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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Sep 29. 2020

종이접기 유튜버 네모 아저씨를 미워했어요.

함몰 접기라는 시련이 준 인생의 깨달음


네모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7살, 4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저씨가 유튜브에 올려주시는 종이접기 영상 항상 잘 보고 있어요. 우리 아들이 네모 아저씨 유튜브 애청자거든요. 그렇게 산만 녀석이 아저씨가 설명하시면 차분하게 앉아 노랑이 인간 캐릭터도 접고 돼지도 접고 드래곤 접어요. 저도 덩달아 거의 매일 영상을 통해 아저씨를 만나다 보니 이제는 네모 아저씨가 아들 베프 같고 가까운 이웃 주민처럼 느껴져요. 아저씨를 안 지 3개월밖에 안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요.


 자려고 누우면 "자, 이제 꼬리를 접어줄 거예요"라고 하는 아저씨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요. 엄마들 사이에서 아저씨 손이 '섬섬옥수'라며 칭찬이 자자하답니다.  

어느 날 지인이 단톡 방에 이 사람 대박이라며 영상 하나를 공유했어요. 종이 한 장으로 6시간에 걸쳐 드래곤을 접는 영상이었지요. 저는 오른손 중지에 보이는 점을 보고 대번 네모 아저씨란 걸 알어요. 그때만큼은 아저씨가 우리들의 친구 네모 아저씨가 아니라 날렵한 손으로 세계 종이접기계를 평정하는 고수처럼 느껴졌요.

  

그런데 아저씨, 솔직히 고백할게요.


저는 종이접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도 작품을 제대로 완성해본 적이 별로 없고요, 제가 손을 대면 망가지거나 이상한 모양이 돼버려서 만들기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그래서 종이접기 같은 건 평생 살면서 안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어느 순간 종이를 접기 시작하더니 저도 같이 접기를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저씨 영상을 찾아서 따라 접기 시작한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아이들과 집에 갇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붙잡혀 몇 시간이고 영상을 보며 종이를 접어요. 종이접기 장인이 되려는지 아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종이를 접어댔고 그런 그에게 종이접기를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종이접기 고문이 시작되었지요.



네모 아저씨의 종이접기는 솔직히 쉽지는 않았어요. 동물을 접을 때도 그만하면 다 접은 것 같은데 아저씨는 동물의 귀며, 꼬리며, 입이며 디테일을 살리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이셨어요. 아저씨의 프로페셔널함과 세심함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디테일에 끌려서 결국은 아저씨 영상을 클릭하게 되더군요.


디테일이 살아있는 돼지귀와 꼬리

가장 먼저 도전한 건 도마뱀 접기였어요. 


저는 종이 접기라고는 동서남북이랑 종이배 밖에 몰라요. 그래서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감을 못 잡고 아이에게 뭐든 골라보라고 했지요. 아이는 도마뱀을 선택했고 그날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어요.  


아저씨가 설명을 잘해주셔서인지 똥손인 저도 초반에는 영상을 여러 번 정지시켜가며 그럭저럭 따라갔어요. 그런데 도마뱀 다리를 접을 때 아저씨가 함몰 접기란 걸 했어요. 난생처음 함몰 접기를 했던 저는 3시간 동안 영상을 수십 번 되돌려가며 을 흠뻑 쏟았습니다. 아들도 사색이 되어서는 함몰 접기는 못하겠다고 저에게 떠맡기는 바람에 제 도마뱀 다리 4개, 아들 꺼 4개, 도합 8번의 함몰 접기를 해야 했습니다. 저는 영상에 대고 아저씨를 향한 원망을 쏟아어요.

"뭐라는 거지?"
"그래서 어쩌라는 거?"
"하... 모르겠다. 모르겠어, 아아악 엄마 이거 못하겠다! 안 할래!"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엄마도 몰라서 가르쳐 줄 수가 없어!"

자녀 앞에서 욱하는 부모가 최악이라고 배웠건만, 종이접기를 하며 저는 어느덧 아들에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처음엔 뭐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잘할 수 있다고 가르쳐 놓고 종이접기는 엄마랑 안 맞다며 7살인 아들 앞에서 오만 짜증을 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스스로 의아할 정도였어요. 어릴 적 나를 열등한 아이로 만들었던 미술시간이 생각 나서였을까요. 아이는 '함몰 접기'라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데 저는 자신이 없고 두려웠어요.




"잠깐만.. 엄마 조금만 쉴게"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었습니다. 오른손에 접다만 너덜너덜해진 색종이를 만지작 거리면서 이걸 계속 접을지, 찢어 버릴지 눈알을 리며 열심히 생각했어요. 옆을 보니 함몰 접기를 해보려고 애쓰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어요.


"어! 된다 된다! 엄마! 나 함몰 접기 된 것 같아!"하고 아이가 나한테 접은 걸 보여주는데 엉터리 함몰 접기였어요. 포기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휴우우우우" 하는 깊은 날숨 한번 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어요. 이블 밑으로 몇 번이나 분노의 발길질을 해가며 즉사 사즉생의 심정으로 8번의 함몰 접기를 했어요. 영상을 수십 번 돌려가며 어째 저째 접다 보니 신기하게도 감이 잡혔 결국 저는 마뱀 하나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품을 완성시키는 건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어요.


'나도 도마뱀을 접을 수 있구나. 어째  조금씩 부딪히다 보면 되긴 되는구나' 


그리고 깨달은 게 있어요. 그동안 내가 만들기 시간에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만들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만들기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였다는 걸요. 제가 도마뱀을 완성한 건 아이 앞에서 엄마로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래서 부딪혔고 완벽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완성은 시킬 수 있었죠.




'나는 음악은 못해'

'나는 미술엔 소질이 없어'

'나는 겁이 많아서 운전은 못해'


내가 스스로 규정 지었던 내 자신의 모습이 실은 내가 선택한 나의 모습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네요.

저는 음악과 미술,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안 하기로 선택한 거란 걸요.

'어째저째'의 원리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조금씩 해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아저씨가 가르쳐 준 함몰 접기를 '어째저째' 해보면서 영원히 못하는 일은 없다는 걸 마음에 새겼어요.

내 눈물과 한숨과 땀으로 완성한 도마뱀

그걸 알아도 저는 여전히 아저씨 영상을 보며  울그락 불그락해요. 요즘 아이 네모 아저씨의 가르침을 받고 종이접기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저에게 핏대를 세우고 침을 튀겨가며 종이접기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답니다.(안 해줘도 되는데..) "자 여기 가운데 주름이 보이죠?" 라며 제법 아저씨 흉내도 내구요.


어쩌면 우리는 아저씨 덕분에 코로나 시대를 무난히 견뎌냈는지도 모르겠요. 제가 아저씨께 드릴 수 있는 건 구독과 좋아요 밖에 없지만 언젠가 아저씨를 만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그날까지 우리 아이가 종이접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할 텐데요.


오늘 저녁에는 그나마 평이해 보이는 치킨을  접어보려고 합니다. 이따 거기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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