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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Sep 27. 2021

다음 생에 우리 튼튼이 꼭 안아주세요.

새 생명은 기쁨을 주고, 늙어가는 어른은 슬픔을 준다.

거짓말같이 외할머니가 떠나셨다.


코로나 시대에 중환자실에 계시던 할머니를 뵈러 가는 방법은 없었다. 할머니의 자식들조차 면회가 불가능했고, 임종을 지킬 수 있는 사람도 4명으로 한정했다.


잔병치레는 하셨지만 언제나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한순간에 쓰러지신 이후로 고통스러운 수술과 치료가 계속되었, 딱 한 달 동안 아파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머니가 쓰러지신 뒤부터 나는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아 괴롭다.


아기를 낳고 엄마에게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했었다. 코로나 시국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가냐며 절대 안 된다고 하던 엄마의 만류에 결국 다음을 기약했는데, 다음은 없게 되었다. 엄마 말 듣지 말고 미친 척하고 다녀올걸, 사진이라도 인화해서 앨범으로 만들어서 보내드릴걸, 온통 후회뿐이다.


"할머니, 증손주요. 가현이 아들이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간병하던 이모가 비밀리에 챙겨주셔서 할머니와 스마트폰 화면으로 인사를 했다. 너무나 아파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펑펑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짧은 인사를 마쳤다. 튼튼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할머니를 보냈다면 나는 평생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다음 날, 할머니는 떠나셨다.


왜 우리 할머니를 이렇게 갑자기 데려갔나요?


하늘이 원망스러워서 튼튼이와 놀아주다가도 돌아서서 펑펑 울곤 했다. 뭐가 그리 급해서 하늘에서 우리 할머니를 데려가신 건지.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볼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연락 안 하고 찾아가면, 깜짝 놀라며 '왔나?'하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기차 시간이 다 돼서 할머니 집을 나오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짐을 지고 아파트 복도 너머로 내가 가는 길을 봐주시며 손을 흔들어주시던 할머니.


튼튼이를 직접 보여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어서 코로나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던 중,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다.


코로나 확진자 3천 명 돌파, 종합병원 집단 코로나 감염...


발인을 보러 내려가려고 준비하는데 친척 어른들과 엄마가 한사코 말리셨다.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만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고 했는데도, 서울에서 내려간다는 나와 내 동생을 말렸다.


병원과 장례식장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인지 확인 절차를 진행했고, 예전에 갑작스러운 남동생의 코로나 확진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엄마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너무 컸다. 결국 나와 남동생은 친척 어른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발인 날 아침, 나는 할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시지만 당뇨 때문에 드시지 못했던 먹거리들을 조금 준비하였다. 하얀 국화도 준비했다. 할머니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아이패드에 띄웠다. 그렇게 남동생과 나는 부모님 집에서 만나서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할머니, 먼저 떠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으셨을까요? 튼튼이도 못 보셨는데, 진작 가지 못한 제 스스로가 너무 밉네요. 그래도 마지막 날 밤 할머니와 눈을 마주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만, 이 시국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다음 생에도 나는 할머니 손주 할래요.


튼튼이도 할머니의 증손주로 태어나서 우리 다 같이 만나요. 그때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튼튼이를 안겨줄래요.


할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 가끔 꿈속으로 찾아와 주세요. 좋은 곳에 가셔서 그곳에서는 이제 아프지 마시고, 약도 드시지 마시고, 맛있는 것 많이 드시며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지내세요. 우리 가족들 서로 위하면서 잘 지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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