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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아 기자 Jul 15. 2020

[배우론] 정인지, 안고 가는 삶

<마리 퀴리>, <데미안>, <난설>의 정인지라는 배우

뮤지컬 <난설> 중

"안고 갈 수도 있겠죠. 하나쯤은. 그런데 저는 내려놔야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7월 14일 밤, 현재 출연 중인 <난설>의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인지는 라이브 방송을 켰다. 질문을 받고, 그중에 많은 호응을 얻은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의 간단한 방송에서 그는 자신이 올랐던 뮤지컬 <데미안>에서 연기한 피스토리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너무너무 신나게 북을 쳤어요. 연습하는데 피스토리우스 대사가 사실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 인물에 너무 감정이입이 돼가지고." 무대 위에서 싱클레어와 만나는 순간과 헤어짐의 순간, 극 중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 사이에서 정인지는 피스토리우스의 감정을 읽었다.


"내가 이때까지 생각했던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데, 피스토리우스는 자기가 꿈꿔오고 자기가 생각했던 그 무언가를 음악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 음악을 들어줄 사람을 만났고, 아, 이렇게 얘기하니 캐릭터 안에서 접합점이 생기네요." 그 접합점은 <난설>의 키워드가 되는 '지음(知音)'을 가리킨다. 반듯하게 묶은 머리는 양반의 갓 속에 숨기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하는 허균의 누이 허초희의 삶에서 그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었던 사람들. 정인지는 전혀 닿아있지 않을 것 같은 <데미안> 속 피스토리우스와 <난설> 속 허초희를 어느새 연결하며 관객을 자신의 세계 안으로 새롭게 끌어들인다.


커다란 눈, 헝클어져도 좋은 검은 머리카락, 작지 않은 키, 또렷하게 호를 그리는 콧대와 콧방울. 정인지의 얼굴은 오밀조밀한 미인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의 큼직큼직한 이목구비는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들의 크고 무거운 공기를 담으며 메시지의 무게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베르나르다 알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테레즈 라캥>, <마리 퀴리>, <데미안>, <난설>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격렬하게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이었고, 특별한 가치를 향해 거칠다 싶게 내달리는 여성이었다. 우아하고 곱게 한복의 치맛자락을 잡고 걸음을 떼도, 그의 걸음에는 늘 알고 싶고, 느끼고 싶고, 가지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마리가 라듐을 발견하던 때의 반짝임을 표현하는 커다란 눈이 형형하다 싶을 정도로 빛났던 것처럼, 허초희가 마지막으로 띄운 웃음이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동(動)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늘 정인지라는 배우 또한 뜨겁게 여성들을 뱉어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 메인 포스터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안고 갈 수도 있겠죠. 하나쯤은. 그런데 저는 내려놔야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피스토리우스가 모든 잡동사니를 싸들고 가다가 와장창 떨어트리던 그 장면에서 느낀 점을 설명하는 그에게서, 정반대로 정인지라는 배우는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수많은 인물들을 품에 꼭 껴안고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정인지는 배역 안에 마냥 자신을 묻어두지 않고 입을 열면서 고통스러운 일로 점철된 현재를 사는 30대 여성의 말을 전한다. "거대한 힘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가 없다면 내가 생각을 올바로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민망해서 라이브 영상은 곧 지울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는 이 배우의 삶 바깥을 바라본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거대한 힘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정인지의 안에 현재의 자신과 무대 위의 자신을 엮을 만큼 거대한 에너지는 있다.


정인지가 살았던 수많은 배역들의 삶이 거기서 한 데로 묶여있다. 관객들은, 그 한데 묶인 삶을 보고 울거나 웃는다. 그러다 어느새 그와 함께 묶인 나의 삶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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