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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pr 11. 2024

정글사회

카드괴물

사회는 정글이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독버섯이 도처에 깔려있다

핸드폰을 처음 손에 쥐는 초등학생에게 엄마가 제일 먼저 가르치는 일은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말라는 엄마의 우심(憂心)이 담겨있다


감자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반팔을 입고 나갔으니 그때도 아마 진달래가 피던 5월쯤으로 기억한다

감자 친구 아빠가 아이들을 대리고 자전거를 타러 가겠다고 하여 감자도 보내줬다

학교 운동장이 아닌 불광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성산대교 밑 한강 고수부지까지 간다기에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알고 지내던 감자의 친구 아빠가 보호자로 함께 있으니 믿고 보냈다

나간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친구 아빠에게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감자 아버님 현규(동생)가 지금 자전거 뒷바퀴에 발이 끼어 급하게 병원엘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 타고 집으로 갈 겁니다"

이 말만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그렇게 집으로 온다던 아이들이 2시간째 돌아오지 않아 그때부터 우리는 다른 부모님들과 전화로 소통하며 남겨진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남겨진 아이들 셋 모두 전화기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일요일 낮 시간이고 주변을 찾다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후 4시가 되어 병원에 갔던 현규 아빠도 돌아왔지만 아이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경찰인 감자 고모부에게도 연락을 하고 상암동에 사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내차 포함 4대의 승용차와 경찰차 한대에 10명이 넘는 어른들이 나눠타고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이 남겨졌던 한강변은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성산대교 밑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고 차량 두대는 범위를 넓혀 상암동, 중동, 성산2동 골목을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낮 12시에 한강변에 남겨진 세 아이들은 저녁 6시가 되도록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세 아이들을 본 사람도 없었고

길을 헤매는 8살짜리 남자아이 셋을 본 사람조차 없었다



그렇게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8시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발견한 곳은 성산대교에서 한참 떨어진 행주산성에서 발견되었다

결론은 그렇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동생이 아빠가 운전하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있다 자전거 뒷바퀴에 발이 끼어 발에서 피가 났고 놀란 그 애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남겨진 아이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몇 시간 동안 헤매다 행주산성까지 흘러간 것이었다


여기서 웃긴 건 몇 시간을 길을 헤매는 동안 지나가는 형, 누나,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들을 붙잡고 전화기 좀 빌려달라고 말했지만 누구 한 명 전화기를 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 그 아이가 지난주 군대를 제대했다


감자 : "아빠.. 체크카드 갱신하라고 해서 갱신했는데 뭐가 그렇게 동의하라는 게 많아?"

나 : "체크 카드? 너 군대에서 만든 나라사랑 체크카드 있는데 뭘 또 만들어? 그리고 체크 카드 만든지 2년도 안됐는데 무슨 갱신이야.. 체크카드 가져와봐"


기존에 갖고 있던 아들의 체크카드를 확인해 보니

아직 갱신 연도는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갱신 신청했다는 카드가 도착했고 식탁에서 카드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던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왜? 신청한 카드가 아냐?"

"카드는 맞는데... 아빠.. 이거 신용카드 아냐?"


연회비도 없고 기존의 체크카드와도 연동되고

그냥 편하게 쓰시면 된다던 체크카드는 1년에 100만원 이상을 써야 연회비가 면제되는 카드였고 아들이 신청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를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한 마스터카드였다

날짜가 다 되어 갱신을 도와준다던 카드는 신규 발급한 신용카드였다


아들은 전혀 몰랐다는 듯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바로 카드 해지를 하였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중얼중얼 무슨 말인지 모를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빠.. 사회가 이런 거야? 아빠가 말한 데로 눈 잠깐 감았다 뜨면 이렇게 당하는거야?"ㅋㅋㅋㅋ


아들의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15년 전 길을 잃고 그지 꼴이 되어 나타난 여덟 살 아이들에게 사회는 냉혹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이들이라고 핸드폰을 함부로 빌려줘.. 만약 그 아이가 내 핸드폰 갖고 튀면 어떡해?

15년 전이나 15년이 흐른 지금이나 사회는 아이들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때는 어른들을 원망할 만한 배포 없이 순수함은 간직하고 있었겠지만 어른에 대한 원망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아직 정글 속의 달콤한 열매를 따먹기엔 멀고도 긴 시간이 남아있다

수도 없이 넘어지고 상처 입고 또 일어나야 할 것이다

얼마나 넘어질지는 본인의 선택과도 상관있을 것이다


제대하고 3일 만에 만난 정글 속 카드괴물..

오늘 만난 카드괴물은 살면서 만날 괴물들 중 푸바오처럼 아주 귀엽게 생긴 괴물이다


온실 속 감자가 이제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부디 상처받지 않고 건강한 싹을 틔우길 진심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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