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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Aug 18. 2020

웰치스 포도맛 편

영어가 좋아진 이유


중3 때 친구들과 영어 그룹 과외를 받았다. 선생님 집은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단지였다. 1 형식 문장이니, 2 형식 문장이니 온갖 문법이 난무하는 팍팍한 수업 시간에 단연 반가운 것은 수업 중간에 방으로 불쑥 쳐들어와 경건한 면학 분위기를 방해해 주는 과외 선생님 자녀들이나 남편 분의 등장이었다.


특히 선생님 남편은 한라급 씨름선수 같은 풍채에 추억의 털보 만두의 털보 아저씨를 많이 닮았고 팔에는 문신이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우락부락하지만 실제로는 틈만 나면 집에 오는 과외 학생들과 놀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우리들의 친구였다.

"너거들 지금 딴짓하고 있줴!"

자신의 등장을 알리는 아저씨만의 시그너쳐 멘트였다. 아저씨가 래퍼였다면 무대 오프닝에 '너거들 지금 딴짓하고 있줴에에에에에'가 오토튠으로 웅장하게 깔렸을 것이다.


늘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방으로 벌컥 들어와서는 '누가 중간고사 몇 등했다더라' '이번에 누구 외고 갔다' '너희들은 여기서 과외받았으니 상위 몇 프로일 거다'고전 기법의 동기부여하시면서 정작 우리 공부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딴짓을 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반가웠던 가장 큰 이유는 맛있는 간식을 많이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선생님이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사놓은 샌드위치며, 과자며, 젤리들을 우리들에게 인심 좋게 베푸셨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아저씨에게 잔소리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때도 있었지만 아저씨는 언제나 당당하셨고 절대 기죽는 법이 없으셨다.

중3 여름방학 오전 과외시간이었다. 막 자다 깬 아저씨가 밤새 숙면을 취하셨는지 자한 얼굴로 우리 수업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기세 등등 하게 보라색의 뚱뚱한 음료 캔을 우리 앞에 탁탁탁 놓으셨다. 안 그래도 졸리던 이 타이밍에 등장만으로도 감사한데 음료수라니, 아저씨가 이 집에 있어서, 살아 있어 줘서, 태어나줘서 새삼 고마웠다. 이제 아저씨 없는 과외 집은 상상조차 하기 싫 정도였다.

"자, 함 무 봐라. 이게 웰치스라는 미국 음료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기 힘들 데이. 아저씨 아니면 너거들이 이런 거 먹어나 보겠나? 아저씨 짱이줴?"

웰치스 포도맛이었다. 웰치스 첫 한 모금을 들이켜면서 '아 이게 미국의 맛과 향이로구나'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희소한 음료를 마시고 있자니 선진 문화에 한 발 앞선 트렌드 세터가 된 기분이었다. 과외하는 내내 웰치스 한 캔을 한 방울씩 야금야금 아껴 먹었다.

그 이후로도 아저씨는 가끔 웰치스 캔을 들고 우리 수업에 나타나셨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영어 과외 가는 날이 기다려다. 운 좋으면 웰치스를 먹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수업 시간이 예전만큼 막 지루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가올 웰치스를 위해, 그 웰치스를 먹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성실히 수업에 임했다. 공부에 관심 없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좋아하는 아저씨의 호감을 사려면 성적을 올려야 했다. 그래야 웰치스를 한 캔이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 음료를 향한 집념의 결과로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영어 만점을 받았다. 영어를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영어경시대회까지 나갔다. 상은 못 탔지만 영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아저씨는 그 소식을 접해 듣고 무지 칭찬을 해주셨지만 웰치스는 주지 않으셨다. 아저씨 곳간에 웰치스가 동 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저씨의 말과는 달리 마트에 웰치스는 널려 있었다. 원할 때는 언제든지 내 돈으로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때의 영향이 쭉 이어져 나는 3년 후 대학 전공을 정할 때도 긴 고민 없이 영어영문학을 선택했다. 영문학과는 영어 실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기보다 영어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는 과였다. 그 압박 덕분에 영어를 평생 벗 삼아 공부했고, 지금은  영어를 가르쳐 먹고 산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웰치스 포도맛을 볼 때면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리고 영어를 가르쳐주신 과외 선생님보다 간식을 챙겨주던 과외 선생님 남편이 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아이러니를 묵상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건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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