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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엽 Aug 21. 2020

바람이 또 그를 데려가리

사진이 담긴 영화 <길>을 들고 한국을 찾은 영화감독 키아로스타미


대가의 사진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설레고, 사람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금상첨화가 있으랴? 그런데 이번 대가는 전에 내가 만났던 유진 리처드나 데이비드 앨런 하베이와 같은 사진가가 아니다.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독특하면서 시적인 영상으로 세계영화계의 대가 반열에 오른 그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2011년) 

그가 뜻밖에 사진가라는 사실을 안 것은 환경영화제와 함께 사진전이 준비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영화 찍다가 한두 장 사진 찍는 취미가 있나보다 했더니, 금호미술관 3개 층을 사용하는 대형 전시회라고 한다. 그런데 홍보가 잘 안됐다고 하니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했다. 먼저 프리뷰 기사를 만들기 위해 그의 홍보용 사진을 받았다. 흑백 사진이 약 30점정도 날라 왔다. 두개의 테마였다. 하나는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선명한 <Untitled> 연작, 또 하나는 <The Road>라는 이번 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출품된 영화에 삽입되는 길에 대한 사진들이었다. 놀라웠다. 사진에는 깊이가 있었다. 뭔가 어려운 풍경사진도, 그냥 멋있는 풍경사진도 아니었다. 전에 중앙아시아를 수십일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는 터라 그가 살아가는 이란의 땅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눈에 보인다. 게다가 그의 대표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나오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길이 생각난다. 

일단 한국에서는 낯선 사진가 키아로스타미를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의 기사는 취재기가 아닌 워크샵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 3일간의 일정을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영화 개막식과 기자회견, 팬 사인회, 사진전 관람 그리고 마지막 마스터클래스 참가로 이어지는 꽤 공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먼저 인터넷에서 익힌 얼굴만으로 환경영화제 개막식이 열리는 충무로 스카라극장으로 갔다. 거의 매일 드나드는 충무로요 스카라극장 앞이지만 오늘따라 인산인해. 사회자로 나선 안성기씨와 엄정화씨가 눈길을 끈다. 꽤 얼굴이 알려진 명사들도 보인다. 영화제보다는 사람들 인사에 더 바쁜 최열총장! 원래 그러려니 하고 만다. 질서는 잡히지 않고 초대장 받고 온 사람부터 일반관객까지 뒤섞여 혼란 그 자체다. 키아로스타미의 출현과 몰려드는 인파 그리고 카메라 기자들. 엄청 큰 캐논 디지털로 무장하고 연신 플래쉬를 터트린다. 짙은 색 선글라스를 낀 그는 뭔가 신비에 쌓인 듯 했다. 잠 잘 때도 선글라스를 쓴다는 왕가위와는 뭔가 다른 그런 느낌이다. 개막식이 시작되자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더 이상의 어떤 취재도 불가능 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공식 기자회견

그의 공식기자회견은 다음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꽤 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그의 영화가 대중적인 흥행성을 갖지는 않지만 역시 국제적인 명성은 무시할 수 없다. 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 환경영화제 참석을 위해 한국에 온 소감은.

▶ 참여하게 돼 감사하다. 두번째 방문이다. 이란 테헤란에서 서울에 관한 영화를 몇 번밖에 못 봤지만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삼성, 엘지 등의 한국 기업 광고가 테헤란에 가득하다.


- 환경영화제에 개막작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왜 수락했는지.

▶ 대사관을 통해 처음 수락했다. 환경에 평소 관심이 많고 환경에 대한 내 생각과 영화제가 부합해 개막작을 만들게 됐다.


- 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 사진전에 전시 중인 사진과 내 영화를 통해 환경에 대한 시각과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내 흥미와 관심을 느껴주길 바란다. 


- 개막작 '키아로스타미의 길'과 다른 전작과 다른 느낌이었는데.

▶ 전작과 같은 길과 자연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 자연적인 주제를 보여주고 싶어 했고, 끝 장면에서 지구가 이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길'이란 소재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리고 '길'을 정의한다면.

▶ 인간과 길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통을 위한 길이다. 인생전반에서 느끼는 애정과 상업거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서로를 이별하게 만들고, 사람을 다시 만나게도 한다.


- 동심이나 자연에 대한 길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나.

▶ 동심이나 자연이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자원이다. 살다보면 결국 동심으로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이치를 담고 싶었다. 


- 감독 자신만의 차별화된 사진 찍는 기법이 있는가.

▶ 아날로그 카메라만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도 고려하고 있다. 28년 동안 계속 한 가지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고 있다. 사이즈가 좀 큰 것을 찍고 싶을 때, 디지털 카메라의 힘을 빌린다. 


- 문명의 발전이 멈추지 않는 시점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공생은 가능한가.

▶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답하려면 책을 내야 할 것 같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보와 상반된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 왜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가.

▶ 영화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특별히 모르겠다, 치대 시험에 통과했으면 의사가 됐을 것이다. 우연과 취향들로 인해 감독이 됐다. 내 영화에 프로페셔널 한 전문배우는 없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캐스팅한다. 그들이 실제 삶과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 이란의 정치적 상황과 북한과의 관계.

▶ 이란과 북한의 정치적 상황은 다르다. 북한은 잘 모른다. 살아보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이란은 그저 석유가 많은 나라다. 


- 향후 작품에 대한 계획은.

▶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 70살의 노인이 나오는 영화다. 이번 작품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담고 있다.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발표된 거의 모든 매체들의 기자회견 내용은 이상과 같다. 각자질문하고 답변한 것을 모두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솔직히 사진에 관한 이야기 자리가 아니라 더 이상의 사진 이야기도 없었다.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사간동 미술관 거리. 금호미술관에 들어서자 벌써 사람들이 운성웅성 거린다. 오늘 오전에 기자회견을 마친 키아로스타미가 팬들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감상하며 사인회도 연다고 한다. 몇 마디 나눠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먼저 사진을 봤다. 어차피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으니 사진 감상할 시간을 충분하다. 일단 사진전의 규모가 대단하다. 미술관의 3개 층을 털었고, 사진의 크기도 대단하다. 그는 정확히 1978년부터 사진을 찍었고 1989년 테헤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그리스, 파리, 독일, 뉴욕 등지에서 4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놀랐다. 개인전 40회라! 그것도 전 세계를 무대로 말이다. 이쯤이면 그의 사진이 결코 영화감독의 호사로 치부할 수 없으리라. 

그의 사진은 전체적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녹음이 무성한(물론 흑백이라 녹색은 안 보인다. 하지만 관객들 눈에는 보인다) 풍경이고 또 하나는 눈 내린 풍경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또 두개의 소재가 있다, 하나는 길이고 하나는 나무이다. 정말 가끔 가야 사람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배제되어 있다. 왜일까? 

어느 사이에 사람들이 꽤 많이 늘었다. 사진학도는 없고 거의 영화팬들이다. 키아로스타미가 도착하고 천천히 3개 전시장을 돌아봤다. 아마도 그의 개인전 중에서 꽤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의 개인전에 소요된 비용은 대외비라 공개하기 힘들지만 하여간 엄청났다. 조금 부럽기도 하고 괜한 질투가 난다. 그 돈이면 이곳 사진가 몇 명은 개인전 시켜주리라고. 키아로스타미는 관객들과 친절하게 대화하고 마지막 한사람에게 까지 사인을 해줬다. 사려 깊은 모양이 좋아 보인다. 나도 개인적으로 낸 책을 줬다. 그가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기분 좋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악수를 나눴다. 손이 꽤 크고 억세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마지막 날에야 들을 수 있었다. 영화와 함께 관객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방문한 소감은?

▶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조그만 영화관에 내 작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들과 대화한 기억이 난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은 그래서 더 즐겁다. 


-당신의 영화도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고 직접 사진을 찍는다. 어떤 주제로 사진을 찍는가?

▶ 나는 자연에 대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도 자연이다. 어쩌면 환경이라는 것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같다. 


-당신은 일부러 사진의 소재를 자연으로 잡은 것인가? 

▶ 내가 자연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연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당신의 영화를 볼 때 일본작가 오스 야스지로가 생각난다. 영화의 음악도 일본을 연상한다. 내 생각이 맞는 것인가?

▶ 내 영화의 일정부분 오스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일본의 하야쿠(단시)를 매우 좋아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일본인 작곡가가 일본의 피리 등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사진집에 나오는 그의 시를 보자. 


성전에 들어

만 가지 상념에 흔들리다

밖으로 나서니

그새 눈 천지


외로운 첫 가을

달 없는 하늘

가슴엔

노래 백 가닥


-최근 당신 작업에서 디지털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가?

▶ 이번 영화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만들어 졌다. 디지털은 영화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35mm 영화작업에서 필름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최근의 제작한 4작품 모두 디지털로 작업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 삽입된 나의 사진들은 모두 필름으로 찍었다. 이 사진을 스캐닝해서 컴퓨터를 통해 움직임을 만들었다. 


-당신은 어떤 사진기를 사용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필름을 사용할 것인가?

▶ 나는 전에 수십 년간 장터에서 15달러를 주고 산 카메라로 작업을 했다. 최근 1년 전에 라이카 R8을 구입해 <길>을 작업했다. 하지만 두 카메라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 볼 생각이 있다. 매우 작업이 수월 할 것 같다. 


-당신은 사진 작업도 영화처럼 스텝들과 함께하나? 

▶ 아니! 나는 스텝들과 함께 사진을 찍지 않는다. 혼자 다닌다. 다른 사람이 괜히 불편해 할까봐 내가 담고자 하는 풍경을 놓친다. 혼자 있을 때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해지고 돌아 올 때는 누군가 함께 있었으면 하기도 한다.(웃음) 


그는 자신의 사진집 제목처럼 ‘바람이 또 데려갔’다. 어느 길에서 그를 또 만날지 알 수 없다. 그 또한 어느 길에서 바람처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을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그는 우리에게 선시 같은 사진 이미지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놀랍진 않았지만 은은히 가슴 속에 그것이 남아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생 : 1940년 6월 22일 

출생지 : 이란 

사망 : 2016년 7월 4일

직업 : 영화감독, 사진가, 시인 

데뷔 : 1970년 <빵과 오솔길> 

학력 : 테헤란 예술대학교 미술전공 

1989   로카르노영화제 청동표범상 

1993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1997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1999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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