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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Sep 24. 2021

나는 울트라 쇼퍼다.

<나는 울트라 러너다> 출간에 부쳐

대우조선에서 일하는 오빠 심재덕은 대한민국 최고의 울트라 러너다. 어릴 적 유난히 몸이 약했던 오빠는 천식을 가지고 태어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무 환경이 열악한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오빠는 살기 위해, 숨이나 편하게 쉬어보자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참가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오빠는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더욱더 치열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풀코스를 뛰다가 이틀 연속 풀코스에 도전하고, 당일에 풀코스와 울트라도 뛰었다가 그것도 성에 안차서 철인 3종 경기는 물론 더 길고 험한 울트라를 찾아 뛰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한계는 없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한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오빠는 달리면 달릴수록 고통스럽고 숨은 가빴지만, 숨쉬기가 한결 나았다고 했다.   


2011년 추석 즈음에 오빠는 이태리 산악지대, 쿠르마외르(Courmayeur)에서 열리는 토르 데 지앙 (Tor Des Geants, TDG, 333km)에 참가했다. 테크티카(Tecnica)라는 이태리 트레일 전문용품 회사가 오빠는 물론 내 항공권과 숙소까지 제공했고, 나는 통역으로 따라갔다.    


이미 수많은 울트라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오빠는 몽블랑 아래에서 몸을 풀며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경기가 시작된 첫날, 나는 주최 측의 버스를 타고 취재진들과 함께 산 꼭대기에 있는 체크포인트에 먼저 가서 오빠를 기다렸다. 오빠는 정말이지 오르막길에서도 신발의 상표가 보이지 않게 빨리 달렸다. 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빠는 ‘날다람쥐’라는 별명에 걸맞게 잘 달렸다. 오르막을 달리는 건지 평지를 달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오빠를 보니 조금 먼 333km지만 무사히 완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의 몽블랑 


다음 날 오빠가 몽블랑 어느 산자락을 달리고 있을 즈음 나도 몽블랑 트레킹을 나섰다. 이정표는 없었지만, 어디건 발걸음을 옮기면 그곳이 바로 트레킹 코스였다. 돌산은 가팔랐다. 한 백 미터쯤 올라가자 드넓은 목장이 나왔고, 곧 몽블랑 설산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산 위에서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요가 또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몽블랑에서 요가하는 사람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 아침 출발하는 밀라노행 첫 버스를 예약했다. 이곳에서만 시간을 보내기엔 먼 거리를 날아온 게 아까웠고, 또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오빠를 호텔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다. 첫차를 타고 밀라노에 가면 대여섯 시간 정도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버스를 탔다. 행여라도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누가 되었든 나를 찾을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오빠의 보호자였고, 또 통역이자 매니저였다. 


쿠르마외르에서 밀라노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예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밀라노는 낯설지 않았다. 막차 표를 끊어 놓고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연두색 수제화를 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했다. 다리가 아프면 한적한 공원에서 스카프를 깔고 누워 파란 하늘을 보았다. 쇼핑을 하는 동안은 몽블랑 산 허리께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오빠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상점이 많은데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왔다. 나는 밀라노에 작별을 고하며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한잔 마셨다. 


시간을 확인하고 놀란 나는 서둘러 택시를 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택시 기사는, 내가 버스표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퇴근 시간이라 차는 막혔고, 골목골목을 누벼서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시간이 거의 다 돼서 있다. 나는 버스표를 손에 들고 플랫폼을 향해 달렸다. 이 버스를 놓치면, 밀라노에서 하루 밤을 자야 하고, 또 그 사이 고산지대에 약한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반. 드. 시 쿠르마외르로 돌아가야 했다. 밤새 뛰어서라도. 


숨을 헉헉거리며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이미 버스는 출발한 후였다. 나는 망연자실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시의 건물 사이로 지는 노을이 붉은 혓바닥을 길게 빼서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오늘 버스는 모두 끊겼고 쿠르마외르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정류장 밖으로 나가서 싼 호텔을 잡았다. 쿠르마외르에 호텔을 두고, 밀라노에 다시 호텔을 잡았다. 


광장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내 속도 모르는 비둘기가 옆에 와서 간식을 달라고 졸랐다. 나는 발로 땅을 구르며 비둘기를 쫓아 버렸다. 복잡한 마음은 오빠와 같이 몽블랑 언저리, 어느 구릉을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부디 오늘 밤은, 오빠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나는 첫 차를 타고 부리나케 쿠르마외르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였다. 밤새 내리치던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저체온증 때문에 기권을 했다고 했다. 오빠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오빠는 다른 기권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괜찮다며, 그 정도도 멋지고 훌륭하다고 오빠를 응원해 주었다. 


오빠는 패잔병처럼 다리를 질질 끌며 호텔로 돌아왔다. 오빠는 7개 구간으로 나뉜 333km 중 6개 구간인 280km를 뛰었다고 했다. 말이 280km 지, 내게는 2km 걷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다리가 퉁퉁 부은 오빠는 다음날 저녁까지 내내 잠만 잤다. 오빠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오빠를 데리고 미리 물색해 놓은 식당으로 갔다. 


나는 오빠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오빠는 내가 밀라노에 다녀온 걸 모른다. 내가 오빠에게 사는 저녁은 면죄부였다.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고급 이태리 식당은 골인 지점을 지나서 있었다. 완주한 선수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골인 지점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오빠는 발걸음을 멈추고 결승선을 넘는 선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오빠에게 얼른 가자고 팔을 잡아끌었다. 분명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또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오빠는 그 동안의 마라톤 인생을 담은 <나는 울트라 러너다>를 출간했다. (2021.9.21출간, 여름언덕) 오빠의  자서전 출간에 부쳐 그 동안 오빠에게 말하지 않았던 밀라노행 얘기를 여기에 조심히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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