리 집 바로 앞에서 버스 한번에 20분 정도면 내릴 수 있는 곳에 핏불 테리어 농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과수원 정류장에서 내리니 180은 훨씬 넘어보이는 덩치에 항상 야구구단 모자를 쓰는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닉네임 내사랑뽕이를 쓰는 형이 있었다. 처음 보자마자 "너 진짜 개에 미친놈이구나 대단하다 반가워"였다. 농장은 정류장 바로 옆에 과수원 푯말이 있는 곳에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서 열쇠를 돌리기 전에 형이 나를 슥보더니 "조심해 물 수 있어" 라는 농담 같지만 진담도 섞인듯한 말을 하고 열쇠를 돌렸다. 그 곳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있었다.
그 곳엔 핏불 테리어들의 힘을 증명이라고 하듯 생전 처음 보는 엄청 굵은 쇠사슬로 묶여진 핏불 테리어들 열댓마리가 농장에 있었다. 뽕이형은 내심 내가 무서워 할 줄 알았는지, 차분하게 개들과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고 겁도 없다며 놀랬다. "투견일수록 사람한테 순해야돼. 이빨을 함부로 쓰는 개는 절대 투견으로 못써" 라며 핏불들은 대부분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천천히 쓰다듬어 보는데 생전 처음 만져보는 감촉이였다. 분명 같은 개라는 동물인데, 유연한 근육과 굉장히 강한 뼈의 감촉이 나를 압도했다. 몸만 만져봐도 싸움을 잘 할 수 밖에 없는 개구나 느껴진 것이다. 그 농장엔 이제 갓 2달 된 핏불 강아지도 있었는데, 2달 강아지가 운동을 엄청 열심히 시킨 근육질 말티즈 몸이였다. 재밌는거 보여준다며 한참 투견 경기를 위해 관리중이라는 다크라는 짙은 호피무늬 외형의 핏불의 목줄을 끌러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뒷마당에 커다란 소나무 위에 축구공을 매달아 놨는데, "물어!" 하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기 키만큼 뛰어서 축구공을 물고 무는 힘과 목 힘만으로 체중을 견디며 흔들어댔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고 다크는 10분을 축구공을 놓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진돗개가 핏불 이긴다는 사람은 실제로 못 본 사람들이네..." 농장 구경을 하고 인근 보리밥 집에서 뽕이형이 밥을 사주셨다. 자신도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했고, 지금은 핏불만 가장 좋다고 했다. "개 좋아하는건 이해하는데, 앞으론 여기 오지말고 핏불 보러 다니지마 알았지?" 하며 13번 버스에 나를 태워 처음이자 마지막인거처럼 보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색하게 3년을 핏불 판을 다니게 됐다.
개를 여전히 좋아했다. 아니, 미쳐있었다. 진도도 매번 방학 때 마다 갔고 길을 가다 만나는 개들이나 길을 잃은 개들에 대해서도 난 여전히 몸을 낮춰 다가갔다. 핏불 테리어 말고도 수 많은 동호회에 가입해서 개들을 보러 다니고 책을 사서 모아서 개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사이에 핏불이 좋아졌고, 핏불의 상징이였던 투견에도 빠졌다. 나는 그곳에서 투견이 나쁜 것이란 생각을 점점 하지 못했다. 지금은 투견이라면 뉴스에 난리가 나겠지만, 그 당시엔 심장병 아동 돕기배 투견 대회가 열리고, 국내 최대 애견 행사에서 멧돼지와 싸움을 붙였다. 한강 뚝섬 유원지 한켠에서 가벼운 투견 테스트도 하고, 맥주 한캔 하는 정모, 번개도 했다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당시의 문화가 그랬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투견 카페에서는 "2년반 18kg 입뽕 구합니다" 같은 글이 줄기차게 올라왔다. 2년반에 18kg되는 핏불과 같은 체중의 첫 테스트를 구한다는 글이였다. 핏불 투견 카페들은 회원이 수만명은 됐으며 전국 정모를 열면 사전에 체중과 경력을 조사해서 격투기 경기처럼 대진표를 공지한다. 그럼 정모 날 모여서 링을 설치하고, 정확한 체중을 재서 계체량을 한다. 링에선 두 마리가 격렬히 싸우고, 룰도 있고 심판도 있다.
그 옆에서 삼겹살, 육개장등을 먹으며 서로 대화도 나누고 단체 사진도 찍는것이 그 당시엔 그 속에서 당연해보였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싸우기 위해 최적의 외형과 성격으로 혈통 고정을 시킨 개들이다보니, 싸움을 즐긴다라는 주장이 많았다. 실제로 핏불 테리어들은 어릴 땐 투견과 거리가 전혀 멀어보이다가도, 늦어도 2년쯤되면 행동이 달라지고 싸움에 눈을 뜬다. 이 때 눈빛이 달라지는데, 투견꾼들은 이걸 보고 '눈에 피를 머금는다'라고 표현한다. 눈에서 집중력과 살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때부턴 싸움에 대한 중독과 쾌락을 즐기는듯한 개들이 많다. 뇌에서 싸움이란 것이 핏불들에겐 끊을 수 없는 도파민인것이다. 일반적으로 개들이 가진 이유가 있고 항복을 인정하기도 하는 싸움이 아니라, 개가 보이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뇌를 가졌다. 오죽하면 핏불 테리어들 상당수는 자연교배가 되지 않는다. 발정기가 된 암컷도 수컷을 보고 싸우고, 수컷도 발정기가 된 암컷을 보고 물어 죽이기도 한다. 그 당시엔 그렇게 태어났으니 싸움을 해야 한다는 말들이였지만, 동물의 가장 중요 본능 중 하나인 성욕까지 이겨버리는 정말 인간의 잔인한 번식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에 청도 소싸움이 민족 행사이듯 투견도 정식 합법화가 되려면 서명운동에 수천명이 서명까지 했으니 그 어린 당시 나에게 투견은 지금의 장애물 경기, 원반 놀이처럼 개와 함께 하는 스포츠처럼 생각되곤 했다.
투견은 그냥 아무 핏불이나 하는게 아니라, 권투 선수 육성과 흡사하게 체계적이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었다. 이 투견을 오래 한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좋은 투견을 골라내는 눈이 무서울 정도로 발달 되있다. 다 똑같아 보여도 특히 눈을 보고 "눈에 욕심이 있네, 요거 키워 올려" 하면 같은 형제에 비해 그 개는 싸움을 잘한다. 그리고 그 개가 싸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만큼 컨디션에 맞는 영양 관리와 체력 관리를 한다. 그런 사람들을 '꾼'이라고 한다. 처음 진돗개를 이기는 개가 어떤 개인지 보자하고 13번 버스를 탔던 어린 청년은 쪽지로 투견 강아지 선택 방법과 관리 비법을 수십통씩 질문 받는 꾼이 되있었다. 그 때 내 나이는 18살이였다. 투견의 시합이 잡히면, 나는 일정에 맞춰서 영양, 체력, 훈련등을 도왔다. 내가 관리한 개들이 시합에서 이길 때면 마치 대단한 능력이라고 인정 받는듯 했다. 여러 투견 농장 아저씨들도 알게 되서 농장에 가보면, 개들이 자주 바뀌어 있었다. 싸움을 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투견으로 태어난 삶의 운명들이었다. 그 슬픔이 다 없어졌다곤 못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시간은 짧아지고 희미해졌다. "사람도 치열하고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하는데" 라는 투견꾼 아저씨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그런 운명에 무뎌져가고 있었다.
금요일 학교에서였다. 주말이니 과수원 투견 농장에 갈 생각에 설레어 있던 참이였다. "민혁아, 개 하나 들어왔는데 싸움 좀 할라나 모르겠다. 와서 좀 봐봐" 여기 오지말라던 형은 어느새 나의 감각을 믿고 있었다. 토요일, 나는 13번을 타고 과수원에 있는 농장으로 향했다. 유달리 까매서 까맣다 못해 푸르스름한 모습에 눈은 꾼들 말로 먹눈이라고 하는 까만 눈, 긴 다리, 가슴팍에는 흰 점이 있고 체형이 늘씬하고 우아했다. 3년쯤 된 암컷 까만 핏불. 미국에서 수입 된 좋은 혈통의 개인데, 전견주 아내가 갖다버리라고 해서 분양글 올라온 개를 바로 입양해왔다는 것이다. 투견이라고 모두 투박하진 않지만, 눈을 보니, 투견의 눈들은 적갈색에 삼각형을 지니고 무언가 꽉 차고 집중력있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동그라니 참 착한 눈이였다. 앉아서 손등을 갖다대니 꼬리도 참 애교있게 쳐댔다. "형, 안되지 싶은데요. 싸움개 눈이 아니네요" "그래? 근데 생긴거 이뻐서 한번 관리 시켜서 올려나 보게. 입도 안따봤대. 아님 깔통으로 까지 뭐" "형 그냥 가정견으로 키울 사람한테 보내요" "아냐, 한번 입은 따보고 하게" 형은 입은 따본다는 말처럼 우선 싸움 능력을 테스트 해보고 다른데로 보내거나 키우거나 한다고 했다. 외모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미국의 핏불 테리어중에 로즈마리라고 하는 까만색에 가슴에 흰 점이 있는 유명한 투견이 있었다. 그 이름을 따서 비슷하게 메리라고 부르기로 형은 정했다.
내 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못 말렸지만, 나는 그 개가 싸움을 못하면 가정이 아니라 보신탕집으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말리다간 "이 새끼 꾼이 잔정이 이렇게 많아?" 소리 들을까봐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괜스레 다른것으로 둘러댔다. 싸움을 못한다는 이유로 소위 말하는 보신탕집으로 간 핏불들을 수도 없이 봤지만, 이상하게 메리에게 마음이 갔다. 3달 후에 메리를 입뽕 테스트를 보겠다고 했다. 싸움을 할지 안할지, 보신탕집에 보낼지 말지 테스트를 본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참 하기 싫은 메리의 관리를 맡았다. 나는 메리에게 정을 줄 것이란 것을 시작도 전에 알고 있었으니까. 메리는 순해보이는 외모지만, 우직하고 성실했다. 운동을 하면 체력이 다 받춰주었고, 근육도 잘 붙었다. 나를 보면 좋아해서 꼬리를 흔들지만 흙묻은 발을 한번도 내 옷에 묻히지 않고 차분히 앉아서 애교를 부렸다. 내가 수년간 보아온 촉으로 도무지 싸움을 할 것 같진 않았다. 당시 핏불 카페엔 핏불 투견에 관한 미국 원서 번역본이 공유 됐는데, "콜드독"이라고 하는 평생 싸움을 하지 않는 개들이 수천마리중에 한마리 나온다는 글을 보게 됐다. 나는 메리가 콜드독임을 링에 올려보지 않아도 왠지 느끼고 있었다.
부드러웠던 몸들에 근육으로 각이 적절히 생기고, 눈에 생기가 돌고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이 3개월의 땀을 느끼게 해줬다. 링에 오를 관리 상태가 된 것이다. 차 뒷자석에 나와 메리가 앉았다. 메리는 어딘가로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내 몸에 기대었다. 테스트를 할 시흥에 있는 한 투견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으로 향하는 내내 들었던 이별 노래들이 왠지 메리와 내 얘기처럼 이상하게 들렸다. 고물상이라는 표지판을 따라서도 10분 정도 들어가면, 안을 못보게 높은 철벽으로 만든 투견 농장이 나온다. 그 앞에서 뽕이형이 전화를 하니, 백발에 장발로 머리를 기르고, 스즈끼 오토바이 작업복을 입고 까만 피부에 깡마른 아저씨 한 분이 나오셨다. 투견 카페에서 30년동안 핏불 투견을 해온 유명한 전문 꾼 박씨 아저씨였다. 소문에 의하면 투견 도박으로 10억을 넘게 벌어서 숨겨둔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아저씨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자 "니가 민혁이라? 어린 놈이 벌써 그렇게 투견을 잘 알아서 우야노." 하며 웃음을 지으셨는데, 그 이후로 대화 한마디 안나눴다. 많은 투견꾼을 봤지만, 왠지 달갑지 않았다. 뽕이형이 메리를 내리라고 했다. 차에서 메리를 내려서 주변에 우선 대소변을 보게했다. 철벽 너머로 개들 짖는 소리가 들리고 냄새도 강해서 메리가 긴장한 눈치였다. "괜찮아" 하면서 쓰다듬었지만, 내 마음도 안 괜찮으니 메리는 더 긴장했다. 내가 개들 눈을 보고 읽었던거처럼 메리는 내 눈을 보고 읽었다. 박씨 아저씨는 메리를 보더니, "개는 이쁜데 싸움 안하겠는데" 하셨다. 그 말에 놓칠샐라 나는 "맞죠 형? 얘 안되니까 그냥 오늘은 입보지 말고, 가정견으로 보내요." 라고 말을 가로챘다. 뽕이형은 굽히지 않고 그래도 테스트를 본다고 했다. "안되면 바로 탕집 보낼거에요." 1년에도 10마리 이상을 보신탕 집으로 보내는 형이 할만한 선택이였다.
철벽 사이로 자물쇠 걸어놓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뜻 보아도 핏불 40-50마리는 될법한 개들이 짖어댄다. 싸움을 오래 해온 개들의 기세는 처음 본 사람들은 위축 당한다. 포악하기보단 그 눈빛이나 느낌에서 분위기가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핏불 농장들은 대게 합사가 안되기 때문에 쇠사슬 뚝에 5M 정도씩 해놓기에 농장들이 넓다. 그 철벽 넘어로는 그 넓은 대지에 핏불들이 짖어대니 또 다른 세계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3년간 핏불 농장들을 다니고 투견을 구경다니며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날은 왠지 그 주변이 다르게 보였다. 무섭고 기괴하며 위축 됐다. 테스트 구경한다며 투견꾼들 아저씨 4명이 줄담배를 피며 계셨다.
어느새 바로 링 근처에 있는 베이지색 핏불의 줄을 끌르더니 목테만 잡은채로 끌고와서 링에 올렸다. "오늘 입 볼 개~" 하면서 흥이 난 목소리로 올린 개의 이름은 쟈크라고 했다. 정식 시합이 아니라, 테스트를 보는 개라며 살도 많이 붙고 관리도 안 된 상태로 보였다. 머리와 입 주변이 두터운 걸 보아 무는 힘이 굉장해보였고, 눈을 보니 싸움을 많이 해본 개다. 움직임 하나 하나에 링을 밥먹듯 올라와서 그런지 여유가 넘쳤다. 링에 올려서 몸을 풀게 하고는 다시 줄을 메고, "그것도 잠깐 올려봐" 하면서 메리를 가르켰다. 나는 짧게나마 메리의 전신을 마사지 해주고 링에 올렸다. 메리는 위축된 채로 꼬리를 치면서 나를 쳐다봤다. 얼른 여기서 꺼내주고 집에 가자는 눈치였다. "완전히 햇개네" 싸움도 모르고 아직 초보를 가르키는 말이였다. 그 옆에서 뽕이형은 그래도 왔으니까 바로 입보자고 했다. "가뿌자. 마!" 하면서 아저씨는 메리를 잡고 링 구석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쟈크를 데리고 올라왔다. 개의 몸을 잡고 링 중앙쯤에서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게 싸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처음 싸우는 투견이어도 알지만, 메리는 쟈크가 왜 자기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지. 여기 왜 와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놔!" 하면서 아저씨는 쟈크의 목줄을 놨고, 나도 메리의 목줄을 놨다. 나와 아저씨는 동시에 링의 상단부를 짚고 올라 링밖으로 나왔다. 내가 뒤돌아보니 이미 메리는 반쯤 몸이 바닥에서 떠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쟈크는 메리에게 달려들어서 아주 능숙하게 메리의 가슴팍을 물었고, 그대로 흔들었는데 그 힘이 얼마나 좋은지 몸이 흔들렸다. 머리에서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근육질을 증명이라도 하듯 물고 흔들자 17kg쯤 되는 메리의 몸이 쟈크가 물고 터는대로 흔들렸다. 두어번 물고 터니, 피비린내가 코를 스쳤다. 까만 털 사이에 있는 가슴 쪽에는 흰 점이 귀여워 내가 자주 쓰다듬어줬고 메리도 좋아했다. 쟈크는 메리의 흰 점이 있는 가슴팍을 물었다. "쟈크는 정통 가슴잽이인기라. 가슴 물어뿌면 턱을 쟈크맨키로 잠근다카이. 그래서 이름이 쟈크인기라" 투견들마다 주특기가 있는데, 하필 쟈크는 가슴 잡이였다. 흰 점은 구겨지고 찢겨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하며 메리는 나를 쳐다봤다. 링에서 도망다니면서도 나를 봤다. 5분을 내리 물어 뜯겼다. 메리의 피부는 피와 침으로 너널 너덜해져있었다. "쌈개는 아니다. 눈팅이 맞았네. 개도 아닌기. 저거, 깔통으로 치아라" 아저씨들은 개도 아니라며 메리를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싸움을 못하는 핏불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이상한 나름의 명언을 날리며, 메리는 순식간에 가치가 없어졌다. 깔통은 보신탕집으로 보내는 쓸모 없는 개를 뜻했다. 아저씨들은 이미 눈길을 뗐고, 나 혼자 메리를 보고 있었다. 나도 지난 4년간 그 아저씨들 같았다. 핏불은 투견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나는 그런 투견을 잘 볼 줄 알고 관리도 해왔다. 순식간에 그 시간들이 주마등쳐럼 스쳐지나갔다. 진도에 내 친구였던 백구가 죽어 엉엉 울던 날, 등교길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1m 삶을 살던 개들을 살피던 날, 펫샵 앞에서 구경하던 강아지가 사라지면 울먹이며 집에 오던 날, PC방에서라도 개들을 보며 행복했던 날, 핏불을 처음 봤던 날, 메리를 알게 되서 이 날이 오는게 싫었지만 같이 재밌게 운동했던 날. 그 시간을 거쳐 내가 있는 곳은 너무나 다른 피와 돈이 오고가는 투견판이였다. 내가 있는 곳이 잘못 되어있음을 알게된 것은 피칠갑이 된 메리를 보고 나서야였다. "메리야!" 하면서 나는 울부짖으며 아저씨들에게 얼른 쟈크를 떼달라고 했다. 나의 울부짖음은 투견판에선 정말 어색하고 쪽팔린 동정이였다. 자신들과 같은 투견꾼으로 잘 알고 있던 장성한 청년이 울부짖자 아저씨들이 어안이 벙벙하자 나는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소리를 마구쳤다.
그 농장에서 뛰쳐 나와 무작정 차가 보이는 곳으로 뛰었다. 숨이 가쁘고 눈물이 흐르니 속눈썹이 얼었다. "메리도 참 추웠겠다" 생각과 함께 메리를 구할 수 없는 무력함은 나를 극도로 짓눌렀다. 시흥에서 수원까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뽕이형이 쪽팔리게 하지말고, 정신 차리라고 마지막 붙잡음도 뿌리치고, 나는 그렇게 투견판을 나왔다. 핸드폰 번호도 얼마가지 않아 바꾸어버렸고, 투견 카페에 탈퇴해버렸다. 개를 좀 더 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나는 투견판이란 예상치 못한 곳에 들어갔다. 그 곳 문화에서 투견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나는 무뎌져갔다. 문화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며 그것을 바꾸지 않으면 개들은 힘든 삶을 살것이란 것도 이른 나이에 알게 됐다. 그 곳에서 메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한 때는 투견판의 시간을 정확히 잘래내어 삭제하고 휴지통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투견판을 알았고, 메리를 만났기에 조금 더 개들의 위치에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인간이 개를 대하는 음지에 들어가봤기 때문에, 개들이 사는 바닥의 삶에서 같이 뒹굴어봤기때문에. 나는 개들의 숨소리와 눈을 보고 더 읽을 수 있게 됐다. 메리가 내 눈을 보면서 내게 해줬던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메리 이야기를 하면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적어도 개에 대해 진심이고 함부로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메리의 눈빛이 기억나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